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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인간,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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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인간,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까?"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31> 냉동인간 이야기

지난 1월2일 4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극지 체험단이 27일간의 긴 일정으로 남극 세종기지로 떠났습니다. '극지 체험단(http://exp.kopri.re.kr/)'이란 한국해양연구소 부설 극지연구소가 일반인들이 생소하게만 느끼는 남극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이달 초 뽑은 '남극 민간인 홍보대사'들입니다.

남극으로의 여정은 한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등을 거쳐 푼타아레나스로 이동한 후 칠레 공군 비행기를 타고 남극으로 들어가는 긴 코스를 여행해야 합니다. 남극까지 가는데 걸리는 기간만 닷새,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더 길어지는 일도 다반사지요.

그분들이 무사히 탐험을 마치고 돌아와 남극의 생생한 모습을 널리 알리게 되길 빌면서, 오늘은 남극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저온생물학까지 잠시 들러보기로 하죠.

남극 대륙은 추위와 혹독한 환경 덕에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땅으로 남겨져 있었지요. 미지의 세계였던 남극을 유명하게 한 건 1911년 있었던 남극점 발견 탐사대의 엇갈린 운명의 비극도 한 몫을 했답니다.

***남극의 비극, 스콧 경의 죽음**

1911년 당시, 다른 나라의 두 탐험대가 남극을 찾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이 낯선 대륙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한쪽은 노르웨이의 로널드 아문센(Ronald Amundsen)이 이끄는 팀이었고, 또 하나는 영국의 로버트 팰콘 스콧 경(Sir Robert Falcon Scon)이 이끄는 팀이었지요. 두 팀 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것은 좋았으나, 에스키모와 남극 여행자들의 경험담을 철저히 분석해 에스키모개를 이용한 썰매를 선택한 아문센에 비해 남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보통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처럼 모터가 달린 썰매와 말들을 끌고 갔던 스콧 경은 결국 뒤처지고 말았지요.

그래도 영국 군인의 명예를 위해 악전고투 끝에 스콧 경은 1912년 1월17일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그 곳에는 이미 한 달 전에 아문젠이 꽂아두고 간 노르웨이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지요. 실망감과 허탈감에 지친 스콧 경과 대원들은 돌아오는 길에 모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힘없이 사라져버린 대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연의 위력을 세심하게 분석하지 않고 무모한 용기와 자신감만으로 맞서는 것이 얼마나 하릴없는 일이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지요.

스콧 경과 일행은 남극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허기와 탈진으로 쓰러지고, 결국 차가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동사했지요. 비단 남극이나 북극처럼 극도로 추운 곳이 아니더라도 겨울이 되면 신문 사회란에 술에 취해 한데서 잠이 들었다가 동사하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곰이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은 한겨울에도 잠만 잘 자던데, 왜 사람은 겨울에 추운데서 잠이 들면 죽어버리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가끔씩 등장하는 '냉동인간'의 이야기는 단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요?

***냉동인간, 꿈일까? 현실일까?**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는 '냉동 인간'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는 범죄자를 냉동시켜 그 사이 착한 인간으로 개조하는 세뇌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에이리언> 시리즈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 승무원들을 냉동시켜 여행의 지루함을 덜어줍니다. 또, <A.I.>의 어린 로봇 데이비드는 친자식이 병이 들어 냉동시켜 둔 부부에게 입양되어 갑니다.

이미 냉동인간 이야기는 SF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낯선 주제가 아니며, 실제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세포 조직과 인간의 난자와 정자, 수정된 배아(즉, 인간의 아주 초기 형태지요)까지는 냉동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세포들은 액체질소(영하 197)가 가득 든 통에 넣어서 보관하게 되는데요, 세포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지만 액체질소를 때맞춰 부어주기만 하면 약 5년 정도는 보관이 가능합니다.)

또한 요즘에는 반드시 냉동이 아니더라도, 장기 이식에 쓸 장기들을 특수한 용액에 넣어 냉장 보관하는 방법으로 신체에서 떼어내도 3~4일까지는 보관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것이 바로 요즘 각광받고 있는 '저온생물학(cryobiology)'의 일부랍니다. 저온생물학의 범위는 현재 저온 보존, 저체온 수술, 인공 동면 등을 기본으로 하여 연구되고 있는데, 저온 보존과 저체온 수술은 현재 시도되고 있지만, 인공 동면은 아직은 시험 단계에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공 동면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냉동인간(corpsicle)이랍니다.

실제로 자연계에서는 동면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에 인간도 결코 불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뱀이나 개구리는 원래 주변 환경에 따라서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지만, 곰이나 다람쥐, 박쥐 등의 항온동물조차도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체온을 거의 빙점에 가깝게 떨어뜨리고 호흡과 맥박도 극도로 아껴서 먹지 않고도 여러 달을 생존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이 인공 동면 기술을 이용한 냉동인간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세에서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일지라도 미래에 기술이 진보하면 고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입니다. 삶의 지속을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될 그날까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설사 자신의 몸을 꽁꽁 얼려서 탱크 속에 집어넣더라도 말이죠.

