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이슈가 최근 몇 주를 휩쓸었다. 미디어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트랜스젠더는 군인으로, 대학 입학을 앞둔 수험생으로, 그리고 변호사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말한다. '트랜스젠더가 불편하다'고. "트랜스젠더 여성이 어째서 여성이냐"는 혐오 섞인 말부터 "머리 기르고 치마 입으면 여자냐" 등 칼날 같은 조롱을 쏟아낸다. 7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A 씨'는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A 씨가 관심을 모으며 덩달아 실검에 오른 한희(본명 박한희) 변호사. 처음 A 씨의 숙명여대 합격 사실이 알려졌을 때 A 씨는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희 변호사의 글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한희 변호사는 그런 A 씨를 통해 다시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소수자들은 그렇게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용기가 된다. <프레시안>이 7일 서울 은평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서 한희 변호사를 만나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이슈를 짚어봤다.
트랜스젠더, 수면 위로 떠오르다
프레시안 : 군 복무 중에 트랜지션을 하신 변희수 하사나 최근 숙명여대에 합격하신 트랜스젠더 A 씨를 보실 때, 먼저 트랜지션을 하셨고 또 커밍아웃하신 '인생 선배'로서 어떠셨나?
한희 : 커밍아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저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트랜지션할 당시 저는 10년을 넘게 고민했고 또 부모님과 다 이야기가 된 상태였고, 변호사로서 여기 희망을만드는법에 들어온 상황이라 해고를 걱정할 것도 아니었고.
변희수 하사나 A 씨 같은 경우는 후폭풍이 생길 것이 예상 됐음에도 커밍아웃했다. 굉장히 용기 있는 거다. 변 하사 같은 경우는 강제 전역을 당했지만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피하고 덮을 수만은 없다는 메시지. 트랜스젠더들은 계속 나올 거다. 이 둘만이 아니다.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 이슈가 앞으로도 드러날 거란 이야기인가.
한희 : 더 크게 드러날 것이다. 저도 주변에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을 보면 젊은 친구들은 특히나 저희 때랑 인식이 다르다. 저는 85년생인데 저 때만 해도 감추고 사는 게 당연했다. 커뮤니티 같은 것도 없었고 콘텐츠를 접할 곳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인터넷을 통해서 성소수자 문제를 접할 수 있고 당사자들의 권리의식도 높다. 학교에서도 인권교육을 하고 있다.
어린 친구들일수록 '나에게 권리가 있고 내가 나를 드러내는 게 당연한 거다' 이런 인식이 강하다. 성소수자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가시화 될 거다. 그 사람들은 계속 있을 거고 드러내는 걸 막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나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 두 분이 그런 과제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과제를 던졌다'라고 했다. 사실 변희수 하사 같은 경우는 너무 명백했다. 군이라는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보다는 숙명여대 논란은 충격이었다. 소수자인 여성들 일부가 또 다른 소수자인 트랜스젠더를 배척했다.
한희 : 고민이다. '소수자 간의 싸움' 프레임으로 갈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A 씨의 입학을 반대한 숙대 일부 학생들이 자신이 차별 받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반대로 다른 사람의 차별 경험을 축소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겪은 성차별과 폭력의 경험이 있는데 이게 여성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선명해지지 못한다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여성을 안 챙기고 성소수자를 챙기느냐, 이런 식으로 되는 거다.
그러나 여성과 성소수자는 단절된 집단이 아니다. 여성 내에서도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나이도 있고 장애나 인종, 경험이 다 다르다. 결혼이주여성과 한국사회에서 태어나 살아온 여성은 경험한 게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할 건, 누굴 먼저 챙기느냐가 아니라 이 사람들도 차별을 받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 어떤 차별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지, 어떤 것들이 이 사람들을 소수자로 만들고 평등을 저해하는지 이걸 같이 봤으면 좋겠다.
'트랜스젠더'를 위한 언어가 없다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 A 씨'의 숙명여대 입학을 두고 숙대 내에서 논쟁이 치열한 것 같다. 배척하는 입장에서는 '치마입고 꾸미는 거 좋아하면 여자냐'는 것 같은데, 이런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희 :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정체성을 설명할 때 '전 인형을 좋아했어요', '꾸미는 거 좋아해요' 이렇게 말하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해명하자면, 트랜스젠더를 위한 언어가 없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을 해야 하는 데 그게 없다.
사회가 그런 식의 설명을 요구한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호르몬치료를 시작하거나 수술을 받으려면 우선 정신과 진단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예전 진단 기준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아이는 화장 좋아하고 치마 좋아하고 소꿉놀이, 고무줄놀이 즐겨한다" 이런 게 있었다. 이 진단기준에 맞지 않으면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한다. 그 기준단계에 맞추려다보니 그런 식으로 설명하게 되는 거다.
