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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되면 북한은....케리가 되면...

[기고] 미대선 결과에 따른 '북핵 예상 시나리오'

***부시 vs. 케리: 미국 대선과 북한 핵 해법**

얼마 전 미국의 한 유수 국제문제 연구단체 소속의 비확산문제 전문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6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미관계와 북핵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했다. 그 토론 이후 다음에 들어설 미국정부의 대북핵외교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 글은 그 결과물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달 11월 2일, 미 대선결과가 발표되면 세계 모든 국가들이 그 의미를 분석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미 대선결과에 따라 국제질서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고, 이 흐름을 미리 예측하고 분석하여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국가들은 또 한번의 세계적 변화의 흐름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변화시간에 자국의 시계지침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결과는 어김없는 대외정책의 실패일 수밖에 없다.

아마 미 대선 결과에 사활적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소위 "악의 축"으로 명명된 국가들, 곧 북한과 이란, 이라크일 것이다. 부시, 케리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국운과 국부의 존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TV 토론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법을 둘러싼 부시-케리의 정책공방이 얼마나 뜨겁게 달아올랐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 과정에서 '북한 핵'이란 말이 무려 30여 차례나 나왔다는 사실은 미국의 대외정책 가운데 북핵문제가 차지하는 우선순위와 비중이 그 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향후 미국의 대북 핵외교정책의 내용과 실행 속도에 따라 한반도가 또 한번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우리가 미 대선결과를 다소나마 초조한 눈길로 바라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재 미 대선은 부시와 케리 중 어떤 후보가 당선될지 태평양 상공의 기상예측 보다 어렵게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핵전략이며, 이에 따른 한반도의 안보상황일 것이다.

***시나리오 1. 부시가 재집권할 경우**

공화당이 재집권할 경우에는 미국은 문명과 신의 편에 서있다고 생각하는 부시대통령이 야만과 악(사탄)의 저편에 자리 잡고 있다고 믿고 있는 북한에 대해 보다 강도 높은 매파적 정책을 펼쳐 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만이 아니라 한국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이렇게 된다면, 마치 6자회담의 시작과 함께 가능해 보이기 시작한 평화와 다시 불가능해져 보이고, 이제는 물 건너갔다고 믿었던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급속히 재부상하는 국면이 등장할 것이다.

부시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다음과 같은 4단계에 걸쳐 북핵문제에 접근해 갈 것이다.

우선 제1단계로 국제여론, 그리고 아직 전쟁 중에 있는 이라크문제를 완전 매듭지을 때까지는 북한 핵문제에 전력투구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일정한 시간끌기 방식으로 접근할 것이다. 6자회담의 틀을 복원시켜 북한을 이 회담틀에 가둬두고 북미 직접담판을 원하는 북한의 전략을 피해 가면서 보상은 미국이 단독으로 전담하지 않는 다자간 협상틀을 지속시켜 나갈 것이다. 만일 북한이 6자회담틀 내에서의 대화를 거부한다면 부시행정부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설득해 내도록 대중압력을 강화할 것이다. 부시대통령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다자간 협상방식이 최선이며 중국의 지렛대를 활용하는 것이 최적의 카드라고 강조한 부분은 부시행정부의 대북핵문제 접근방식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제2단계로는 만일 북한이 중국의 6자회담 참가요청에 대한 설득과 압력을 끝까지 거부하여 미국주도의 6자회담틀에 복귀하지 않게 될 경우, 부시행정부는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하는 수순과 단계를 밟아 나갈 것이다. 이것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중 하나인 중국의 묵시적 침묵 혹은 소극적 동의를 목표로 중국과의 충분한 협의 하에 진행될 것이다. 비록 중국이 안보리 회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이는 미국의 의지를 꺾겠다는 의도라기보다는 북한을 고려한 중국의 대내외적 외교적 의리와 체면 유지 차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부시행정부가 북핵문제 해법으로 중국 카드를 사용키로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만일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이 난망해질 경우, 이 문제를 결국 유엔으로 끌고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점을 일찍부터 염두에 뒀던 것이며, 이때 중국의 반대를 차단시키기 위한 포석을 깔아 놓았던 것이다. 러시아를 6자회담에 참가시킨 것도 부시행정부의 북핵문제에 대한 유엔 전략과 무관치가 않다.

