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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다찌, 노회찬과 함께 하는 군침 도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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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다찌, 노회찬과 함께 하는 군침 도는 곳"

[음식天國 노회찬] <6> 통영의 추억

경상남도 다도해의 아름다운 항구 통영(統營)은 먹거리 풍성한 천혜의 고장이다. 일찍이 통영을 여행한 평안도 정주 출신의 한 청년의 눈에도 그랬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 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통영2> 중, 백석

통영을 사랑한 한국인이 어찌 백석(白石)뿐이겠으랴. 함경도 출신 부모를 가진 부산 사람 노회찬에게도 통영은 자다가도 일어나 달려가고 싶은 곳이었다. 기댈 친구가 있고, 숨을 곳이 있고, 항구의 불빛만큼이나 미식의 유혹이 넘실대는 곳.

언제부터인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된 통영을 노회찬은 1년에 서너 번씩은 다녀갔다. 국회 보좌진, 당직자, 동료 의원들 그리고 노동운동 할 때의 동지들과 그 바쁜 일정 속에서 통영은 그에게 잠시 일을 내려놓게 하는 '쉼'의 공간이기도 했다.
 
스물 몇 노회찬, 통영을 발견하다

회찬이 처음 통영을 찾은 것은 1980년 이맘때쯤이라고 한다. 신춘문예에 당선한 고교 동창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스물 몇 살 때. 40년 전의 통영은 부산에서도 연안여객선으로 7~8시간이나 걸리던 곳, 친구나 친지가 있지 않고선 목적 없이 가기 어려운 외지였다. 회찬은 처음 본 한려수도와 그 중심의 어항에 곧바로 매료되었던 것 같다. 더욱이 통영은 예향이 아닌가. 문학전집을 독파하고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예술가 기질의 회찬에게 통영은 이미 박경리, 윤이상 등 수많은 예술가를 낳고 기른 곳으로 각인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가 통영을 사랑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맛이다. 통영은 어로, 양식 등 활발한 수산업을 바탕으로 자기들만의 음식 계보를 발전시킨 곳이다. 따뜻한 기온의 청정해역에 어종이 풍부하고, 육지 쪽에서는 지리산 자락을 타고 다종다양한 먹거리가 들어온다. 부유한 경제력, 풍부한 제철 식재료, 그리고 높은 문화예술 감각이 합쳐져서 통영인들만의 미각을 만들어 냈다. 미식가라면 놓칠 수 없는 포인트가 아니었겠는가.

그때 '청년 혁명가' 회찬을 통영으로 초대한 청년 시인은 지금껏 통영에서 2대째 굴농사를 짓고 있는 장석 선생이다. 필자의 통영 기행을 이끌어준 일행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니 학창 시절 친구들은 그를 "짱똘"쯤으로 불렀던 듯하다. 아무튼 똘이가 찬이를 통영으로 불러들였듯이 장석 선생이 6번째 '음식천국 노회찬' 일행을 초대해 주셨다. 노회찬이 즐겨 갔던, 맛있는 통영의 식당을 가보라는 뜻이다.

"'음식천국 노회찬'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통영, 더욱이 봄이 오고 있지 않은가."

또 한 번의 봄을 시작하는 통영의 찬란함과 통영의 싱싱한 굴을 자랑하고도 싶은 것이다.

통영의 군침 도는 요리들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통영고속터미널에서 내려 차를 바꿔 타고 원문고개를 넘으니 통영 시내다. 때는 점심시간, 배부터 채워야 할 터. 로컬가이드 장 선생의 추천으로 처음 찾은 식당은 해산물 정식집 '수향(水鄕)'이다.

