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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웬사 "폴란드의 두 번째 재앙"…대통령 급서에 흐느끼는 바르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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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웬사 "폴란드의 두 번째 재앙"…대통령 급서에 흐느끼는 바르샤바

러시아, 안전 조치 소홀하지 않았나 '좌불안석'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인 2만2000여 명을 살해한 '카틴 숲 학살사건' 발생 70년 만에 폴란드에 "두 번째 재앙"(레흐 바웬사 폴란드 전 대통령)이 닥쳤다.

지난 10일 폴란드 대통령 내외를 태운 Tu(투폴레프)-154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96명 전원이 사망하면서 폴란드는 주말 내내 비극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번 사고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과 영부인은 물론 군 참모총장, 중앙은행 총재 등 폴란드 지도급 인사들이 모두 서거해 향후 정국 혼란도 예상되고 있다.

'국가적 비극'…애도 물결에 하나된 폴란드 국민

한꺼번에 지도급 인사 수십명을 잃은 폴란드 국민들은 정치적 견해나 카친스키 대통령에 대한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가 되어 밤새 추모 의식을 치렀다.

사고 발생 직후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대통령궁에는 조기가 게양됐으며, 그 주변은 장미와 튤립, 촛불을 들고 온 추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행렬에 참가한 한 70세 노인은 "이번 일은 국가적 비극"이라며 "희생자들의 직위를 떠나 단순히 봐도 너무 많은 생명을 잃었다"고 슬퍼했다.

국민의 95%가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 전역에서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미사가 잇달아 열리고 있으며, 10일 저녁 바르샤바의 필수드스키 광장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거국적인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또 폴란드 정부는 애도 주간을 선포하고 11일 정오(현지시간) 전국적으로 2분간 묵념 의식을 거행했다.

슬픔에 빠진 폴란드 국민들에게 각국의 위로 메시지도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도 카친스키 대통령이 생전에 풀지 못했던 외교적 앙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이사회 순번의장국인 스페인 미겔 앙헬 모라티노스 외무장관은 "어려운 시기에 있는 폴란드인들에게 연대의 뜻을 보내고 싶다"고 위로했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사고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면서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2005년 취임 직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시키는 것을 지원하면서 유럽 내 동서(東西) 갈등 발생을 우려해 나토 확장에 반대한 EU, 특히 독일과 갈등을 빚어왔다.

▲ 카친스키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 앞에 한 노인이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조기 대선 앞두고 정국 불확실성 높아져

리사르트 카초로브스키 전 폴란드 망명정부 대통령, 슬로보미르 스크르치펙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 예리치 스마이진스키 하원 부의장(민주좌파동맹 대통령 선거 후보), 알렉산더 츠시글로 국가안보국장, 프란시스첵 가고르 폴란드 군참모총장, 다데우스 플로스키 주교, 안드르제이 프르제보즈니크 보훈장관, 안드르제이 크레머 외무차관…

이번 사고로 숨진 승객 중 88명은 폴란드를 대표할만한 엘리트들로, '초대받지 못한'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려다 변을 당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7일 있었던 카틴 숲 학살사건 70주년 추모식에 도널드 투스크 총리만을 초대하고 러시아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던 카친스키 대통령은 초대하지 않았다. 이에 불쾌해진 카친스키 대통령은 따로 추모식을 거행한다며 폴란드 지도급 인사들을 데리고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이렇듯 주요 직책에 있던 이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으면서 폴란드엔 혼란이 동시에 닥쳐왔다. 현재 폴란드 정국은 보르니슬라브 코모로브스키 하원의장의 대통령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혼란 수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로 당초 10월 열릴 대통령 선거도 앞당겨 치러지게 됐다. 사고의 여파 때문에 대선이 흘러가는 방향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투스크 총리가 이끄는 시민강령(PO)의 후보로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던 코모로브스키는 사망한 카친스키 대통령(법과 정의당, PiS), 스마이진스키 하원 부의장(민주좌파동맹, SLD)보다 유력한 후보였지만, 카친스키 대통령의 쌍둥이 형제인 야로슬라브 전 총리에게 '동정표'가 돌아갈 공산이 있다.

또 사고의 엄청난 영향으로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 대선에서 의외의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폴란드는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총리가 국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어서 대통령의 유고로 인한 혼란은 크지 않으며, 사고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선거도 이변 없이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이번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관이 운반되고 있다. 무릎을 꿇고 관에 입맞추고 있는 이가 야로슬라브 전 총리 ⓒ로이터=뉴시스

러시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이번 참극은 단순 비행 사고로 관측되지만, 초기에 테러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됐던 만큼 러시아와 폴란드의 관계는 첨예하다.

특히 러시아와 앙숙이었던 카친스키 대통령이 러시아 땅에서, 그것도 폴란드 인들에게 뼈아픈 역사인 카틴 숲 사건을 추모하려다 사고를 당했다는 아이러니 때문에 양국 관계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게다가 러시아가 외국 국가 원수의 비행에 대해 적절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러시아는 도의적 책임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블랙박스 분석이 완료되지 않은 가운데,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가 안개가 짙게 낀 악조건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던 조종사의 과실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 조종사는 벨라루스 민스크로 착륙하라는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스몰렌스크 공항 착륙을 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Tu-154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100명 안팎이 사망한 대형 비행 사고만 16건 발생한 '문제기'인데다가 러시아 역시 잊을 만하면 항공기 사고가 발생하는 나라다.

국가의 감독과 통제 소홀 역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을 감안할 때, 추락 원인이 조종사의 실수에 국한된다고 해도 러시아는 폴란드에 고개를 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과거사 때문에 러시아에 앙금이 남아있는 폴란드 국민들 사이에서 반러 정서가 퍼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방송 <BBC>도 인터넷판에서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영향은 러시아와 폴란드 양국 간 관계에 찾아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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