일단 북핵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상정되면 상황은 대북경제제재가 불가피해지는 쪽으로 급변하게 될 것이며, 이 경우 미국의 크고 작은 전자제품의 북한 반입은 물론, 가장 우선적으로 중국의 대북 지원, 원조를 철저히 차단시켜 나갈 것이다. 여기에는 단동-신의주의 국경무역과 대북 원유지원을 포함하여 일체의 군수장비이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 유입도 포함될 것이다. 유엔의 경제제재 조치가 발동되면 한국의 대북사업과 남북경협도 정지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다음 3단계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실시한 이후에도 북한으로부터 핵포기 의사가 잡히지 않을 경우에는, 중국과의 협력 하에 김정일체제의 전환을 시도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보다는 북한과 지근거리에 있는 주변 국가들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인식을 주변 국가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왜냐하면 그 주변국가란 단지 한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무성에서 일했던 한 관리는 2년 전 동북아 관련 한 세미나장에서 만나 "지금 워싱턴의 분위기는 김정일체제의 종식을 시도하는 방안을 찾고 있으며, 북한이 끝까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이 방안은 선제공격과 함께 북핵 해결을 위한 몇 개의 카드 중 한 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에게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북경을 방문하여 중국의 고위 관리들과 학자들을 만난 결과 북경에서도 이런 방안에 대한 언급을 공공연하게 들을 수 있었다"고 하면서 "혹시 워싱턴과 북경이 김정일체제 종식을 위해 무슨 일치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제 부시행정부도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 워싱턴의 중국문제와 한반도문제 전문가들로부터 들려오는 논거는 북한 핵이 대만에 유입되거나 대만의 핵개발로 확산될 경우 중국의 통일정책이 요원해 질 수 있다는 점, 중국이 우려하는 일본의 핵개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최악의 경우 만주에 있는 조선족들이나 중국내 소수 분리독립운동가들에게 북한의 핵무기가 반입될 경우, 중국의 내정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북한의 핵개발이 가져올 파장과 리스크는 미국 보다는 중국에서 더 크고 치명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파월 장관의 언급이 가지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김정일 체제의 종식노력이 무위로 끝날 경우 부시행정부의 대응은 무엇일까? 제4단계로 부시 행정부는 선제공격 카드에 상당한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공격은 장기간 공격준비의 과정을 거쳐 북한을 고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지게 한 후 적절한 시점에 영변의 핵시설과 일본과 남한을 겨냥하여 배치되어 있는 대포동 미사일 기지를 기습타격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미국은 중국과의 협의와 동의를 얻게 될 것이며, 이 공격의 결과 전시상황이 장기화 되느냐 혹은 단기화 되느냐에 따라 이라크와는 다른 각도에서 북한 문제를 처리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 선제공격에 대해 한국과 일본보다는 중국과의 긴밀한 협의를 중시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며, 선제공격에 따른 북한의 대응으로 확전이 전개될 경우 이를 막기 위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해 주는 대가로 중국을 끌어 들이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만일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받고도 대응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면 김정일 체제는 내부로부터 통제력을 사실상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과 협의하여 포스트 김정일체제 수립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재집권에 성공한 부시행정부가 핵문제에서 북한과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이 핵시설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제3국으로의 해체를 하지 않는 한, 어떤 대화에서도 보상이나 인센티브를 제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가 핵 반확산정책의 우선순위를 이란과 북한 중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위에서 그려본 시나리오가 늦춰지거나 앞당겨질 수 있을 뿐, 이 시나리오 자체는 그 실행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대북핵협상 전략은 사실상 "아미티지 보고서"에 신앙처럼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북핵문제 전문가들은 이 원칙을 놓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외교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 실패할 경우, 그 원인 제공자는 북한으로 분명하게 못 박고 있고, 외교적 노력(협상과 대화)이 실패로 끝나거나 북한이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예의 벼랑끝 전술을 사용한다면, 북측에게 돌아가는 것은 경제적 실리가 아니라 군사적 자멸이며, 미국의 선제공격만 앞당길 뿐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다음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 억제와 봉쇄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두 가지 교리를 기반으로 군사적 억지력의 강화를 통해 외교적 노력을 지원해 나가되, 미국의 요구를 북한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군사적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상시적으로 북한에 전달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아미티지 보고서는 지난 부시행정부의 북핵문제 처리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북한은 핵협상 과정에서 단 한차례도 "대화를 통한 핵 공갈정책"과 "대결을 통한 벼랑끝 전략"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평양이 왜 부시 보다는 케리가 차기 미대통령에 당선되길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가 하는 이유이다.

***시나리오 2. 케리가 당선될 경우**

김정일 위원장은 분명 민주당 케리 후보가 집권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을 상대로 한 북핵협상에서 새로운 돌파구와 경우에 따라서는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고, 또 공화당 부시행정부에 의해 지워진 "악의 축"이란 오명으로부터도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테러지원국가란 닉네임에서부터 깡패국가, 마약밀매물가, 미사일수출국가, 핵물질유출국가란 악명에 이르기까지 온갖 불명예스러운 부정을 씻어내고 새로운 세례를 통해 정상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망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4년간 꿈쩍도 하지 않는 부시행정부를 경험하면서, 북한은 다른 새로운 파트너와 새판에서 협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소망일 뿐이다. 케리가 집권에 성공한다 해서 케리의 민주당이 과거 클린턴의 민주당과 똑같은 대북핵정책을 반복하리라 생각한다면, 이는 달라진 미국의 현실을 해석하는데서 큰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케리의 민주당은 클린턴의 민주당이 북핵정책의 교본으로 삼아왔던, "페리보고서"를 교리와 원칙으로까지는 참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미국인들의 의식과 정치환경이 너무 크게 달라졌다.

