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무려 3차례의 이사회 연기 끝에 지난 2월 6일 이사회를 열어 재무제표를 승인하고 지난해 실적을 공시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서 회계장부 승인이 이토록 늦어졌을까? 그런데 쌍용차가 공시한 실적 내용 자체가 엄청나다.
납득할 수 없는 수치와 이유들
영업손실 2,819억 원! 쌍용차 역사상 가장 큰 위기였던 2009년에 기록한 영업손실(2,950억)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당기순손실은 그보다 큰 3,414억 원!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한 2011년 이후 지난 8년간 기록한 당기순손실 전체를 합한 액수에 맞먹는 금액이다.
전년에 비해 판매량과 매출액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쌍용차에 갑자기 들이닥친 악재가 있었던 것인지, 언론을 아무리 검색해 봐도 나오지 않는다. 전년 대비 무려 2천억 원 이상의 손실이 늘어난 최악의 영업손실·당기순손실을 공시한 회사 측이 공시자료에 공개한 실적 악화 이유는 4가지였다.
△ 배기 규제 강화에 따른 원가 상승
△ 판매 경쟁 심화에 따른 영업비용 증가
△ 신차 출시로 인한 감가상각비 증가
△ 유형자산 손상차손 반영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내 입장에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니, 배기가스 규제 기준이 강화되는 걸 몰랐을 리도 없고, 그런 문제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라고 경영진이 존재하는 거 아니었나? 세계적인 트렌드가 SUV로 몰리고 있어서 판매 경쟁 심화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한 변수인데, 쌍용차 경영진은 저 문제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공시했단 말인가.
경영진의 무능 외에는 설명이 안 되는
몇 차례 글을 통해 얘기한 것처럼, 쌍용차는 내수 판매 비중이 80%를 차지한다. 즉, 배기가스 규제와 관련해서는 수출 관련 이슈보다는 내수시장 이슈가 훨씬 중요하다. 한국에서 이와 관련한 큰 변화가 있었다면, 지난해 9월부터 디젤차의 배출가스 기준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대부분의 업체는 SCR(선택적 촉매환원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장치는 '요소수'라는 환원제를 분사해 질소산화물을 질소가스와 이산화탄소, 물로 변환시켜줌으로써 유해가스를 줄여준다. 요소수와 SCR 장착에는 당연히 추가 비용이 들어가게 되며, 대략 1대당 100만 원 안팎의 비용이 추가된다.
그런데 쌍용차의 경우 요소수와 SCR을 장착하는 차량은 렉스턴4G와 코란도C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이 2개 차종의 판매량은 내수와 수출을 합하더라도 4만 대 남짓에 불과하다. 대당 100만 원의 추가비용을 계산하더라도 400억 정도에 해당한다. 게다가 강화된 기준은 지난해 9월부터 적용된 것이라 실제 추가비용은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이런 이슈가 발생하면 완성차업체는 당연히 차량 가격을 조금 올려서 추가비용을 상쇄한다. 이를테면 현대차 포터의 경우 지난해 7월에 갑자기 판매량이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는데, 8~9월부터 요소수 장착에 따라 차량 가격을 100만 원 가량 올릴 예정이어서 차량 가격이 오르기 전에 구매하려는 고객이 몰렸기 때문이다.
만일 차량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면, 가격을 올린 경쟁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되어 판매량 상승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물론 일부 손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판매량 상승이 손실을 상쇄해주는 효과를 내게 된다. 그렇다면 이게 전년 대비 무려 2천억이나 늘어난 손실의 주요 이유일 수는 없다.
앞뒤가 안 맞는 이유들
신차 출시가 늘어서 감가상각비가 늘었다면서, 판매경쟁 심화로 영업비용이 증가했다? 아니, 신차 출시만큼 강력한 영업 수단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좌우지간 도대체 감가상각비가 얼마나 늘었다는 것인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직 손실 규모만 발표되었을 뿐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아니어서 불가피하게 3분기 보고서를 참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감가상각비는 1,217억 원 규모로 2018년 같은 기간(1,059억 원) 대비 158억이 늘어났다. 그런데 2017년 같은 기간 감가상각비가 944억 원이었고 2018년 같은 기간 115억이 늘어났음을 감안하면 놀랄 정도로 늘어난 수준은 아니다. 따라서 감가상각비가 전년 대비 2천억 이상 늘어난 손실의 핵심 이유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차 출시로 투자가 늘어났다면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의 증가로 이어짐이 마땅하다. 연결감사보고서와 분기보고서를 통해 유·무형자산 규모의 변화를 살펴보면, 2017년 말부터 유형자산 규모는 오히려 꾸준히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일하게 2017~2018년 사이 무형자산의 상승만 500억 가량 있었을 뿐, 무형자산 규모도 지난해 들어 감소세로 바뀌었다.
다시말해 신차 출시를 위한 투자가 과거보다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무형자산 규모가 대폭 늘어난 것도 아니고, 따라서 감가상각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만큼의 규모도 아니었다.
