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여성 196명, 주변 남성에 죽거나 죽을 뻔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여성 196명, 주변 남성에 죽거나 죽을 뻔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결과 발표

"데이트 요청을 거절해서"
"결별한 뒤 만나주지 않아서"
"피해자의 몸을 만지려다가 거부당해서"
"재결합을 거절해서"
"결별 후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경찰에 신고해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욱해서"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6일 '2019 분노의 게이지-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를 취합했다.

이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8명, 살인미수를 포함하면 피해자는 196명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취합한 '최소한'의 결과다. 적어도 1.8일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죽거나 죽음의 위기를 겪는다는 의미다. 피해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3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 통계는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라며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실제 피해 여성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남을 거부해서" 살해했다는 가해자들

가해자가 진술하는 범행 동기를 살펴보면,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가 58명(29.6%),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 이를 문제 삼아'가 25명(12.8%), △'자신을 무시해서' 17명(8.7%), △'성관계를 거부해서(성폭력)' 3명(1.5%)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는 여성이 말을 듣지 않았거나 가부장적인 성역할을 벗어나는 등 남성인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났을 때 남성은 이 여성을 '죽여도 된다'는 인식이 반영된 범행 동기"라고 분석했다.

가해자들의 29.6%는 "홧김에", "싸우다 우발적으로" 여성을 살해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며 '홧김에'·'우발적으로' 여성을 살해했다는 남성 가해자가 평소에도 지속적으로 여성을 폭행했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거나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점 등"을 이유로 감형하기도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폭력의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계획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자는 '폭행치사', '과실치사' 등 살인죄에 비해 경한 죄목을 적용받거나 감형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는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통계를 내고 있지 않아

한국여성의전화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분석한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975명이다. 살인 미수까지 포함하면 1810명, 피해자의 주변인까지 포함하면 2229명이다. 분석에 따르면 언론에 보도된 여성살해 피해자 수는 2012년부터 매년 2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처럼 많은 수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공식적인 통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언론 보도를 통해 짐작만 할 뿐, 여성 대상 범죄가 어떤 관계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 기본적인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9-2019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피해자 수 ⓒ한국여성의전화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피해자의 인권보장을 최우선으로 해야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가정폭력을 사회적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기 위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로 인해 국가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장보다는 가정을 다시 '가꾸기 위해', '상담'으로 가해자의 처벌을 면제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조장하는 등 피해자를 위험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러한 정책의 기조는 데이트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문제에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

2018년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제8차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한국 정부 심의를 통해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을 피해자 및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또 합당한 가정폭력 범죄의 해결 및 처벌을 위해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폐지 및 화해·중재를 통한 해결 금지', '가해자의 법적 처벌 보장'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는 요원하다.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 개정, 스토킹처벌법 제정 등 여성의 생존권과 직결된 중요한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수 십 년간 국회에서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사실상 통과되기는 어렵다. 그나마 다행은 지난해 12월에 시행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통해 국가 통계 구축을 위한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국가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과 여성살해의 문제 해결을 도외시하는 동안 매년 수백 명의 여성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국가는 여성살해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해석해 여성폭력 관련 정책 전반을 되돌아보고 전면 쇄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