수향은 1990년대 초부터 노회찬이 통영에 오면 들르는 식당이다. 통영 유지들에겐 만남의 장소, 관광객들에겐 통영을 대표하는 해산물요릿집이다. 중소기업부가 선정하는 '백년가게'에 뽑힐 만큼 통영의 대표적인 식당이지만, 30여 년 전에는 작은 다찌집(선술집)이었다고 한다. 1988년 안말순 대표가 처음 문을 연 뒤 "식재료에 관한 한 타협 없는 자세로" 정갈한 자연의 맛을 선보이면서 크게 성장했다고 한다. 항남동의 지금 자리는 세 번째 확장개업한 곳이다. 바깥주인은 통영의 저명한 향토사학자로서 수향의 아우라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 있고, 아들은 주방에서 가업 승계 수업을 하고 있다. 회찬은 수향의 초창기 무렵을 기억하는 드문 외지인 손님의 한사람이었다. 깔끔한 건물과 통영의 옛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으로 장식한 실내는 세련미와 전통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맛은 물론 필자같은 아마츄어의 혀를 감당하기에 손색이 없다.

ⓒ노회찬재단

예약을 미리했던 터라, 필자 일행이 도착하니 정갈하게 상이 차려져 있다. '서울 촌놈들'이 왔다고 주인장께서 고노와타(해삼창자젓)와 함께 비장의 매실주를 내주셨다. 매실의 고장답게 입안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실주 향이 식욕을 돋우기에 딱이다. 본격적으로 음식이 나오는데, 지금 잡히는 자연산 모둠회가 첫 선을 보인다. 이어서 무와 고추장 베이스의 우럭찜과 간장 베이스의 가오리찜, 소금만 살짝 친 볼락구이, 튀김요리 등이 차례로 나오는데, 필자의 입맛에 다 좋다. 품평 능력 부족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오리찜이 특히 좋아서 음식사전을 검색해 보니 경남지방의 가오리찜은 "간장, 청주, 설탕, 다진 파·마늘을 사용한다. 조리법이 간단하고 국물이 흐르지 않아 경사 때 손님 상차림에 많이 이용한 음식"이라고 소개한다. 볼락구이는 "소금을 뿌려 말린 볼락을 석쇠에 구운 것이다. 깊은 바다보다 연안의 얕은 바다에서 잡히는 것이 맛이 좋다"고 한다.

ⓒ김경래

현지가 아니면 쉽게 맛보기 어려운 생 아귀 간과 수육은 절대, 네버(never), 결코 놓칠 수 없는 별미다. 요리사라면 마땅히 다도해의 싱싱한 아귀 간을 재료로 세계적인 레시피에 도전해야봐야 하지 않을까. 마무리는 초밥과 도다리쑥국. 깔끔한 맛이 입안을 깨끗이 씻어준다. 도다리쑥국은 통영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다. 통영에서는 2월 무렵이면 벌써 쑥국을 먹을 수 있다. 봄철 생선인 도다리와 이른봄햇쑥이 만나 찰떡같은 음식궁합을 이루려면 봄의 남쪽 바닷가가 신혼 방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노회찬재단

노회찬의 동백나무

통영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다. 윤이상이 음악교사를 하며 부산고교 등 유수한 경남지방 학교들의 교가를 작곡하면서 장차 음악가로서 대성의 꿈을 키우던 곳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동베를린사건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다가 민주화가 되면서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나, 끝내 통영 앞바다에서 되돌아가고만 비극도 있었다. 통영과 음악을 다 같이 사랑했던 노회찬에게도 이런 윤이상의 일생은 남다른 존재로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회찬은 클래식 음악에 정통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이미 세계명곡전집의 악보를 거의 다 외었을 정도이다. 2004년 출판된 <우리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에 인터뷰어 정운영은 노회찬의 예술 취미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스러웠는지, 부르주아 음악가나 부자들의 음악회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 지를 물었다. 회찬은 "베토벤의 음악,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예술노동자에 의한 인류문화자산이다. 이것을 소수만이 향유하는 사회경제적 제도에 강한 거부감을 느낄 뿐"이라고 대답한다. 회찬에게 음악회는 "티켓이 비싸고, 운동하느라 시간이 없어 못 갈 뿐"이지 결코 부르주아만의 문화일 수는 없었다. 노회찬은 윤이상추모음악제에서 발표되는 곡들을 챙겨 듣고, 마음에 닿는 곡은 악보를 구해 직접 연주해 보기도 했다. 2017년 9월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고봉인 첼로 연주회는 그가 마지막 간 음악회였다.

