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한국 사회는 온통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다. 비교적 잘 통제되고 있다가 31번 환자를 비롯한 신천지 교도의 집단 전염 이후 연일 확진자가 500명 이상씩 쏟아지며 3월 6일 현재 전체 6,000명을 돌파하고 끝내 유명을 달리한 분도 40명을 넘어섰다. 온 국민이 불안과 공포로 떨면서 외출과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개인위생과 방역, 치료다. 개인은 손씻기, 마스크 사용,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고, 국가는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방역을 하고 위급한 곳에 의료와 재정을 합리적으로 투입하여 한두 주일 내로 진정국면으로 전환하고 한두 달 내로 코로나 19 퇴치 선언을 하여 민생을 추스르고 경제도 살려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도 곧 지나갈 것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한국 사회에서 이보다 더 위중한 문제는 공론장의 붕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주술, 광기, 공포, 반지성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것이 만든 혐오와 가짜뉴스,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를 몰아내고 공론장을 회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계속 출현할 새로운 바이러스의 방역도, 민주주의도 불가하다. 설혹 코로나 19를 퇴치하여 몸이 건강한 사회를 복원했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병든 사회로 남을 것이다.
흑사병, 공론장의 형성으로 극복하다
1347년 이후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당시 인구의 30∼60%인 1억 명이 죽었고, 그 후 19세기까지 합치면 최대 2억 명이 사망했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죽음을 맞은 마을이나 도시도 많았다.(<영문 위키피디아>) 주로 사람이 밀집했는데 물이 오염되고 하수시설이 미비한 도시의 하층 주거지역에서 사망자가 많았지만, 시골과 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가 전 유럽을 뒤덮었다.
과학적인 진단과 처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교황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성직자들은 이를 신이 내린 벌로 간주하고 대중이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속죄할 것을 강요하여 흑사병이 더 빨리 번지게 했다. 채찍질 고행단(Confraternities of Flagellant)은 채찍질로 자신의 몸을 때리는 고행을 하여 죄를 씻으라고 강요했다. 이들은 마을을 순례하며 흑사병을 전염시켰다. 나중에는 점점 과격해져 인종대학살을 선동하고 유대인을 발견할 때마다 죽였다.(존 켈리, <흑사병시대의 재구성>) 공포로 인한 혐오와 배제의 집단 히스테리가 작동한 것이지만, 성직자들 또한 흑사병에서 잃은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무고한 여인들, 특히 보호와 변호를 자처할 사람이 없는 과부들을 마녀로 몰아 거의 50만 명을 불에 태워 죽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내성이 생긴 것도 기인하지만, 영양을 개선하고 환자를 격리하고 검역을 실시하고 방역 등 공중보건 정책을 실시하면서 흑사병 시대는 막을 내렸다.(수잔 스콧, 크리스토퍼 던컨, <흑사병의 귀환>)
죽음의 공포 속에서 대중들은 경험과 사례를 통하여 기도가 아니라 과학이 자신을 흑사병으로부터 구원함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상하수도의 개선, 격리, 검역을 실시한 도시에서는 흑사병 사망자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이 소문이 퍼져나가고 정치집단도 차츰 과학적 대안들을 수용하고 실시하면서 교회의 권위는 무너지고 공론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혁명과 계몽사상, 산업화와 도시화, 보통교육, 금속인쇄와 출판의 대중화 등이 보태지면서 의식의 각성을 한 시민들이 교회 바깥에 시민사회를 구성하였다. 시민들은 책을 읽고 신문을 보며 살롱 등에 모여 모든 사람들이 원칙적으로 동등한 기회와 권력을 갖고서 과학과 이성에 근거하여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을 하고 여론(public opinion)을 형성하고 때로는 합의(consensus)에 이르렀다. 부르주아의 공론장(public sphere)을 만든 것이다.
