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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안의 '빅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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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차 안의 '빅브라더'

[기고] 기차 운전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자고?

국토교통부는 2019년 9월 감사원이 발표한 <철도안전관리 실태> 감사보고서(이하 보고서)를 근거로 철도 안전 확보를 위한 철도안전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열차 운전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기관사의 움직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영상으로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열차 사고 발생 시에는 영상 기록을 근거로 기관사를 엄정하게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법 만능주의 시대로 돌변했다. 충분히 조정과 협의가 가능한 일에도 일단 고발부터 해 검찰과 사법부의 영역으로 옭아맸다. 정치가 실종되고 사회적 조정은 사라진 대신 검찰이 해결사가 되고 사법부가 최후의 결정권자가 되었다. 역사가 증명하듯 검찰과 법원이 모든 사안에 정의로운 판단을 내린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의는 지연되어 구현되거나 고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법은 딱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

이런 현상이 행정부에서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나타난다. 갑자기 감사원이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거듭났다. 최근 몇 년 간 국토부는 철도와 관련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 했다. 국토부가 마땅히 책임지고 관리하고 집행해야 할 철도 산업 정책이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감사원에 답을 요청한다. 국토부는 감사원 보고서를 '절대 반지'로 활용하려는 듯하다. 마치 이전에는 몰랐던 것을 감사원 감사 결과로 알게 된 것처럼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개선안(?)을 마련한다. 그런데 감사원 보고서를 보면 국토부가 제출한 자료와 논거를 바탕으로 결론이 내려진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일종의 청부 감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철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철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국토부 관료들이 철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감사원을 활용하는 현실은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다. 국토부는 산하기관에 대한 관리감독과 처벌 등 행정 권력을 가지고 있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주변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행정 권력을 가진 부처는 산하기관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권력이라는 망치를 높이 든다. 그러나 사회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간이다. 국회를 비롯해 시민단체도 있고 노조도 존재한다. 행정부는 형식적으로라도 일방적 밀어붙이기라는 형태를 숨겨야 한다. 이때 추상같은 감사원 감사결과 만큼 망치를 휘두르기 좋은 핑계는 없다.

국토부가 주도하는 열차 운전실 감시 카메라 설치 안은 국토부의 주장과 달리 철도 안전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는커녕 철도 안전이 추구해야 할 바를 왜곡한다. 철도 안전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보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다. 결국에는 관료들이 추진한 여러 가지 무의미한 정책 중의 한 건으로 전락할 것이다. 적지 않은 예산이 낭비되는 것은 보너스다.

여기서 잠시 감사원 감사 결과로 나온 운전실 감시 카메라 설치 이유를 들어보자. 감사결과보고서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을 경우 사고 조사 및 사고 경위 파악 등에 애로가 많아 운전실 내부 촬영이 필요하다는 국토부 의견을 인정해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런데 감사원이 인용한 국토부 의견은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실 관계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 왜곡과 억측으로 제시된 의견을 토대로 감사원 결정이 이루어진다면 감사원 감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열차 안에는 운전정보기록장치가 설치되어 80여 가지 항목이 기록되며 기관사의 운전 취급 행위 및 열차 상태에 대해 1/100초 단위로 정보가 수집된다. 때문에 감시 카메라 설치는 국토부의 행정 과잉이자 권력남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세 가지 의견을 제시 했고 감사원은 당연하다는 듯 수용했다. 세 가지 다 어이없는 의견 이지만 지면 관계상 첫 번째 항목 하나만 소개한다. "기관사 2인이 승무하는 경우 운행정보기록장치로는 누가 (운전)조작했는지 확인 곤란"이다. 국토부 담당자의 사고체계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국 철도와 지하철의 상당 열차는 기관사 1인 운전 체제이다. 2인 승무 열차도 앞으로 대거 1인 승무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운행되는 대다수 열차는 기관사 1인 승무 체제이다. 2인 승무를 핑계로 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또한 2인 승무 열차의 경우에도 각각의 기관사는 운행구간이 사전에 정해져 있다. 불특정 다수도 아니고 2인 승무이기 때문에 누가 운전했는지 모른다는 것은 국토부 관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운전자를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문제가 생긴 지점에 운전한 기관사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된다. 둘 중 한명이 대답할 것이다.

철도 운행국가들은 철도 사고를 줄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람직한 철도 안전체계를 확보했다고 평가받는 나라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엄벌주의 탈피이다. 사고를 유발한 환경과 조건을 무시한 채 사고 발생의 최하위 단계에 연관된 관련자를 처벌 하는 것만으로는 철도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철도 선진국들이 추구하는 "책임추궁에서 원인규명으로"라는 슬로건은 철도 사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 UIC Safety Report 2019, 2019 국제철도연맹 연례 안전 보고서 中 철도사고 원인


강력한 처벌로 압박하거나 성과제도에 연동시킬 경우 큰 사고는 축소되고 작은 사고는 은폐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관련된 모든 부서가 자신들이 얼마나 사고에 연관되어 있는지만 신경 쓰게 된다. 책임이 전가되고 심지어는 조작이 이루어진다. 이런 환경은 마침내 더 큰 치명적인 사고를 불러온다.

철도 안전 인식과 철학에 대한 수준으로 보면 한국은 후진국을 못 면하고 있다. 철도 사고를 대하는 언론 보도의 첫 마디는 '안전 불감증'이다. 안전의식의 민감도를 높이거나 항시적 각성상태로 늘 안전만 생각한다면 철도 사고는 사라질까? 정부는 "기강해이 엄단" 이다. 안전이 군기 잡기로 확립된다는 발상이다. 처벌을 강화하고 벌금을 높이고 과태료를 부과해서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과실을 저지를지 모르는 기관사를 감시하기 위한 운전실 카메라다.

세계최대 철도 기구인 국제철도연맹(UIC)은 매년 철도안전보고서를 발간한다. 2019년 판 UIC 안전 보고서에는 가맹국에서 전년도에 일어난 철도사고를 분석해 그 원인을 밝힌 자료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휴먼에러, 즉 인간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 사고는 전체 사고의 3.6%에 불과하다. 휴먼에러 항목에는 선로 및 분기기 관리 요원의 실수, 관제원 실수, 기관사 실수 항목이 있다. 이중 기관사의 실수로 사고가 난 비율은 0.7%에 불과하다. 철도 사고 원인의 99.3%가 기관사가 아닌 다른 요인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국제철도연맹의 공식 보고서가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철도 안전 대책은 사고를 유발하는 99.3%의 원인들에 대한 조사와 분석, 대책 마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관료들은 사고 원인의 0.7%에 불과한 기관사 오류를 바로잡으면 철도 안전도가 급상승할 것처럼 포장해 안전대책으로 내놓고 법제화 하려 하고 있다. 무지와 몰상식이 불러온 한 건 주의 행태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 행정 권력은 무소불위, 눈과 귀를 막고 시민과 노동자 위에 군림함으로서 그 이상을 실현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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