통영에는 윤이상 생가터 주변의 기념공원과 윤이상의 존재를 계기로 지어진 통영국제음악당이 있다. 얼마 전 빈필하모닉 앙상블이 공연할 만큼 국제 수준의 연주장이다. 그 음악당 언덕에 2018년 독일 베를린에서 이장해 온 윤이상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이 이야기에도 노회찬의 사연이 있다.

ⓒ김경래

노회찬은 2018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으로 대통령 부부에게 책 두 권을 선물한다. 문 대통령에게는 "평화와 번영의 길목에서 '조난자들'을 안아주십시오"라는 글과 함께 탈북민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은 주승현의 <조난자들>을, 김정숙 여사에게는 "통영의 동백나무 너무 고맙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아버지의 유품을 들고 아버지의 삶을 찾아 나선 아들의 이야기인 <아버지를 찾아서-통영으로 떠난 시간여정>(김창희 지음)을 선물했다.(지은이 김창희의 아버지는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지역에서 내려와 통영에 정착했던 월남인이다) 1년 전 김 여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문 대통령과 함께 독일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통영에서 가지고 간 동백나무 한 그루를 윤이상 묘지에 심는다. (이 동백나무는 2018년 2월 윤이상의 유해가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장될 때 함께 옮겨와 통영 윤이상 하우스 정원에 심어져 있다). 김 여사는 이때 "윤 선생이 살아생전 일본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왔다가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저도 울었다"며 "이번에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는데 선생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보수적인 여론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노회찬은 "대한민국이 윤이상 선생께 최소한의 예의를 표한 것 같아 기쁘다. 권력이란 이렇게 쓰여야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필자와 일행은 그때의 일을 추념하면서 통영국제음악당 언덕에 자리 잡은 선생의 묘지를 참배했다. 묘지에는 소나무 한그루를 배경으로 묘비를 대신한 바위가 누워 있었다. 묘비명은 '처염상정(處染常淨)', '처한 곳은 물들어도 늘 맑고 깨끗하다'. 바라보니 산봉우리들을 흩뿌려놓은 듯한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아침햇살에 눈부시다. 그가 고향 땅을 끝내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노회찬재단

다찌의 추억, 대추나무집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통영에 와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다찌집이다.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한 상차림과 맥주나 소주가 가득한 술병 '바케스(양동이)'. 술값이 상째로 계산되고, 바케스째 술이 나오는 술집이 세상 또 어디에 있을까?

숙소에 짐을 풀고 통영 시내의 명소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덧 어둑해진다. 다찌집으로 향할 시간이다. 통영의 많고 많은 이름난 다찌집 중에 '현지인'이 추천하는 곳을 선택했다. '대추나무집'. 노회찬도 여러 다찌집을 순례했겠으나 그중에 대추나무집이 장석 선생을 비롯한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이 묻어 있는 집이다. 주방의 주인아주머니가 젊었을 때는 꽤 미인이었겠다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필자 같은 부류의 선택사항일 뿐이다.

ⓒ노회찬재단

한상 차리고 둘러앉으니 호스트이자 ‘로컬가이드’ 장 선생을 비롯한 동행인들에게 비로소 눈길이 간다, 우선 이번 여행에 동행해 주신 고등학교 절친 김창희와 최만섭 선배.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김창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노회찬이 김정숙 여사에게 선물한 책 <아버지를 찾아서>의 필자. 월남한 아버지가 일찍이 통영에 정착한 덕분에 그도 통영에서 태어났으니 이번 여행은 고향방문을 겸하는 셈이다. 통영 시내 구경 도중에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본인의 ‘생가터’(?)에 들러서 부모의 통영 시절을 추억하는 짠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최만섭은 노회찬이 고교시절부터 노동운동시절까지 수없이 옮겨다닌 자취방을 거의 다 가봤을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 시절 노회찬이 정성을 다해 끓여주던 자취방 라면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절친들 옆에 이번 통영기행을 마련한 음식천국 기획자인 노회찬재단 김형탁 사무총장, 박규님 운영실장이 계시다. 중간쯤에 이상희 님이 자리를 함께 했다. 통영음식 연구가이기도 한 이 선생은 통영 강구안에서 멍게요리전문점 ’멍게가’를 운영하고 있다.


