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해명을 했다.
***"민족을 잣대로 차별적 추궁이 정당화돼선 안돼"**
이 교수는 5일 서울대 경제학부 홈페이지에 게재한 '해명서'를 통해 "토론 발언에서 저는 일본군의 성노예제 조직과 관리의 전쟁범죄가 그들만의 유일한 책임이 아니라 강제 동원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경영한 한국인 출신 민간업주, 위안소를 찾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고 문제 발언 사실을 시인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같은 발언의 취지는 "이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자발적이고 성찰적인 고백이 있어야만 진상이 규명될 뿐더러 진정한 역사의 청산도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고백과 반성의 범위를 해방 후 대한민국의 일부 군대에서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자행된 여성의 성착취 문제,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실상 방조된 미군기지의 성착취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책임을 면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으면서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부연해명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 "제 발언의 취지는 국가권력에 의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제도와 기구가 설치, 운영되고 그에 다수의 민간인이 협력한 사실의 기본 구조에 관한 한 보편적 반인륜의 범죄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민족을 잣대로 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차별적 추궁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주장, 정신대 문제를 접하는 종전의 기본 관점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우익의 "책임회피 논리'**
하지만 정신대 문제에 대한 우리민족의 접근을 "민족을 잣대로 한 차별적 추궁"이라고 규정한 이 교수 주장은 그동안 일본우익들이 즐겨 사용해온 책임회피 논리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의 해명은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이 교수 주장의 본의가 종군위안부 강제징용에 협력한 '국내 친일세력'의 청산을 통해 일본의 범죄행위에 대한 질타의 정당성을 높이자는 의미라 할지라도, 이 교수의 이같은 접근법은 종군위안부 징발을 주도한 일본세력과 이를 추종한 국내 일부세력의 행위를 동일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의 '책임회피' 논리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군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간 정치문제화됐던 지난 1992년도에 일본 우익들이 경쟁적으로 이와 유사한 책임회피 논리를 쏟아냈었다.
한 예로 하세가와 게이타로 일본 방위연구소 교관은 1992년 7월 <보이스>라는 일본잡지에서 행한 대담을 통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논하는 게 바람직하다. 당시에는 공인매춘부제도가 있었고, 위안부라는 것은 매춘부가 그대로 옮겨간 것이다. 게다가 강제로 끌고간 흔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현대코리아> 편집장은 92년 4월 월간지 <정론>에 쓴 '위안부냐 정신대냐'는 글을 통해 당시 일본법정에 소송을 제기한 박말자, 김순자, 김영순 등 세 종군위안부 할머니가 "모두 포주 등에게 끌려가 팔린 케이스"라고 주장하며, "모집단계에 있었던 '군(軍)의 관여'라는 것은 민간에서 행해지고 있던 '강제적 여성 모집'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요컨대 종군위안부 모집 과정에 일본군이 일부 관여하기는 했으나, 이는 한국의 포주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던 '강제적 여성 모집'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행한 일본군의 인도적 조치였다는 주장이다.
기시다 슈우 외코우대 교수는 1992년 4월 <제군>이라는 잡지와의 대담에서 "조선반도라는 데는 솔직하지 못한 분위기가 있다. 종군위안부 건만 해도, 상당수의 일본인 여성이 위안부 노릇을 했고 위안부를 돈을 주고 샀던 남자들 가운데에는 조선인 남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해명서 전문이다.
***MBC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 대한 이영훈 해명서**
지난 9월2일 MBC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 '과거사 진상규명 논란'의 토론 당시 구 일본군 성노예와 관련된 저의 발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관계자 여러분과 기관에 해명합니다.
1. 저는 일본군 성노예가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였다는 일부 언론에서 유포하고 있는 발언이나 그와 유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토론과정에서 직접 행한 적이 없습니다. 토론과정에서 송영길 의원이 제 멋대로 해석해서 덮어씌운 발언이 마치 저의 발언인 것처럼 보도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대하여 정정보도를 청구한 상태입니다.
또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인용 보도한 일부 언론매체에 대해서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2. 그렇지만 저의 발언을 계기로 어지럽게 전개된 토론과정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전 인격이 파괴된 채 평생을 고통으로 살아오신 할머니들께 결과적으로 가슴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더 없이 죄송한 마음에서 깊이 사죄드립니다.
또 일본군 성노예가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의 형태'였다는 악의적 해석이 마치 저의 발언인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전달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적 논쟁을 초래한 데 대해서는 제 개인적으로도 몹시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3. 저는 구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여 여성을 강제 동원하고 감금하여 병사들에게 성적 위안을 강제한 행위는 국제사회가 협약으로 금하고 있는 성노예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지금 개정중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에서 열거하고 있는 22가지 죄목 가운데, 다른 죄목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지만, "일본군위안부의 강제동원에 적극 협력한 자"의 죄목에 관해서만은 그것이 인류 문명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반인륜의 범죄에 해당하므로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끝까지 추적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 저의 세 번 째 토론발언에서도 저의 이러한 기본입장은 명백히 입증됩니다.
4. 그러나 계속된 네 번째 토론 발언에서 저는 위와 같은 일본군의 성노예제 조직과 관리의 전쟁범죄가 그들만의 유일한 책임이 아니라 강제 동원과정에서 협조하고 위안소를 위탁경영한 한국인 출신 민간업주, 위안소를 찾은 일반 병사들에게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자발적이고 성찰적인 고백이 있어야만 진상이 규명될 뿐더러 진정한 역사의 청산도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고백과 반성의 범위를 해방 후 대한민국의 일부 군대에서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자행된 여성의 성착취 문제,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사실상 방조된 미군기지의 성착취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책임을 면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으면서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억압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5. 제 발언의 취지는 국가권력에 의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제도와 기구가 설치, 운영되고 그에 다수의 민간인이 협력한 사실의 기본 구조에 관한 한 보편적 반인륜의 범죄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민족을 잣대로 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차별적 추궁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TV 생방송 대중토론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토론자들의 오해에 미숙하게 대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군 성노예가 상업적 성매매였다는 인상을 일반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면, 토론참가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는 바입니다.
6. 저는 이번 일이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가 국가권력에 의한 여성의 성 착취 범죄 행위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겸허한 자기 성찰의 역사적・사회적 반성을 행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역사의 청산은 결코 과거의 소수 범죄자들을 들추어 모든 역사적 책임을 덮어씌우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성찰의 반면 거울로 삼아 사회 전체가 미래지향적으로 그 도덕성을 고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대 할머니들을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 강제동원의 희생자 분들께는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4년 9월 5일
이 영훈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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