그 달라진 배경과 요인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 뉴욕무역센터를 강타한 9.11 테러사건이다. 둘째, 케리가 집권하더라도 미의회는 여전히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셋째, 클린턴의 집권시 대북포용정책(Engagement)은 성공과 기쁨의 열매보다는 실패한 정책으로 비판 받아 왔다는 점이다. 케리가 내세우고 있는 "더 강력한 미국"이란 선거 케츠프레이즈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미 냉전과 탈냉전이 아닌 테러와 반테러전에 돌입했음을 단적으로 입증해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세 가지 요인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상태에 빠져 있으며, 하루도 쉬지 않고 거의 매일 엘링턴 국립묘지에는 새로운 미군의 운구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오늘의 미국현실이다. 부시가 일으킨 전쟁이라 하더라도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와의 반테러전 참전결정과 전시예산증액결정을 요하는 의회승인에 민주당도 동참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케리가 당선되더라도 클린턴행정부의 추억을 현재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케리의 대북 핵정책에는 크게 비관과 낙관이 동시적으로 묻어 있다. 낙관의 근거는 대화와 당근을 통한 포용정책의 지속이며, 비관의 근거는 선제공격이란 채찍을 통한 봉쇄정책의 수행이다.

케리는 분명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상위의 정책으로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북핵해결 방식도 다자회담 보다는 북미간 단독회담 형식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의제도 북핵 단독 이슈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화하여 북한문제를 포괄적 이슈를 갖고 접근해 들어가겠다고 했다. 핵 문제를 넘어서서 미사일, 휴전협정, 인권, 경제, 장사정포배치, 비무장문제까지로 의제를 다양화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쓰고 있는 중국을 통한 핵 해법에 깊은 회의감을 나타냈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 담판을 하지 않고, 과중하리만치 중국에 의존적인 대북 핵 레버리지는 미중간의 관계가 불편해질 경우, 이는 그야말로 북한 핵문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부시행정부가 그동안 북한과 직접 대화를 꺼리면서 북한 핵문제를 사실상 방치해 온 결과, 북한은 최소한 4-7개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케리의 대북정책은 분명 대화와 협상에 기반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협상의 수준을 넘어 담판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클린턴 행정부 당시 강석주와 갈루치 간에 결정지었던 94년 제네바합의 내용의 복원단계를 시작으로, 2000년 10월 조명록 차수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간에 펼쳐졌던 워싱턴과 평양의 상호교차 방문과 같은 양국고위급 인사들의 교류단계를 포함하여 어쩌면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장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을 케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타이밍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미간의 대화가 이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최소한 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케리정부는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준비와 전단계로서 양국정부의 강한 신뢰를 얻고 있는 빌 클린턴 전대통령을 대북특사로 파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는 케리의 민주당이 클린턴 정부의 대북핵정책에 대한 거시적 틀을 지속시켜 나간다는 정책승계의 연속성 유지차원과 김정일 위원장의 클린턴 전대통령 초청카드의 효력재현이란 차원에서도 그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에 긴장을 줄이고 데탕트를 몰고 올수 있는 모든 요인, 즉 군축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돌려놓는 역사적 상황까지도 조심스럽게 예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은 역시 김정일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 이미 미국은 94년 제네바합의의 틀이 깨진 일차적 책임과 원인을 북한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핵공갈 정책에 속박되지 않겠다는 심리적 무장을 마친 상태에 있다. 지난달 29일 미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케리 후보가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선제공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이미 클린턴 행정부 당시 기획했던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적 공격(surgical strike)에 대한 준비경험을 케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4-7개정도 보유하고 있다고 공언한 것은 오히려 선제공격을 주장한 부시행정부보다 대북핵정책이 강경해 질 수 있고 더 위험스러워 질 수 있음을 노출시킨 것이다. 대화 실패시 선제공격 카드를 펼치겠다는 케리의 주장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군사적 공격의 의지 보다는 대화를 통한 북핵해결을 성공시키기 위한 일종의 대북 압박 카드로 선제공격을 활용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즉 대화를 통한 해결이 목적이고, 이 대화를 성공시켜 나가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선제공격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케리가 무조건 보상을 전제로 한 담판으로만은 가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얼마 전 케리 진영에서 동북아 비확산 문제를 보좌해준 경험을 갖고 있는 한 연구원과의 대화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연구원은 "케리 후보가 사실상 북미간 직접 담판을 언급하고 있지만, 북미간 직접대화 방식은 6자회담 틀 내에서의 직접대화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6자회담틀을 완전히 배제한 단독회담을 의미한 것인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6자회담 틀 내에서의 북미간 직접대화형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설령 북미간 대화가 잘 진행되어 간다 하더라도,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는 북핵 포기에 따른 보상이나 인센티브인데, 이 보상 수준이 어느 단계에서 합의되고 또 펀드를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지도 케리 후보에겐 상당히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분명 케리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그래서 클린턴의 포용정책을 거시적 틀로서는 갖고 간다 하더라도 미시적 협상내용과 이에 따른 보상 문제는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고, 더 이상 북핵 협상에 대한 이니셔티브도 과거 클린턴 행정부처럼 북한에 끌려 다니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 것이다.

