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국회의원 선거를 40여일 앞두고 있지만, 어느 당이 무슨 공약을 발표했는지 알고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 2020 총선미디어감시연대는 최근 발표한 총선 보도 관련 양적 분석 보고서에서 코로나 19 때문에 선거 관련 보도량이 전체 보도의 11.4%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 수준으로 격상된 이후 지금까지 총선 보도를 한 번도 하지 않은 방송사도 나올 정도다. 일부 언론이나 방송이 보도하는 선거 관련 내용도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공천 관련 보도나 정당들의 이합집산 관련 보도가 대부분이다. "깜깜이 선거"라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의의
국회의원 총선에 국민의 관심을 모으지 못하는 건 각 정당들의 자업자득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정치권의 선거 준비 과정을 보면,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실망하니 관심도 시들고, 이에 맞춰 여론의 향배에 예민한 언론이 국민 관심이 큰 다른 분야로 보도를 전환했다.
각 정당들의 이합집산이나 철새 정치인들의 이동은 국민 관심 밖의 일이다. 정당이 선거를 통해 국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구체적 희망을 주지 못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각 정당에서 영입하는 인재라는 분들이나 공천하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대중적인 인지도는 있을지언정 실제로 의정 활동을 잘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책 전문가와 해당 분야에서 업적을 낸 검증된 분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거 구도를 촛불 혁명을 통한 정치개혁의 완성으로 잡고 광범위한 국민의 역량을 모아갈 진정성과 헌신성이 보이지 않으니, 박근혜 국정 농단의 당사자들이나 세월호 참사의 원인 제공자들이 여전히 큰소리를 치고 있다. 소모적인 정치를 구조적으로 바꾸기 위해 패스트트랙을 통해 어렵게 통과 시킨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하고 폄하하는 세력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집권당을 보면서 국민이 실망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어느 선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특히 이번 총선은 지난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촛불 혁명이 완성되는 선거이기 때문에 "또 한 번의 국회의원 선거"로 흘러가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와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광화문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의 염원을 담아 정권 교체를 이루는 선거였다면,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마지막으로 국회의원들을 바꿔 촛불 혁명을 완성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게 나라냐!"라고 한탄하면서, 답답해하던 국민이 주말마다 수백 만 명 모여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현대사의 한 장을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선거다. 촛불 혁명을 통해 복지국가의 구체적인 정책과 공약들이 선거의 이슈로 자리 잡았고, 국민은 새로운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하지만 어렵게 이룩한 정권 교체를 통해 우리들의 염원을 담은 공약과 정책들이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시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는 촛불 혁명 이전에 구성된 현재의 20대 국회의 영향이 크다. 국회가 단순히 개혁적인 법안과 정책에 관심이 없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발하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개혁에 실망한 국민은 희망을 잃고 점차 여당으로부터 돌아서고 있다. 촛불 혁명으로 어렵게 모아졌던 국민의 지지는 손아귀의 모래처럼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총선 승리는 고사하고 문재인 정부가 심각한 레임덕 상태에 빠질 것이고, 선거가 끝나면 각종 개혁이 무산되면서 차기 정권 재창출도 어려워질 것이다.
현재 여당의 권력 연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촛불 혁명을 이룩한 수많은 국민의 염원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선거의 방법과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대선 이후 지금까지 미진했던 다수 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당이 4.15총선의 승리를 통해 개혁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새롭게 싹트고 있는 희망들
이번에 민주당은 실망스럽고 답답한 정치를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채택하고 발표했다. 그 동안 국민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국민소환제를 공식 선거 공약으로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는 한번 선출된 국회의원을 심판하려면 다음 선거까지 4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회의원이 헌법 제46조에 규정된 의무를 위반할 경우 임기 중이라도 의원직을 파면할 수 있도록 국민소환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국회의 윤리특별위원회를 상설화하고 그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지금까지는 국회 윤리위원회는 의원들로만 구성했기 때문에 여야를 불문하고 동료 의원의 징계에 소극적이었다. 민주당 안은 국민 배심원단을 신설하여 심사 결과에 대한 권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국회의원 징계 기간 심사를 60일 이내에 종료하도록 하여 2~3년씩 시간 끄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입법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다. 현재도 청와대 국민 청원은 20만 명의 동의와 추천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공약을 통해 만18세 이상의 국민이 국회정보시스템을 통해 국회에 '국민입법청구법률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30만 명 이상의 지지 서명이 있으면 해당 법안을 의무적으로 심사하도록 하여 '국민발안제'라는 강력한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좀 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국회 운영 개혁안도 제시됐다. 지금까지 국회는 개별 상임위원회에서 법안 상정과 소위원회 검토 및 문구 수정 작업을 한 후, 상임위가 통과시킨 법안을 법사위에서 다시 한 번 심사해 본회의에 올리는 절차를 밟았다. 입법이 대단히 느리고, 개별 상임위원회가 하원의 역할을 하고 법사위가 상원의 역할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 양원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이번에 민주당은 과도한 권한을 누리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와 자구 심사권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해당 상임위에서 법안을 의결하기 전에 국회사무처 법제실 또는 국회의장이 지정한 기구에서 자구 심사 결과를 보고받도록 하여 개별 상임위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고, 국회의 법안 처리가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런 정도의 개혁안이라면 이번 국회의원 총선의 판도를 바꿀 만한 중요한 사안이다. 이런 국회 개혁 방안에 대해 타 정당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반대하는 정당이 없다면 선거 결과 누가 제1당이 되는지 상관없이 이런 개혁을 하겠다고 국민들 앞에 약속하는 모습을 민주당이 보인다면,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공약을 제안한 민주당이 먼저 주도적으로 나서야하고, 언론이 적극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 획기적인 사안이다.
