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의총을 주최한 원내지도부는 시작부터 '보수 통합'의 의미를 최대한 강조하려 했다. 의원들 자리마다 새로운 당색인 분홍색의 머플러 형태 펼침막이 놓여졌고, 이례적으로 새보수당 출신 의원들의 자리는 '지정석'으로 마련됐다. 통상 당 대표와 원내지도부만 의총장 맨 앞줄에 앉고 다른 의원들은 자유롭게 빈 자리를 찾아 앉는 게 관례였으나, 새보수당·전진당 출신 이언주·유의동·오신환·이혜훈·정병국 의원의 이름을 출력한 A4 용지가 원내지도부 바로 뒷줄(앞에서 2번째 줄) 좌석에 일일이 붙었다.
여기까지는 기존 원내지도부가 모두 한국당 출신이니 통합에 참여한 모든 세력을 한 '앵글' 안에 담으려는 연출의 의도로 이해됐다. '지정석'을 미처 못 본 듯 이혜훈·유의동 의원이 다른 자리에 앉자, 원내부대표로서 의총 사회를 본 민경욱 의원이 "앞으로 나와 앉아 달라"고 마이크에 대고 요청했고 이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앞쪽으로 나와 앉았다. 다만 새보수당 측 혁신통합위원회-통합신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정병국 의원은 '지정석' 착석을 거부하고 한국당 의원들과 섞여 앉았다.
문제는 심재철 원내대표가 의총 모두발언에서 "조금 있다가 한 분 한 분 소개할 때마다 큰 박수로 격려해 달라"고 말하고, 이어 사회자가 "보수 통합에 동참한 의원과 최고위원들을 소개해 드리겠다. 호명해 드리는 분은 앞으로 나오시고, 큰 박수로 맞아 달라"고 이들을 앞으로 불러내려 하면서 시작됐다. 앞으로 나온 유의동 의원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고, 정병국 의원은 자리에서 손만 들어 보이고 나가지 않으려 하다가 주변에서 '나와요'라며 웃음으로 권유하는 의원들의 압력이 이어지자 "이게 뭐야"라고 투덜거리고는 앞으로 나가 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정 의원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서로 어려운 결단을 통해 이 자리에 왔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은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앞에 나온 사람들은 '새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따로 자리를 만든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이다. 우리는 하나가 된 것이지, 따로가 아니지 않느냐. 왜 (우리만) 따로 나와서 인사를 하느냐? 하려면 다같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당 지도부가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 여러분도 다 같이 인사하고 함께해야지, 왜 우리만 '들어와서' 인사해야 하느냐?"
정 의원의 항변에는 맥락이 있었다. 통상 정당에 소속된 모든 의원들이 모이는 의원총회에서는 의원 개인의 신상에 변동이 있는 경우 앞에 나와 신상발언을 하는 게 여야 모두의 관례다. 재보궐선거나 비례대표 의석 승계로 새로 당선된 경우, 재판 등의 이유로 의원직을 내려놓게 된 경우, 총리·국무위원으로 취임하게 된 경우 등이다. 새로 입당하는 경우도 당연히 포함된다. 지난 13일 옛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이찬열 의원(전 바른미래당)이 앞에 나와 인사를 한 것도 그런 경우다.
그런데 앞서 보수통합 과정에서 '큰집'인 한국당은 자당 중심의 흡수통합 방안을 선호했고, 원칙을 내세운 새보수당은 당대당, 1대1의 대등한 합당을 주장했다. 유승민 의원이 '3원칙'을 강조하며 통합이 난항에 빠졌을 때, 한국당 일각에서는 '오겠다고 하는 의원들만 개별입당하라고 하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왔었다. 새보수당 측은 이를 위협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형식상으로는 새보수당이 주장한 '1대1 합당'이 받아들여졌지만,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 공천관리위는 모두 기존의 한국당 조직을 승계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사실상 한국당에 흡수통합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이는 새보수당 의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옛 한국당 원내지도부인 현 미래통합당 원내지도부가 마치 개별입당한 의원들을 대하듯 '새로 오신 분들은 앞으로 나와서 인사해 달라'고 한 것은 무신경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이기는 하다.
정 의원의 작심 발언에 의총 분위기는 잠시 굳어졌고,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병국이 형 말이 맞다", "잘한다"며 그를 응원하는 말이 나왔다. 발언을 마친 정 의원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기를 거부하고 다시 좌석으로 들어가려 하자 심재철 원내대표가 급히 정 의원을 불러세우며 수습을 시도했다. "정 의원님! 자 다 같이 인사해요. 우리 다같이 일어서서…"
결국 심 원내대표의 제의로 의총장의 모든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견례"(민경욱 의원) 하듯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신환·유의동·이언주 의원 등의 인사말 순서도 심 원내대표가 "됐어요"라며 뜯어말려 없던 일이 됐다. 다만 분위기가 정리되기 전 이미 연단에 올라 있던 이혜훈 의원은 짧게 인사를 했고, 바른미래당에서 온 김영환 최고위원은 이 와중에 "저는 좀 해야겠다"며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꽤 긴 인사말을 했다.
헌혈 동참 행사 참여로 이 모든 사태가 정리된 후에 의총장에 도착한 황교안 대표는 그러나 의총 인사말에서 또다시 "우리 옆에 계신 의원들과 또 '새로 들어오신 분'들 모두가 파이팅을 외쳐 달라"고 말했고, 주변에서는 새보수당 의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심 원내대표는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비공개 회의에서는 정 의원 발언과 관련해서 이야기가 없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없었다"며 "그러니까 (순서를) 바꿔 가지고 그냥 상견례 인사를 하는 것으로 했지 않느냐"고만 했다.
이날 의총에 유승민·하태경·지상욱 의원은 불참했다.
유 의원의 측근인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유 의원이 어쨌든 이런 형태의 통합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은 맞다"며 "발언하지 않음으로써, 참여를 보류함으로써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혜훈 의원은 교통방송(tbs) 라디오에 출연해 "유 의원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고 불출마 선언을 했고, 공천 지분이든 지도부 지분이든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저희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게 돼버렸다"며 "그런데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상식 선에서 공정하게 해달라는 기본 전제와 믿음은 깔고 있는 것이지 않느냐. 그런데 이번에 (지도부 구성 등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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