따라서 과거 클린턴의 핵정책에 비해 보상은 작고 채찍은 강한 것이 케리의 대북핵정책의 근간을 이룰 것이다. 그래서 초반 단계에서는 부시행정부의 대북 봉쇄적 포용정책(Con-gagement) 혹은 매파적 포용정책(Hawkish engagement)에 상당히 접근하는 매우 제한적인 포용정책(limited engagement)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만일 북한이 미국의 신뢰를 얻어내는 방향으로 핵협상을 전개해 나간다면, 제한적 포용정책의 틀을 부분적으로 넓혀 나가면서 포용정책의 틀을 보다 확대해 나가는 단계적 형식을 밟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케리의 대북핵정책은 부시의 선제공격론과 클린턴의 대화적 해결의지라는 양자적 성격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이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의심은 클린턴과 부시에 비해 훨씬 강한 것이 특징이다. 클린턴은 북한이 핵보유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경제적 원조를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핵정책을 추구한 것으로 보면서 북한은 언제든지 보상을 해주면 핵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고 본 반면, 부시행정부는 북한이 핵보유를 목적으로 핵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제적 보상을 해 줘도 북한은 결코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케리의 대북핵정책의 기본적 시각은 북한이 이미 4-7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북핵 포기를 위해 선제공격과 대화란 카드를 어떻게 펼쳐나갈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케리의 정책이 이 두 가지 카드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상당부분 김정일위원장의 대미핵정책에 달려 있다. 김위원장이 핵공갈정책과 벼랑끝 전략을 번갈아 지속할 경우, 케리는 과거 클린턴정부의 실패한 핵정책을 반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클린턴 행정부 당시 준비했던 공격계획 "5027"에 대한 유혹을 많이 갖게 될 것이다. 북한은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케리후보에게 대북핵정책을 조언해 주고 있는 상당수의 안보담당 참모들이 비확산 전문가들로 꽉 짜여 있다는 점과 케리 자신이 베트남전을 치룬 전쟁의 경험자란 점 그리고 케리 진영의 많은 참모들이 비록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던 참모들이긴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8년간에 걸쳐 북핵문제를 관찰한 정책적 경험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케리의 안보참모들은 부시행정부의 안보담당 참모들 못지않게 이미 북한의 대미핵정책과 전략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은 민주당 혹은 공화당 할 것 없이 반테러전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 테러기지의 소탕과 테러계획의 분쇄, 테러행위자에게 정의를 보여주자는 것. 둘째, 화생방무기를 소유하려는 테러조직과 체제들이 미국과 세계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미국무성에 의해 테러지원국가로 분류되어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대량살상 무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비확산 전문가들로 짜여져 있는 케리 진영의 안보담당 참모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부시진영의 참모들보다 훨씬 매파적 성격을 띠고 있다. 케리는 일단 북한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포용정책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 동북아 평화를 향한 협상을 하면서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보다 더 개혁 개방과 평화적인 노선을 견지할 경우, 좀 더 확대된 포용정책을 펼쳐 나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북한이 케리진영의 비확산 전문가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반대된 방향으로 나가면서 핵개발과 미사일 수출 등 동북아 지역의 안보불안을 가중시키는 노선을 걷는다면 철저히 억지와 봉쇄전략으로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을 차단할 것이다.

포용과 봉쇄라는 전략적 선택 중 어떤 카드를 유도해 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평양에 달려 있다. 분명한 것은, 케리가 집권하건 부시가 재집권에 성공하건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한반도 전쟁의 재발을 막는 길은 북한이 한발 먼저 진실한 자세로 대화의 장에 나서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정당한 길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가능한 길, 어쩌면 유일한 길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전쟁 없는 상태로서의 소극적 평화와 평화 없는 상태로서의 제한적 전쟁 중 한반도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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