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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대로 썩은 사학, 나는 알고 있다"

〈전태일통신 27〉사학비리 척결은 내부고발자로부터

저는 1979년 2월 19일 경북 영덕여자고등학교 행정실에 임용되어 26년을 일하다 지난해 11월 3일 해임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인쇄소에 필경사로 잠시 일하다가 곧바로 학교에 들어와 줄곧 제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습니다.

저는 어릴 때 경풍으로 뇌를 다쳐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 영덕여고 임시이사회 이사장은 예전에 교장 선생님이었을 때 저에게 말더듬이를 고치지 못하면 학교에 근무할 수 없다며 빨리 고치라고 늘 죄인 취급하고 질책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말은 잘 못하지만 근무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26년간 몸이 아파도 학교 숙직실에서 잠시 쉬어가며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교사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로서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 학교 생활이 고통과 번민의 세월로 바뀌게 된 것은 1989년 새로운 학교 주인으로 박 아무개 교장선생님(나중에 이사장이 되었음)이 부임하면서부터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가 저와 같은 기독교인이었기에 기뻤습니다. 그리고 설립자를 승계한 새로운 학교운영자가 학교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훌륭한 분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와서 취한 첫 번째 조치가 학교법인 조양학원 아래 영덕여중과 영덕여고가 병설로 유지 경영되고 있던 것을 분리해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지붕 아래 두 주인이 학교를 운영하는 이상한 학교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는 내가 학교 주인이니 학교 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서 빼돌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장로인 분이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다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찬 노릇이었습니다. 밖에서는 자선사업가로 활동하고 '그 사람 돈이 그렇게 많으냐', '정말 돈 잘 쓴다'는 소문도 들렸습니다. 그는 행정실 직원들에게 수시로 사직서를 받아야 한다며 사직서를 강요했고, 근무하려면 그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1995년 5월에 1차 공금횡령사건이 터졌습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교사들이 문제제기를 하며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화장실 개축 공사를 하는데, 7000만 원을 받아 2000만 원에 공사하고 나머지 돈은 자신이 챙겨버린 것입니다. 박 아무개 교장은 횡령사실을 시인하고 잘못됐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하도 측은하여 교사들이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공금횡령은 더 심했습니다. 더 노골적이고 더 조직적이고 더 지능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자연히 학교는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10여 년 동안 십수억 원의 돈을 그렇게 빼돌렸습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교부금과 육성회비, 학교운영 기본경비 등 손대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 돈을 아파트와 자가용 구입 등 개인 용도와 치부에 사용했습니다. 이사회 회의록 조작은 기본이고, 각종 시설공사와 물품구입시 단가조작, 수량부풀리기 등의 수법으로, 도로편입 보상공문까지 위조하는 방법으로, 또 심지어 위장 퇴직신고를 해 사학연금마저 타먹는 파렴치한 짓까지 서슴치 않고 저질렀습니다. 그는 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개설해 놓고는 모든 계약과 물품구입까지 자신이 직접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을 학교법인 이사로, 이사회 회의록을 조작해서 그의 아들을 교감으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학교가 이처럼 비리의 저수지가 되다보니 학교 시설은 물론 운영 자체가 온전할 리 없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시설 신축이 '설계 따로, 공사 따로'인 것은 물론 "공사서류가 모두 변태서류라 들여다보기조차 겁이 난다"는 종합감사 시설공사감사관의 말을 예로 들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겁니다. 인근학교에 비해 너무도 부실한 학교가 되어버려 관내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지원하게 되니 자연히 학생모집에도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제 마음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괴롭고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이상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경남 고성군 철성중학교를 1996년 4월 박 아무개 교장이 매입했다는 소식을 그 학교 교사들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영덕여고 공금을 횡령해 철성중학교를 매입했구나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학교는 점점 망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 저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아무개 행정실장에게 "제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고 하면서 교장선생님의 공금횡령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몇 번이나 간청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만 당하였습니다. 행정실장은 '실컷 해먹도록 가만히 시키는 대로 해라. 언젠가는 안하겠지. 내가 있는데 네가 왜 앞서느냐'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 후 실장은 업무에 손을 놓았습니다.