얼렸다가 녹인 생명체가 과연 다시 살아날까요?

의외로 이 실험은 간단하게 할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통에 액체질소를 붓고 금붕어 한 마리를 여기에 넣은 뒤 1분쯤 지나 다시 꺼냅니다. 이때 금붕어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액체질소는 아주 차갑기(영하 197도) 때문에 피부에 닿으면 무척 아프답니다. 이건 경험담이에요, 연구소에서 세포 조직을 얼리는 일을 자주 했는데 액체 질소가 피부에 닿으면 이상하게도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겁다는 느낌이 들어요.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는 것은 당연하구요. 조직이 모두 얼어붙어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금붕어가 산산 조각나는(!) 기이한 현상도 목격할 수 있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꺼낸 금붕어는 하얗게 얼어 있어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 동태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냉동 금붕어를 미지근한 물에 다시 넣어주면 잠시 후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물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냉동인간, 영생에의 욕망**

사람들은 이 기법을 인간에게 적용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완전치 않지만 냉동인간을 과학소설에만 등장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 현실로 옮겨온 사람들이 있답니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인간 냉동 주식회사 '알코어 생명 연장 재단(ALCOR life extension foundation, 웹사이트 www.alcor.org )'이 영업중이며, 1967년 신장암 판정을 받고 스스로 냉동 인간이 되기로 자청했던 배드퍼드 박사를 필두로 현재 수십 명의 사람들이 캡슐에 냉동된 채, 자신의 수명을 연장시켜줄 미래를 꿈꾸며 잠들어 있거든요.

그렇다면 냉동인간은 어떻게 만들까요?

앞의 금붕어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갑자기 액체 질소에 담그지는 않습니다. 우선 사람이 죽기 직전 심장에 항응고제를 주입시켜 뽑아낸 피가 응고하는 것을 미리 막아둔 뒤에, 영하 72도의 냉동장치에 사람을 넣고 전신에서 혈액을 모두 뽑아낸 후에 대신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는 냉동생명 보존액(인간의 혈액과 비슷한 성분을 지닌 일종의 부동액〔不凍液이랍니다)으로 갈아줍니다. 사람을 그대로 냉동시키면 체액이 얼게 되는데, 이때 생성되는 얼음 결정이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부동액으로 체액 교환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체액 교환이 끝나면 액체 질소에 넣어 급속 냉동시켜 교환해준 체액이 결정화되는 것을 막고 이후 계속해서 이 액체 질소 탱크에서 보존하는 것이지요.

해동의 과정은 위의 과정을 거꾸로 되풀이하는 겁니다. 해동할 때에는 인간을 액체질소 탱크에서 녹인 후, 부동액을 체액으로 바꾸어주고 전기 충격 등으로 심장을 소생시키면 되는 거죠. 그러나 아직까지 실제로 해동된 사람은 없습니다. 즉 액체질소 탱크 속에서 영생을 꿈꾸며 잠든 사람은 있지만, 실제로 깨어나 현세로 되돌아온 사람은 없는 것이죠.

***냉동인간, 산 넘어 산**

아직 냉동인간의 원래 목적인 불치병의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의 해동이 유보되는 것은 과연 이들이 해동되었을 때 정상적으로 살아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생체 냉동과 해동에 대한 신비가 완전히 벗겨진 것이 아니어서 냉동 인간이 무사히 살아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죠.

현재 냉동인간 기술은 만만치 않은 유지비용과 생명체에게 죽음이란, 노쇠한 세대가 젊은 세대를 위해 한정된 공간과 자원을 넘겨주는 교대 행위라는 자연 순리적인 관점으로 인해 활성화되지는 않지만, 앞으로 더욱더 기술이 발달해서 냉동과 해동에 대한 비밀이 모두 밝혀지고, 자신이 죽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냉동인간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과연 제대로 소생할 수 있는지, 소생이 가능하더라도 과연 냉동되기 전까지의 지능과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문화적, 사회적 충격을 감당해낼 수 있는지. 왕자의 키스로 1백 년 동안의 잠에서 깨어난 공주는 과연 그 시간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발전에 적응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학자들조차 냉동인간을 단순히 소생시키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기억과 지능의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저온 냉동과 급속한 해동이라는 엄청난 물리적인 변화가 뇌의 정교하고 민감한 네트워크와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따라서 혹자들은 나노기술이 발달하여 나노 로봇이 발명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냉동인간의 시도가 어리석은 인간들의 욕심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알 수 없다고 해서 전혀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영원히 알 수가 없으니까요. 과학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때로는 앞장서 가보기 전에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심사숙고해서 조심스레 한 발짝 내딛어서 속도가 늦어질 수는 있지만 그대로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 하거나 못 가게 막아서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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