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이하 코로나) 사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동안은 이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처음 중국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 한국은 안전한 듯 했으나, 대구 상황이 보여주듯이 바이러스 전파는 순식간이었다. 사람들은 외출을 삼가고 모임과 접촉을 피했으며 매일같이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칩거'에 돌입했다. 영화 <감기>(김성수 감독)에 나왔던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신종 조류 독감의 하나인 변종 감기 바이러스 전파를 소재로 한 재난 영화로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세계의 현실과 몇 가지 유사한 측면을 보여준다.
바이러스는 컨테이너를 통해 홍콩으로부터 밀입국한 불법 입국자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에 전파됐고 한국 정부는 초당 3.4명 감염과 36시간 내 사망이라는 사상 최악의 전파 속도와 치사율을 가진 슈퍼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돌입한다. 바이러스 발견 즉시 정부는 '선 격리 후 발표'라는 정책을 세우고 분당 폐쇄 작업에 착수한다.
영문을 모르는 분당 시민들은 격리 시설에 집결됐고 모든 사람들은 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판정 받았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의 과도한 인구 밀도는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켰고 감염자와 사망자의 급속한 증가는 궁극적으로 '살처분'이라는 비윤리적인 방식을 통해 수습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사실을 알게 된 분당 시민들은 탈출을 감행하고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고자하는 정부는 분당 폐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렇게 살아남으려는 자와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름으로 관철되는 폐쇄의 유지는 폭동으로 이어지고 결국 대통령의 개입으로 영화는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이러한 영화의 전개는 어렵지 않게 코로나 사태를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 역시 호흡기 계통을 통해 전파되는 전염성 바이러스이고 코로나의 최초 발생지였던 중국의 우한(武漢) 역시 도시 전체가 강제 폐쇄됐다. 슈퍼 바이러스의 확산이라는 국가적인 재난 앞에서 정부의 개입과 대처, 언론의 역할 등 영화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들이 코로나 사태를 연상시켰다.
초기 방역과 대처의 중요성
영화 <감기>가 강력하게 환기시키고 있는 것은 전염성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했을 당시의 초기 방역 작업과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초기 대처는 유감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영웅 리원량(李元亮)'의 사례는 이를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위쳇(Wechar)을 통해 지속적으로 꾸준히 전파되고 있는 모멘트 하나가 있다. 바로 '그녀의 호루라기 소리가 멈추지 않게 해주세요!(别让她的哨声停下!)'라는 제목 하에 진행되고 있는 모멘트 릴레이이다.
이 모멘트는 최초로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외부로 알린 우한시 중심병원 응급과 주임인 아이의사(艾医生)에 관한 사연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리원량은 '코로나 19'의 위험성을 '고지'했다는 이유로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당시 같은 이유로 조사를 받은 사람은 리원량 한 사람만이 아닌 그를 포함해서 모두 8명이었다. 이 8명의 의사가 정보를 공유하고 확산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이의사' 덕분이었다.
2019년 12월 31일 '아이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환자의 바이러스 검측 보고서를 받아보게 되는데, 보고서에서 그녀는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을 보는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한다.
그녀는 즉시 병원의 관련 부서에 그 심각성을 전화로 알렸고 응급실 단톡방에 비상사태를 고지했다. 그리고 보고서상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 부분을 빨간 펜으로 표기하여 사진을 찍어 다른 병원의 동료 의사에게 전달하였다. 바로 그날 저녁으로 이 정보는 우한시 전체의 의사들에게 전달되었고 바로 다음날인 2020년 1월 1일 저녁 11시 46분에 그녀는 병원 감찰과(監察科) 과장으로부터 면담 요청 문자를 받았다.
'아이의사'도 리원량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비록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는 데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 면담에 대해 "전에 없는 엄격한 질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면담에서 그녀는 어엿한 전문가로서 어떻게 그렇게 원리원칙도, 규율도 없이 유언비어를 유포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질책을 면전에서 받음과 동시에 응급과로 돌아가 응급과 소속 전원을 상대로 일일이 찾아다니며 위쳇으로 공유하지 말 것, 문자로 전달하지 말 것, 무릇 코로나에 관련해서는 일체 함구할 것이라는 상급의 지시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심지어 그녀는 남편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 이러한 사연이 알려진 것은 그녀가 3월 2일 우한 한 잡지사의 인터뷰에 응하면서였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그녀가 근무하고 있는 응급실은 항상 붐비고 복잡했다. 매일 사람들이 넘쳐났지만 그럼에도 200여 명 규모의 응급실은 그녀의 지휘 하에 잘 관리되고 유지되는 편이었다. 1월 21일 응급실은 1523명의 환자를 접수했고 이는 평상시 최대치의 3배에 가까운 수치였다. 하지만 이것이 최고치는 아니었다.
중환자실과 입원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환자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되자 환자들은 응급실에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접수를 위해 5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고 접수 이후에도 또 기다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은 진료받을 기회조차도 얻지 못했다.
평상시 불평불만으로 일관되던 환자들의 그 많던 민원이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부터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더 이상 불평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한 노인은 32살 아들의 죽음 앞에서 기가 막혀 울지도 못했고 그저 멍하니 사망진단서를 떼는 의사의 손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이미 포기하고 있었고 죽어가고 있었다.
가족과의 외식, 주말의 나들이,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 이러한 소소한 일상들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행복이 되었고 사치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또 살아있는 것 자체에 무한히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이의사'는 자신이 겪었던 일과 우한시 중심병원 응급실이 겪었던 '코로나 19' 사태의 경과를 담담하게 기술하면서 당초 본인이 내렸던 결정을 너무 후회한다고 전했다. 조직의 면담과 훈시 앞에서 그녀는 입을 닫아버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무방비 상태로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그녀는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녀와 리원량은 같은 병원에서 근무했지만 서로 얼굴은 알지 못했다. 리원량의 죽음에 대해 '아이의사'는 심리적인 타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비록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지 않았지만 조직의 면담이 자신에게 가해진 심리적 타격을 감안할 때 리원량의 그 조사는 아마도 그의 생명을 단축시켰을 것이라고 하였다.
천재지변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인간이기에 그런 천재지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능력이 있다. 더 이상은 이러한 인위적인 요소에 의한 사태의 악화가 발생되어서도 안 되고 또 다시 이런 잘못이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덧붙여 지금 이 시각에도 일선에서 고투하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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