공중(public)은 공론장에서 합리적으로 토론을 하며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흑사병, 연금술, 면죄부로 대표되는 어두운 주술의 정원에서 탈출하여 계몽의 빛이 환하게 비추는 세계로 나아갔으며 이것이 과학발전과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언론이 ‘제조된 공론장’을 만들고 복지국가가 정착되며 사적 부문과 공적 부문이 상호침투하고 관료체계와 엘리트주의가 평등한 토론을 방해하고 대중 또한 문화산업과 엔터테인멘트에 휘둘리면서 공론장은 쇠퇴하였다.(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변동>)
주술, 광기, 반지성으로 공론장이 붕괴되다
우리는 어떤가. 18세기에 상공업의 발전을 토대로 성장한 중인(中人)들은 양반이 독점하던 한문으로 읽기와 쓰기와 생산수단을 분점하면서 한문 정전에 담겨 있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실학자들과 일부 여성들이 가담하고, 민중들은 두레공동체를 바탕으로 민회를 조직하면서 공론장이 싹텄다. 이후 공론장은 근대 신문과 방송의 출현, 보통교육, 시민과 민중의 성장을 바탕으로 약간의 발전을 보이지만, 일제와 미군정,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는 강한 억압 아래 미미한 저항을 하는 형태로 지속하였다. 그러다가 87년 이후 공론장은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양자를 매개할 정도로, 2016년에는 정권을 교체하는 바탕을 형성할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이는 거의 해체 수준으로 붕괴되고 있다. 언론, SNS, 교육, 지식인 모두가 올바르고 정확한 공론을 조성하는 데서 비켜 서 있고, 공론장의 적인 주술과 광기, 공포, 반지성이 한국 사회를 압도하고 있다. 보수언론과 종편은 객관적 사실까지 왜곡하며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선전전과 여론조작, 프레임 형성에 몰두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는 전염병에 맞서서 과학적, 의학적으로 분석하고 합리적 대응 방식을 제시하는 대신 정부를 무조건 비판하고 공포를 조장하여 총선에서 수구 보수정당이 유리한 국면을 맞게 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일베’에 오른 음모론을 버젓이 기사화하는 언론도 있었다. 수구 보수 야당은 일말의 정당성과 합리성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문재인 정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개혁의 걸림돌과 공론장 붕괴에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이 ‘중국으로부터의 입국금지론’과 ‘정부 방역 실패론’만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이 상황에서 등장한 신천지 집단은 주술적 사고로 무장한 채 위법과 거짓, 은폐와 조작을 남발하고 있다. 상당수의 목사들은 마치 채찍질 고행단처럼 과학과 의학을 부정하고 주술과 광기를 고집하고 있다.
지난 조국 정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지식인이건 대중이건 정치인이건 할 것 없이 조국 장관이 울타리 안 기득권자의 편법을 답습하며 범한 명백한 잘못에 대해 서도 궤변까지 동원하며 무조건 두둔하였다. 검찰의 과잉대응과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정권의 권력 수호를 위한 검찰압박까지 감싸고 공수처를 넘어 검찰을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 견제할 수 있는 합리적 논의 자체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 중 몇몇 인사들은 위기에 놓인 대구경북 시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기는커녕 혐오와 배제를 조장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또한 조국 구하기와 권력 유지에만 몰입하며 합리적 토론과 담론 형성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는 환자가 숨어버리고 진실을 은폐하기에 방역의 성공요건이 자유스런 분위기와 인권존중임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신천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압박하고 그 대표를 고발하는 등 주술에 주술로 대응하며 합리적 공론을 해체하고 있다.
대중들은 SNS에서 보고 싶고 읽고 싶은 것만 접하면서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있다. 이로 폐쇄된 공간에서 비슷한 정보와 생각이 돌고 돌면서 강화되고 악순환을 일으키는 반향실효과(echo chamber effect)는 더욱 증대하고 있다. 그동안 진영의 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조국 사태 이후 진보와 보수만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인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진영 사이의 벽은 더욱 공고해졌다. 밀레니엄 세대하고도 확연히 구분되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 세대들은 140자가 넘으면 읽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여 문자를 통한 인식과 사고, 성찰을 거의 하지 못한 채 이미지와 정감에 휘둘려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SNS에는 코로나 19에 관련된 가짜뉴스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매일 생산되어 돌아다닐 정도로 난무한다.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전문가나 지식인조차 가짜뉴스를 전파하고 있는데 그 가짜뉴스조차 읽어보면 진영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필자가 들어가 있는 카톡방에 가짜뉴스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 글을 올려놓아도 그와 똑같거나 유사한 가짜뉴스가 또 올라온다. 그 정도로 지금 공론장의 붕괴는 심각한 수준이다.