신차 출시 약속 어긴 건 마힌드라와 쌍용차
그럼 지난해 나온 신차는 무엇이 있었을까? 우선 작년 3월에 코란도C 풀체인지 모델 '뷰티풀 코란도'가 출시되었다. 6월에는 티볼리의 부분변경 모델 '베리 뉴 티볼리'를 선보인 바 있다. 사실 이건 2018년 8월 쌍용차 노사 임단협에서 합의된 '미래발전전망'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이기도 했다. 당시 합의된 미래발전전망 중 신차 개발과 출시계획만 그림으로 나타내 보았다.
*C300 : 코란도C 풀체인지 모델, C350 : 코란도C 부분변경 모델
*X150 : 티볼리 부분변경 모델, X200 : 티볼리 풀체인지 모델(차세대 신차)
*A200 : 코란도 투리스모 풀체인지 모델(차세대 신차)
*E100 : 쌍용차 최초의 전기차 (코란도C 기반에서 개발되는 전기차)
*D300 : 카이런 신차 모델, Y450 : 렉스턴4G 부분변경 모델, Q250 : 렉스턴 스포츠 부분변경 모델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2020년 출시 예정이던 E100과 A200 개발이 1년 이상 늦춰졌다는 입장을 발표하게 된다. 이 얘기에 따라 변화된 신차 출시 일정을 다시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2020년, 그러니까 올해 쌍용차는 완전한 '신차 가뭄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대체 왜 E100과 A200 개발 일정이 늦춰지게 된 것일까? 투리스모 후속 차량(A200)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지만, 쌍용차가 내놓을 최초의 전기차 E100의 출시가 늦춰지게 된 배경은 알려져 있다. 본래 마힌드라는 티볼리 기반에서, 쌍용차는 코란도C 기반에서 전기차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독자들도 잘 아다시피 어느 완성차업체이건 전기차 개발 과정에서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개발·생산하는 전문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것은 기본이다. 마힌드라 역시 배터리의 경우 LG화학을, 그리고 전기모터의 경우 TM4라는 업체를 선택해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TM4라는 업체와의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계약 파기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려진 내용이 없지만, 여하튼 이 계약의 파기로 인해 마힌드라와 쌍용차 모두 전기차 출시 일정을 2020년에서 2021년으로 1년 이상 늦추게 된다. 다시말해 마힌드라의 사정으로 전기차 출시가 늦춰진 것. 계획대로였다면 지난해 전기차 개발 관련 투자가 많이 늘었어야 했다.
즉, 애초 노동조합과 합의했던 신차 출시 계획들조차 연기하며 개발 관련 투자를 줄인 마당에, 손실 액수가 많아지니 그 핑계로 '신차 출시로 인한 감가상각비 증가'라고 써놓은 것이다. 마힌드라와 쌍용차 경영진들은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보시라. 뭐 그렇게 많은 신차를 출시했다고 감가상각비를 운운하시는지….
임금·복지 삭감 합의하자 손실 눈덩이처럼 늘어
분기보고서와 연결감사보고서를 토대로 2018년부터 분기(Quarter)별로 영업이익·당기순이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해 보았다(아래 표). 8분기 연속으로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래도 작년 2분기까지 손실이 갑자기 늘어나진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의 손실 규모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지난해 3, 4분기가 어떤 시기이던가? 8월에 임금협상을 마무리하자마자 곧바로 '비상경영'을 선포한 쌍용차는, 한 달 동안 노사 협의를 거쳐 9월 중순에 학자금·의료비·경조금·주택융자금 등 복지혜택을 전부 또는 일부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것만으로도 최소 150~200억 원 가량의 인건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12월에는 회사가 성과금·일시금 반납과 상여금 200% 삭감 등 1인당 연봉 1,700만~2,000만 원 가까운 임금 삭감을 밀어붙였다. 이런 임금삭감으로 연간 700~800억 원 가량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3, 4분기에만 무려 1천억에 육박하는 임금·복지 삭감이 이뤄졌는데, 바로 그 시점에 분기별로 1천억이 넘는 손실을 기록하다니?
임금·복지 삭감은 곧바로 효과가 난다기보다 1분기쯤 지나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3분기 복지혜택 축소에도 불구하고 4분기 당기순손실이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도대체 쌍용차 회계장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눈길은 이제 쌍용차가 마지막으로 적시한 이유인 '유형자산 손상차손'으로 집중된다. 어허, 이게 바로 10년 전에 쌍용차 회계부정의 핵심 이유로 지목되었던 바로 그 항목 아니던가. 물론 구체적인 회계장부 공개 전까지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얼마나 설득력 있는 해설과 변명이 나올 수 있을지….
한편 마힌드라는?
쌍용차가 이 정도라면 모기업인 마힌드라 역시 상당한 타격을 입지 않았을까? 기록상으로만 보자면 마힌드라의 지난해 판매량과 매출액 감소율은 쌍용차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쌍용차가 신차 출시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마힌드라 역시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이 또한 놀라운 얘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전혀 예상 밖의 결과들이 나왔으니 말이다. 쌍용차가 사상 최악의 손실을 기록하는 동안, 마힌드라의 영업이익율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판매량과 매출액이 쌍용차보다 훨씬 곤두박질 쳤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쌍용차와 마힌드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다음에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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