저는 그냥 행정실장 시키는 대로 말없이 주어진 직임에 복종하였습니다. 할 말은 많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행정실장이 할 일까지 제가 다 해야 하니 밤마다 야근을 해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저는 별다른 취미도 없이 오직 일에 매달려 살았고, 일과 교회에 가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름대로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밤마다 울면서 내 자신에게 묻고는 행정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잘 때가 많았습니다. 교직원들이 "김 주사, 왜 퇴근 안하느냐"고 말합니다. 저는 "집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괴로운데 학교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학교일을 내 취미로 생각하고 천직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좋은 학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누가 희생할 것인가?

3년에 한번씩 경북도 교육청 종합감사가 오게 되면 한 달 전부터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서류는 거짓말투성이라 서류를 재정비하느라고 죽을 고생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 볼까봐 밤에 준비하다 보면 마음은 괴롭고 신세는 처량해 흐느끼다가 장부에 눈물이 흘러내려 장부가 훼손될 때도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항상 지시합니다. 서류 잘 챙겨라, 캐비닛과 행정실 교장실 문 잘 잠가라, 전교조 선생들 무엇을 노리는지 알고 있느냐, 예결산서다, 잘 챙겨라,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팩스는 항상 교장실에 두고 보낼 것 있으면 교장실에 와서 보내라 등등등. 왜 팩스를 교장실에 두느냐, 비밀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고 교사들이 말합니다. 교장은 항상 누구에게 쫓기는 마음, 불안한 마음으로 근무합니다. 무슨 비밀이 그리 많은지 수시로 마산 출장 가면서도 철성중학교에 간다는 말은 절대로 비밀로 합니다.

교장선생님에게도 마음이 괴롭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교장은 '이 사람아 수억을 쓰는데 이 돈 학교 인수자금 빚 갚는 데에 썼다, 학교를 운영하다보면 남이 모르는 돈이 많이 든다, 이해해라, 동생도 포항 사립학교에 근무하잖나, 물어봐라 다 이렇게 한다, 이렇게 안하는 사립학교 어디 있느냐, 내 머리 맑게 해라' 하면서 짜증을 내며 핀잔만 줍니다. 싸울 수도 없고 내 마음은 점점 괴로워지기만 했습니다. 기숙사, 급식소, 화장실 등 시설은 비가 새고 냄새가 나서 영덕여중 학생들은 학교시설이 좋은 영양여고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아지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2004년 6월 저는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 교직원에게 내부적으로 해결하자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걱정하는 교직원들은 많았으나 누구도 앞장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2004년에 교장에서 이사장이 된 박 아무개는 '하고 싶으면 해봐라. 법으로 하자. 설마 인터넷 공개하겠나, 터뜨리지 말고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고단수다, 터지면 학교 망한다, 김주임 조용히 처리해주면 행정실장 시켜준다, 이사장 기분 맞춰 주고 서로 서로 양보하면 김 주사도 좋고 학교도 좋을 것이 아니냐'며 한번만 모른 척 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1995년도에 횡령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2004년도 횡령사건도 모른 척한다는 것은 학교를 망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내부고발 안 해도 편하게 근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살려고 학교가 망하고 있어도 방관해야 합니까? 5개월 동안 무수한 나날을 고민했지만 저는 외로웠습니다. 내부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11월초에 교장에게 인터넷으로 공개하겠다고 알렸습니다. 2004년 11월 21일 최순영 국회의원 홈피에 알렸습니다. 그 후부터 이사장, 교장, 교감, 행정실장, 이사장 사모로부터 공갈, 협박, 조롱, 회유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행정실장은 기능직원을 시켜 지출증빙서류까지 소각했습니다.

