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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앙숙' 폴란드 대통령, 비행기 추락으로 러시아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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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앙숙' 폴란드 대통령, 비행기 추락으로 러시아서 사망

러시아의 폴란드인 학살 사건 추모식 가던 중 96명 전원 사망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이 탑승한 비행기가 10일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공항에 착륙하다가 추락해 카친스키 대통령을 포함한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러시아 비상대책부는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가 탄 러시아제 Tu(투폴레프)-154 비행기가 이날 오전 10시 56분께(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350km 떨어진 스몰렌스크 공항 부근에 추락해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비상대책부는 이 항공기 탑승객은 96명이었다고 최종 확인했다.

▲ 비행기가 추락한 스몰렌스크는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350km 떨어진 곳이다. ⓒBBC 인터넷판
세르게이 안투피에프 스몰렌스크 주지사는 "사고기가 착륙을 하려다가 활주로에 내리지 못하고 나무 꼭대기에 부딪치면서 추락했고, 기체는 산산조각 났다"면서 "현재까지 생존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테러 아닌 조종사 실수인 듯

추락한 Tu-154기는 20년 이상 된 것으로 사고 다발 기종으로 악명이 높다. 대표적으로 작년 7월 이 기종의 항공기가 이란 북서부에서 추락해 168명이 사망했고, 올 1월에도 이란에서 러시아 조종사가 조종한 Tu-154 항공기에서 착륙 도중 화재가 발생해 40명 이상이 다쳤다.

이같은 사실과 안투피에프 주지사의 말로 비춰 볼 때 이번 사고는 테러나 항공기 납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기체 노후나 결함, 조정 미숙 등으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익명의 스몰렌스크 현지 관리를 인용해 "추락 원인은 착륙을 위해 접근하던 중 (발생한) 조종사의 실수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검찰과 항공 당국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공항 주변에 짙은 안개가 낀 상태에서 착륙을 시도했고 활주로에서 300여m 떨어진 숲 속 나뭇가지 끝에 기체가 부딪힌 후 곧바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면서 폭발한 뒤 화재가 일어났다.

특히 러시아 당국은 사고기 조종사가 벨라루스 민스크로 회항하라는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4번이나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항공 사고 전문가들은 시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 동체가 두 동강 난 사고 비행기 ⓒ로이터=뉴시스

폴란드 정부 공식 대표단 88명 사망

폴란드 외교부는 추락한 비행기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가 타고 있었다고 확인했고, 러시아 관리는 카친스키 대통령의 사망을 확인했다. 이 항공기에는 대통령 외에도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 대통령 비서실장, 육군 참모총장, 외무차관 등 고위 정부 인사와 그 가족들이 88명이 함께 탔다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이날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고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떠나 모스크바를 거쳐 스몰렌스크로 가던 중 변을 당했다. 카틴 숲 학살 사건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당시 소련 비밀경찰(NKVD)이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 지역인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 2만2000여 명을 살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소련은 과거 이 학살이 나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폴란드와 양국간 갈등의 원인이 되어 왔다. 폴란드는 이 학살을 국제범죄로 규정하고 러시아에 관련자료 공개와 범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러시아 정부는 대량학살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완전한 자료 공개를 꺼리고 있다.

이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지난 7일 러시아를 혐오하는 반공주의자 카친스키 대통령 대신 그의 정치적 라이벌 도덜드 투스크 총리를 초대해 추모식을 치렀다. 이에 카친스키는 폴란드의 최고 대표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초대가 없더라도 카틴을 방문할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결국 3일 후 학살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별도로 추모식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 카친스키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었다. 2008년 12월 부인과 함께 서울에 와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이 대통령도 작년 7월 유럽 3개국을 순방하면서 첫 방문지로 폴란드를 선택했다. 사진은 당시 바르샤바에서 이 대통령 내외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오른쪽) ⓒ청와대

사망한 카친스키(61) 대통령은 폴란드의 보수 우파 가톨릭 세력을 대변하는 매우 논쟁적인 정치인이다.

1970년대 반공산당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카친스키는 1980년대 폴란드 연대노조 운동을 이끈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고 1990년 바웬사가 대통령이 되자 보안장관으로 임명됐다.

이어 2000년 6월부터 2001년 7월까지 우파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하면서 강력한 부패 단속으로 국민적 인기를 얻어 2001년 '법과 정의'(PiS) 창당을 주도했으며 2002년 바르샤바 시장에 당선됐다.

여세를 몰아 카친스키는 2005년 10월 23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1차 투표에서의 열세를 뒤집고 '시민강령'(PO)의 도널드 투스크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 과정에서 쌍둥이 형제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전 총리가 형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총리직을 포기하는 우애를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수 우파인 카친스키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 시절 폴란드의 군사현대화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기지를 폴란드 안에 건설하는데 동의했을 정도로 밀월 관계를 유지했었다. 이 때문에 작년 7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부시 전 대통령을 그리워 할 5명의 세계 지도자 중 하나로 카친스키를 꼽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와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 대표적으로 카친스키는 바르샤바 시장 시절인 2005년 5월 러시아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체첸 무장세력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의 이름을 딴 '두다예프 광장'을 조성해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이런 사정 때문에 푸틴 대통령 시절 러시아는 카친스키의 대통령 당선에 축하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그런 카친스키가 역사 문제로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카틴 숲 학살 사건 추모 행사에 참여하려다가 러시아 땅에서 사망한 것은 상징적이다. 사고 원인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조사 태도에 따라 양국간 미묘한 기류가 조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푸틴 총리는 카친스키 대통령의 사망에 애도를 표명하고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사고 발생 직후 푸틴 총리를 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세르게이 쇼이구 비상대책부 장관을 현지로 급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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