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간과 신장 기능이 멈추는 등 사망이 임박한 가운데 장례식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고 장지는 팔레스타인 라말라로 결정됐다. 아라파트라는 중동의 큰 별이 지게 되면서 팔레스타인과 중동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 “아라파트, 매우 위독한 상태”**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10일(현지시간)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9일부터 프랑스 군병원에 입원중인 아라파트 수반의 상태는 “매우 위독한 상태”라며 “심장과 폐 기능은 살아있지만 간과 신장 기능은 죽었다”고 밝혔다.
샤스 외무장관은 “아라파트의 병세는 이날 더 악화됐으며 팔레스타인 이슬람 고위 성직자가 병상을 방문한 것도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이슬람 종교의식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집트가 카이로에서의 국장을 제안했고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며 “장례식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장지는 팔레스타인 서안 라말라에 있는 자치정부 청사인 무카타”라고 발표했다.
아라파트 수반의 고위 보좌관인 나빌 아부 루데이나도 이날 장례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카이로에 도착해서 “아라파트가 의사들이 말한 대로 수시간 안에 사망하면 장례식은 12일날 카이로에서 거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은 이집트, 장지는 팔레스타인 라말라”**
이에 따라 이집트는 아라파트 장례식을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치루기로 하고 이에 대한 준비에 착수했다. 카이로에서 아라파트 국장이 열리게 된 배경에는 아라파트가 이집트에서 대학을 다니는 등 ‘제2의 고향’인 이유도 있지만 정치적 이유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에서 장례식이 치러져 그곳에 들어가려면 이스라엘을 거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이스라엘과 평화협약을 맺고 있지 않은 이집트와 요르단을 제외한 다른 아랍국 정상들은 상당히 꺼릴 것이라고 AP 통신은 전했다. 아울러 이집트가 장소를 카이로에서도 국제공항으로 정한 것도 장례식을 치른 후 바로 헬리콥터로 라말라로 이동하기 쉬운 점과 군중 소요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당초 고려했던 타흐리르 광장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쉬워 이후 과정에서 배제됐다.
장지도 당초 이스라엘측은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측은 예루살렘을 주장했으나 타협점으로 아라파트가 지난 3년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 무카타로 하기로 양측은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무카타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최대 성지로 부각되면서 새로운 순례지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라말라에서는 묘지 조성을 위해 불도저 등 장비가 동원되고 있는 중이다.
***부시, “새 지도부 건설되면 중동평화 기회열려”**
한 세대를 풍미했던 아라파트 수반의 사망이 임박함에 따라 중동정세에 미칠 영향에 벌써부터 미국 등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새로운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건설되면 중동 평화를 위한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미국은 자유로운 사회를 위한 제도를 건설하는 데 도우러 나설 것이며 팔레스타인은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 속에서 공존하고 지내는 두개의 국가 건설이 목표”라며 “그러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며 미국은 그러한 과정에 참여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1기 임기 동안 아라파트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팔레스타인내 무장세력의 이스라엘 공격을 막아내는데 실패했다고 비난하며 2001년부터 아라파트에 대해 가택연금 조치를 취했었다. 이후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가택에서 벗어나면 무차별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끊임없이 가해왔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발하기 앞서 “중동 갈등을 푸는 것이 급선무”라며 “중동 평화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다시한 번 강조할 것”이라고 말해 아라파트 사후 중동 정세 안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팔레스타인 후계구도 관심 집중. 압바스-쿠라이 대두**
아라파트 사후 팔레스타인 후계구도가 어떻게 정리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나 그동안 후계자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라파트 정책으로 인해 그의 카리스마와 권위를 승계할 마땅한 후계자는 뚜렷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자치정부 수반, 팔레스타인 최대 정파인 ‘파타’ 대표 등 세가지 직함을 갖고 있는 아라파트라는 구심점이 없어짐에 따라 이후 팔레스타인이 난국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후계구도에서 등장하고 있는 2인은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전 총리와 아흐마드 쿠라이 현 총리다. 이들은 모두 비교적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압바스는 PLO 사무총장과 파타운동 2인자로 권력 중심부에 있으면서 지난 40여년간 아라파트의 오른팔이자 2인자로 상징적 지위를 지켜왔다. 그는 아라파트의 그늘에 가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대중적 인기나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아랍 지도자들과 탄탄한 인맥을 쌓아와 자연스럽게 아라파트의 후계자로 거명돼 왔다. 특히 이스라엘과 미국은 물론 아랍 지도자들도 그를 자치정부 초대 총리로 강력히 천거했었다.
반면 쿠라이 총리는 현직 총리라는 이점과 3인 집단 지도부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쿠라이는 특히 지난 6일 팔레스타인내 전체 13개 무장저항세력과 극히 이례적으로 회동, 팔레스타인 단합을 이끌어내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부패의혹과 무능으로 자치위원들로부터 퇴진압력을 받아 왔고 대중의 지지기반도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권력분점 가능성 크나 지지 확보 여부 미지수**
BBC는 이와 관련 이들은 나이가 많고 ‘색깔’이 없다는 점 때문에 한사람이 그대로 아라파트의 모든 직위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집단지도체제가 형설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아라파트의 사망 이후 자치의회 의장이 직무를 대행하도록 한 기본법에 따라 라우히 파투 의장이 수반 권한대행을 맡게 되며 이후 60일 이내에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 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기구인 PLO 의장을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쿠라이 총리는 자치정부를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팔레스타인내 이들의 권위가 높지 않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지난 9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단지 3%만이 쿠라이를 지지한다고 나왔으며 압바스에 대한 지지도 2%에 불과했다. 반면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인 마흐무드 자하르가 아라파트 다음으로 많은 지지도인 15%를 보였으며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있는 마르완 바르가티가 13%의 지지율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제 3의 후보들도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 또한 그리 강력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그 중에는 무하마드 다흘란 전 가자지구 치안대장도 포함돼 있으나 가자지구에서는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나 서안에서는 별다른 지지기반이 없고 너무 친미적이라는 비판도 걸림돌이다.
이밖에 최대 정파인 파타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하나 파타는 하나로 통합되기가 요원해 보이며 아파파트 사후에는 보다 더 분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외신들은 바라보고 있으며 하마스도 물론 강력한 후보군 중에 하나지만 전체를 아우를 만한 충분한 정치력과 지도력은 없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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