다찌집의 주문 형식은 통영을 다녀간 사람들에겐 웬만큼 익숙한 문화다. 대추나무집을 기준으로 보면 기본(2인)으로 안주 한상과 술값이 6만 원이다. 추가 소주 한 병에 1만 원이나 하지만 그만큼의 안주가 따라 나오니 충분히 합리적이다.

ⓒ노회찬재단

다찌집은 어원상으로는 '서서(立) 마신다(飮)'라는 의미의 일본 서민주점 '다찌노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서서 마신다는 뜻의 '선술집'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것은 1910년대부터였다고 하는데, 역시 기원은 일본에서 건너온 기술자, 상인, 노동자들이었을 것이다. 필자의 개인 경험으로는 통행금지가 있던 1970~80대 초 청계천이나 무교동 등지에 벽에 판자를 둘러치고 그 위에 술이나 간단한 안주를 올려놓고 서서 먹는 목로술집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통영에서 언제부터 지금 같은 형태의 다찌집이 성행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려한 한상차림의 요릿집 문화를 선술집에도 도입시켜보자는 아이디어가 다찌집의 출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주머니 사정상 큰 요릿집을 드나들 수 없는 서민들이 술상을 가득 차려놓고 바케스째로 내놓는 술을 호기롭게 마실 수 있는 곳. 사철 싸고 싱싱한 해산물 안주거리가 코앞에 있다면 나름 해볼 만한 장사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노회찬재단

<토지>가 있어 행복했던 청년 노회찬

노회찬은 고교 시절 문학에 심취했다. 어느 해에는 그 해 발표된 단편소설을 모두 읽었을 정도였다. <창작과 비평>과 같은 문지는 물론 각종 월간 문학지들을 정기 구독했다. 그 무렵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 <토지>와 <장길산>(황석영 지음)을 읽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면서부터는 거의 소설을 읽지 못했던 그에게 <토지>는 인생의 소설이 되었다. 통영은 또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고향. 그의 기념관이 미륵산 아래에 있다.

노회찬이 16살때인 1972년 <현대문학>에 연재 중이이던 <토지> 1부를 접하게 된다. <토지>는 200자 원고지 3만 매 분량의 대하소설로 무려 25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노회찬은 박경리의 이 위대한 노정에 "3부까지는 15번을, 완간된 5부까지는 5번을 거듭하여 읽는" 경의를 바쳤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나의 인생 반려자와 같다.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났다. 질풍노도의 사춘기와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암울했던 청년시절 <토지>가 있어서 행복했다".

ⓒ노회찬재단

토지를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토지>를 많이 읽은 것이 부자라고 했던 노회찬을 기념한 여행인데 필자는 그만 박경리기념관 방문 일정을 놓치고 말았다. 다찌집에서 나와 3차로 간 카페와 숙소에서의 뒤풀이가 음주 능력의 한계를 벗어났다. 그러나 부지런한 일꾼은 꼭 있는 법. 아침 일찍 일어나 복국으로 해장까지 하고 택시로 미륵산 건너편의 박경리기념관을 다녀온 분들이 계셔주었다. 김 사무총장과 박 실장님이다. 게으른 자를 위해 카톡에 올려준 사진을 보니 기념관 마당에 박경리의 시가 새겨져 있다. 박경리는 소설가 이전에 시인이기도 하였다. 기념관쪽에서 고르고 골라 새겨놓았다면 "다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저승에 가면 꼭 노회찬의 첼로 연주를 배경으로 낭송하고 싶은 시다. 통영과 거제, 들리는 곳 마다 상 한편에 노회찬의 자리를 마련하고 술을 따랐는데, 술에 취해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말, 이 시로써 대신한다.

대개
소쩍새는 밤에 울고
뻐꾸기는 낮에 우는 것 같다
풀뽑는 언덕에
노오란 고들빼기꽃
파고드는 벌 한마리
애닯게 우는 소쩍새야
한가롭게 우는 뻐꾸기
모두 한목숨인 것을
미친 듯 꿀찾는 벌아
간지럽다는 고들빼기꽃
모두 한목숨인 것을
달지고 해뜨고
비오고 바람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이리 찬란한가
   
-<삶>,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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