과학적 지성과 연대가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곧은 목소리를 내며 공론장 회복의 선두에 서야 할 지식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은 이미 진리탐구의 실천도량에서 기업연수원으로 전락하고 학문공동체는 완전히 붕괴하였고, 대다수의 교수들은 신자유주의의 탐욕을 내면화하면서 대의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은 방기한 채 연구업적과 지분 관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사회적 발언을 하던 교수들조차 조국 사태 이후 옹호자와 비판자로 갈라져 오히려 반향실효과만 키우고 있다. 탐욕과 경쟁에서 지친 대중들을 끌어안고 치유해야 할 교회와 절이 시장질서에 편입되어, 대다수 성직자와 수행자들은 하느님과 부처님보다 돈을 더 섬긴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이 아니라 정통교회와 절조차 채찍질 고행단처럼 과학과 이성을 부정한 채 기복신앙에 의존하여 대중에게 주술을 강요하며 합격발원기도비 등 각종 명목으로 수탈하고 있다. 이를 올곧게 비판하고 길 잃은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목자(牧者)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중 그동안 여당과 긴밀한 관계에 있거나 없더라도 노선과 이념을 같이 하는 몇몇 인사들과 지식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위성비례정당을 만들었다. 이들은 부족하나마 소수의견이 제도 안으로 수렴되고 정당의 지지율이 국회의 의석수에 근접하여 민주주의 선거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길마저 막고 있다. 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파괴하기 위한 미래통합당의 사악하고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공작에 동조하는 것이다. 이 또한 공론장에서 논의 없이 정치공학적 동기로 밀담을 거쳐 불쑥 튀어나와 정치지형을 어지럽히고 있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자한당의 비례의석 21석 차지를 통한 제1당 등극과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라는 공포마케팅을 통하여 범민주세력과 진보진영이 그토록 간절하게 염원하였던 선거개혁을 무력화하고 있다. 비례위성정당 담론에서도 별다른 논의와 고민 없이 범민주진영은 둘로 갈라졌다. 조국을 수호했던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수용하라고 진보정당을 압박하고 있고, 반대로 조국을 비판했던 진보진영은 헌법과 정당법을 모두 위반한 미래한국당을 해산하고 일체의 비례위성정당 시도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공론장이 완전히 붕괴한 곳에 민주주의의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공론장이 붕괴되면 주술과 광기가 춤을 추고 바이러스도 따라 춤춘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공론장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21세기다. 종교는 기복신앙을 폐기하고 광기와 주술의 정원에서 벗어나 합리성과 과학에 근거하여 교리를 해석하고 신행을 이끌어야 한다. 언론은 최소한 객관적 사실은 왜곡하지 말고 정론을 폄은 물론 기득권을 무조건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선전과 선동, 여론과 프레임 조작을 멈추고 올바른 공론장을 형성하여 파수견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의료보건인들이 과학에 입각하여 토론하고 고민한 끝에 판단하고 결정한 것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는 중대본에 모든 결정권을 위임하고 의료보건인이 합의한 대로 방역과 치료에 대한 정책을 집행하고,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번에 쉽게 전염되고 쉽게 사망한 이들은 모두 장애인, 빈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다. 정의는 어떤 차이보다 아픔의 차이에 우선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전문가의 예상대로 앞으로 4-5년을 주기로 신종 바이러스가 세계적 대유행병을 야기할 것인데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은 공공의료체계의 확보다. 현재 공공의료시설 비율은 병상 수 기준으로 OECD 국가 평균은 73%인데, 한국은 10%에 불과하다. 우한과 대구의 공통점은 인구가 각각 1100만과 240만이 넘는 도시에 대형병원은 3곳뿐이었다는 점이다. 신천지만 탓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를 단호하게 폐기하고 공공병원을 획기적으로 증설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대학은 신자유주의식 시장체제와 결별하고 진리탐구의 실천도량과 학문공동체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식인들은 권력, 이해관계, 진영논리에서 떠나 오로지 진리에 근거하여 고민하고 사색하며 곰삭은 담론을 공론장에 내놓아 주술과 광기, 반지성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 대중들은 바이러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과학과 연대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과도한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 모든 사안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서 ‘달빛동맹’처럼 혐오와 배제 대신 동체대비심으로 대구시민은 물론 ‘미운 신천지 신도’조차 끌어안고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바람에 숲에서만 살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로 하여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으로 변형한 데 있다. 대중이든 지식인이든 정부든, 모두가 자연을 파괴하고 무한하게 성장을 지속시켜 온 삶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성찰하여야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다른 생명과 타자를 배려하여 욕망을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을 당장 실천해야 하고, 정부는 양적 발전보다 삶의 질, GDP보다 국민의 행복지수, 경쟁보다 협력, 개발보다 공존을 지향하는 생태복지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공론장에서 가장 시급하게 논의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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