또 하나의 대안은 촛불 혁명을 주도한 시민사회단체가 제시했다. 우리 사회의 원로들을 중심으로 광화문 촛불 혁명 기간에 만들어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촛불 혁명의 실질적인 완성을 위해 노력해 왔던 주권자전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미래한국당 저지와 정치개혁 완성을 위한 정치개혁연합 창당'을 제안했다. 파란미래당이나 청년민주당 등 지금까지의 논의와 노력들이 미래통합당의 꼼수에 대응할 또 하나의 위성 정당인 (가칭) 비례민주당을 만드는데 그쳤다면, 이번에 새롭게 제안된 정치개혁통합정당 제안은 민주당과 정의당 등 기존의 원내정당 뿐 아니라, 녹색당과 민생당 및 각종 신생정당들이 개혁과 진보의 가치를 토대로 모여 공동의 정책 지향과 가치를 공유하는 연합정당을 만들어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많은 난관들이 있다. 이렇게 모인 정당들의 공천 방식이나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는 문제, 경선을 관리하는 문제, 그리고 선거 이후에 민주당과 합당할지, 아니면 정치적인 연대를 할지 등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있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소수 세력들이 자신의 대표성을 갖는 후보를 국회에 진출시킬 수 있고, 다양한 국정 현안과 입법에 이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본연의 의의를 살릴 수 있다.
선거 이후에 실제로 개혁과 진보를 위한 정치적 연대와 연합의 단초가 된다는 측면에서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설령 연합정당을 만들어 국민공천을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여 여러 당으로 나뉘어 각개 약진을 하게 되더라도, 이 과정에서 이름 없는 소수 정당들이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암담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 결과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희망을 국민에게 줄 수 있기에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중한디?
우리는 한 달 남짓 남은 선거를 앞둔 지금, 과연 무엇이 중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에 한 번 유일하게 국민이 갑이 될 수 있는 축제다. 특히 이번 총선은 21대 국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광화문 촛불 혁명을 완성할 대표를 뽑는 매우 중요한 선거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원하는, 국민을 위해 일할 능력 있는 후보들을 뽑아야 촛불 혁명은 온전하게 완성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힘들게 만들어 온 각종 개혁들이 후퇴할 것이고, 또 다시 대한민국은 몇 걸음 후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19는 결국 물러갈 것이다. 적지 않은 희생과 피해를 남기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극복할 것이다. 온 국민의 노력과 협력이 보태진다면 코로나 19 방역은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19 때문에 국회의원 선거가 무시되고, 준비되지 않은 후보가 선출되거나 국정농단과 세월호 참사에 책임 있는 세력들이 제대로 심판을 받지 못하면, 그 피해는 코로나 19보다 훨씬 깊고 길게 남을 것이다.
실제로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서 매우 다양하고 중요한 공약들이 발표되고 있다. 여야 모두 국민의 표심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정책이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선거의 쟁점이 되지 못하면 선거 이후에 이들 공약들은 무시되거나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사장될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아직 초보단계이고, 경제민주화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실제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의 기초연금 인상과 자녀 양육이 보장될 수준으로의 아동수당 인상 및 지급기간 연장, 어렵게 통과된 유치원 3법을 넘어 실질적인 보육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 정책들이 이미 공약들로 제시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획기적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 정책들도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국민이 이들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요구해야 이러한 공약들이 발표될 것이고, 선거에서 이슈가 되어야 선거 후에 실행될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전염병은 지나가지만, 국민의 삶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뭣이 중한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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