진단 기준이 요즘은 바뀌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과거에는 정신장애로 분류했는데 지금은 '성별불일치'로 분류한다. 정신과에서 판정을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느끼는 걸 우선시 하는 거다. 성별정정도 아일랜드나 덴마크 같은 나라는 본인이 선언하는 게 끝이다. 이 사람이 수술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런 거 없이 "내가 이런 성별이라고 느낀다"라고 하면 바꿔준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나는 여자다'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한희 : 설명할 수 없다. '언어가 없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그렇다.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왜 여자야?' 혹은 '왜 남자야?'라고 물었을 때 설명이 쉽지 않을 것이다. 법적 성별이 여자라? 성기모양이 그래서? 그런 것들은 다 바꿀 수 있다. 염색체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맞나? 저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다.
'왜 그러냐' 라고 했을 때 '그냥 내가 그렇다'는 말 말고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그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트랜스젠더가 여성을 위협? 여성은 동일하고 균질한 집단 아니야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가 여성의 공간을 침범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성성의 확장이 남성 기득권을 강화하고 여성을 위협한다는 논리다.
한희 : 화장실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장실은 극렬한 대립이 일어나는 곳이다. '성중립화장실'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여성분들은 '성범죄가 늘어날 것이다', '남자가 트랜스젠더인 척 여장하고 들어와서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불안이 근거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법촬영, 성폭력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식이 트랜스젠더를 쫓아내는 방식이라면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여성 같이 안 보이는 사람'을 쫓아내는 거다. 그렇게 하면 쫓겨나는 게 트랜스젠더만이 아니다. 여성 같지 않아 보이는 여성도 쫓아내는 거다.
실제로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자화장실 사용 반대여론이 심했을 때 한 주에서는 머리 짧은 여성이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경비에게 제지당해서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분은 트랜스젠더도 아니고 그냥 머리 짧은 여성이었는데 여자 같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쫓겨난 거다.
이런 식으로 검열을 하면 결국엔 '사회적으로 여자로 보이는 사람'만이 남는 거다. 그게 결국은 그분들이 반대하는 사회적 여성성을 강화하는 것 아닌가. 여성은 동일해야 하고 명확해야 하고 균일해야 한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이야기하자면, 트랜스젠더는 어느 화장실도 갈 수가 없다. 실제로 시비를 걸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엔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인권은 두 개 중에 선택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여성을 챙기고 성소수자를 챙긴다, 이런 게 아니고 같이 갈 문제다. 누구나 화장실은 간다. 화장실은 안전해야 한다. 그럼 '화장실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 이런 고민이 필요한데 숙대 내 일부의 목소리는 일단 분리시키고 사람을 추방하자는 거다. 그게 안타깝다.
왜 트랜스젠더에게 증명을 요구하는가?
프레시안 : 트랜스젠더가 사회적 여성성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희 : 강연에서도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막상 트랜스젠더와 만나 본 적이 없다. 대부분 미디어에 나오는 하리수 씨 같은 연예인들, 아니면 유튜버들. 그런 분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단편적이다. 연예인들이 화장하고 잔뜩 꾸미고 무대 위에 올라간다 해서 24시간 내내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식으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다. 트랜스젠더는 다 이렇게 여성처럼 꾸미고 과장되게 여성스럽게 행동하고 24시간 풀메이크업하고 예쁜 옷만 입을 것이라는 식이다.
트랜스젠더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트랜스젠더가 인구의 0.3%라고 한다. 적지 않다.
물론 과도하게 여성성을 꾸며서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변론을 하자면 그렇게 해야 사회에서 여자로 받아들여주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트랜스젠더가 성별이분법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성별이분법이 강한 사회라 여성성을 강조하는 트랜스젠더가 나타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사회가 여성성을 강요한다는 의미인가
한희 : 그렇다. 제가 아는 어떤 트랜스젠더 여성은, 처음 친한 여성 친구에게 커밍아웃 했을 때 "그렇게 생겨서 여자라 할 수 있느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분은 지금 잘 꾸미고 다닌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사회적 여성성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해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트랜스젠더라면 더 엄격하게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 트랜스젠더가 아닌 여성이 화장을 안 하고 머리를 짧게 잘랐다 해서 타박은 받을지언정 "너 왜 여자가 아닌데 여자라고 거짓말 해?"라고 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트랜스젠더 여성이 그런 '사회적 여성성'을 띄지 않는다면 "너는 어차피 남자니까 그런거야"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정체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여성성이 계속 요구되는 거다. 그럼 증명에 따라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왜 사회적 여성성을 따라가는가?"가 아니라, "왜 그들에게 증명을 요구하는가?"
프레시안 : 숙대에 합격한 A 씨가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안타깝다.
한희 : 우선 당사자의 결정에 지지한다. 비록 이번에 입학하지 못했더라도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자신답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그녀가 던진 차별과 혐오를 넘어 소수자들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는 과제에 대해서 사회가 대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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