2004년 12월 1일 최순영 국회의원실에서 사립학교 행정실 실무자로서는 도저히 하기 힘든 최초의 내부고발 양심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경찰에서 서류를 압수 수사하고 이사장을 구속해 법원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이 떨어졌습니다. 그 후 경북도교육청에서도 특별 감사를 실시해 횡령액 1억6350만2340원을 추징했습니다. 판결로 전 임원들은 전원 해임되고 2005년 2월 25일 경북도교육청에서 임시이사회가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습니다. 내부고발하게 되면 좋은 학교가 될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임시이사회와 전 교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좋은 학교를 위해 연구를 해도 시원찮은데 시각차가 너무나 컸습니다. 서로서로 원망하는 학교 분위기였습니다. 교사들은 '비리재단 족벌교감이 도의적으로 책임지고 물러나라'며 교감과 매일 대치하고 있습니다. 교감은 전 이사장의 아들입니다.

이 아무개 임시이사장은 저만 보면 학교가 명예훼손된 것은 김중년이가 책임져야 된다, 밖에서 김중년 그 사람 아직도 근무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며, 저에게 은근히 고통을 주었습니다. 조용하게 덮어 있던 비리가 밝혀지면 시끄러워지는 것은 당연한데 수습하지는 않고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며, '학교를 시끄럽게 했다. 행정실장 하고 싶어 내부 고발했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별별 얘기가 다 들렸습니다. 개인비리를 고발해 우리까지 힘들게 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시끄럽게 한다. 반역자다. 배신자다. 어느 학교나 다 관행으로 한다. 영덕여고보다 더 많이 횡령하는 학교도 많다. 생각보다 횡령액이 얼마 안 된다. 많은 물고기 가운데 박 아무개 이사장이 재수가 없어서 걸려 이렇게 됐다. 잘해먹는 자가 실력 있는 자다. 못해먹는 사람이 바보다….

언론사 기자도 사립학교가 썩었다는 것은 다 안다고 말합니다. 국민들도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청도 사학비리가 많은 것은 대충은 알고 있지만 제보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사립학교 감사는 서류감사이고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비리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리를, 이사장 친필의 위조서류 증거까지 제시한 제 양심선언이 허공에 외치는 구호가 된다면 어찌 좋은 학교와 투명한 세상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경북도교육청과 교육청에서 파견한 임시이사회는 비리를 구조적으로 척결하는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개인비리로 이 사건을 마무리짓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 좀 조용해지면 차후에 박 아무개 이사장이 일선에는 복귀하지 않더라도 뒤에서 충분히 조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비리재단이 학교로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2005년 8월 31일 저는 공금횡령사건 홍보물을 경북도교육청과 도내 기관단체에 인터넷으로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임시이사회에서는 학교명예훼손이라고 저를 해임해버렸습니다. 저는 오로지 좋은 학교 만드는 일이라 믿고 학교명예가 훼손될까봐 실명은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박아무개 이사장 공금횡령 때문에 실추될대로 실추된 학교 명예를, 행정실 직원이 힘이 없다고 뒤집어 씌우면서 서슬 퍼런 칼날로 난도질한다면 누가 사립학교의 부정부패를 외치며 사립학교 비리를 척결할 수 있겠습니까?

사립학교 비리척결은 저와 같은 내부고발자가 많이 나와야 해결됩니다. 부패방지법에 내부고발자 보호조항이 있습니다. 신고자가 신고로 인해 소속기관, 단체, 기업 등으로부터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임시이사회에서 결정한 해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내부고발자가 못나오도록 하는, 법에도 어긋난 처사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26년간 한 학교에서 열과 성을 다해 일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근무한 세월과 어떻게 일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제가 학교명예를 훼손하고 시끄럽게 했는지, 좋은 학교를 만들고 사학비리 척결을 위해 노력하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제 양심의 소리를 말했고 앞으로도 말할 것입니다. 제 작은 일이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다만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정직한 마음이 중요시되는 오늘날 부족하지만 학교와 사회,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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