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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이국종 교수들'을 생각한다

[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정부는 전문가가 공익 위해 일할 터전 마련했나

어떤 일을 보수를 받고 전문적으로 하거나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을 전문가 또는 프로페셔널이라고 한다. 혹자는 프로라면 받는 돈의 액수에 따라 서비스의 질과 양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지식과 경험은 개인의 능력이자 자산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제도를 통하여 만들어진 사회적 자산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일이든 사익 추구 목적은 동시에 어느 정도 공공성을 아울러 갖는다. 그러므로 오직 지급받는 보수의 액수에 따라서만 전문가의 서비스 질과 양이 결정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제도를 통하여 만들어진 사회적 자산인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큰 보수를 지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집단만이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권력이나 재력을 갖고 있는 집단에만 사회적 자원이 집중되면, 사회 제도는 오직 이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공고해진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적절한 보수가 지급되기 어려운 분야에는 국민 세금 등 공공 영역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공공 자금이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운영하는 집단이 오직 수익만을 생각하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에 둔다면 애초 공공 투자의 목적은 무용지물이 된다.

최근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이 과거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에게 욕설을 퍼붓는 음성이 보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국종 교수는 외상센터장직 사임원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에 따르면 외상센터에 사용하라고 내려온 예산이 간호 인력 충원, 외상 환자를 위한 병상 배정 등에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지위, 지식, 경험을 이용하여 큰 수익을 올리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프로의 능력을 평가한다면 이국종 교수를 이용하여 외상센터를 유치하고, 예산을 받아내고(비록 받아낸 예산을 다른 곳에 유용하였을지라도), 그 예산으로 병원 시설을 확충하고, 병원 수익 증대에 기여한 병원장은 대단한 능력자가 아닐 수 없다. 그는 그 같은 실적을 보여 병원 관계자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 페이닥터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중노동에 시달리며 돈 안 되는 외상환자를 돌보고 외상의료체계를 만드는데 헌신한 이국종 센터장은 매우 무능한 사람이 된다.

개인이 얻는 이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노동 강도, 외상의료시스템 구축이라는 사명감으로 아주대 병원 외상센터 설립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병원의 이기주의와 수익 논리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국종 센터장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수익 지상주의에 가슴 아프다. 이 사건의 뒤에는 아주대병원이 예산을 통하여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뒤를 지켜준 관료들이 있었다. 비슷한 사례가 부동산 분야에도 있었다.

경실련은 지난 달 30일 정부의 공시지가 조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불공정한 공시가격 폐지와 공시지가 현실화율 반영을 주장하였다. (경실련 "서울 공시지가 시세 반영률, 정부 발표치 절반 불과" 2020.1.30. 프레시안) 또한 경실련은 재벌소유빌딩, 상업 업무 빌딩 부지가 지난 15년간 시세를 30~40%정도만 반영하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유세를 실제보다 적게 내왔다고 주장한다.

경실련의 이러한 주장은 국세청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달 31일자로 상속, 증여세 과세형평성 제고를 위해 꼬마 빌딩 등을 대상으로 감정평가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시행 배경으로는 "비주거용 부동산은 시가 대비 저평가되어 형평성 논란이 있어왔다"는 점을 꼽았다. 상업, 업무용 빌딩, 꼬마 빌딩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급기야 국세청까지 나선 것을 보면 해당 건물들이 그간 현저히 저평가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국종 교수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아주대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접하면서 공시제도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원인과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두 사건의 공통된 원인은 조직 이기주의, 수익 지상주의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 있다.

부동산 공시는 매우 공공성이 큰 업무이기 때문에 국가의 예산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다. 그러나 공시 제도, 부동산 시장 조사 통계 등에 예산을 투입해도 일하는 집단은 일을 최대한 대충 하면서 예산만 받아먹거나,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집단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가장 이익이 된다.

공시업무는 전문적이고 어려운 분야인데다가, 산출 내역이나 근거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의 감시 대상에서도 상당히 벗어나 있다. 공시 현황을 관리 감독하는 국토교통부 담당자 서너 명이 전국의 공시가격을 제대로 살펴볼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감정원의 주요 요직은 국토부 출신 낙하산 관료들이 차지한다. 자연히 감독 기능은 유명무실하다. 감정평가사들은 무능하거나, 국토부의 지시라면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해도 열심히 쑤고 있을 사람들이 상당수다. 잡아놓은 물고기인 예산 사업은 구색 맞춰서, 민원만 없도록 적당히 하면 문제가 없다.

이국종 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소수 감정평가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며, 어디에 말을 한다한들 자기만 피곤해질 뿐이므로 곧 체념하게 된다. 공시업무에 몰두하다보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른 일을 못하게 되므로 회사에서는 눈치를 주기도 한다. 업무자가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점, 개선 방안 등이 수렴될 창구도 없고, 열심히 일할 동기도 없으니 도무지 제도 발전이 이루어질 턱이 없다.

게다가 '공시가격 현실화'는 매우 추상적이고 공공적 성격의 명제이지만, 자기 땅의 공시가격을 낮추거나 높이는 것이 이해에 직결되는 사람들의 목표는 매우 구체적이고 강력하다. 지방자치단체장,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민원을 의식하여 공시가격을 올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지자체 '표준지 공시지가 낮춰 달라' 2020. 1.14. 한국경제), 자신들 스스로가 많은 부동산을 보유한 자산가인 경우가 많다. 대기업 보유 부동산, 자산가 소유의 부동산의 경우 담당 감정평가사는 엄청난 민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부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용을 들여 전문가와 인맥, 이권을 동원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의신청과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담당 평가사나 공무원의 입장에서도 최대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이거나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공시가격을 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된다. (특급호텔, 초저가 공시지가의 비밀, 5성급 호텔 부지가 제1종주거지역이라고? 2019. 12.10. 오마이뉴스 / 삼성 에버랜드의 수상한 땅값, 2018. 3.20. SBS뉴스) 그러다보니 이의신청이 적은 가난한 동네의 공시지가 현실화율은 높아지고, 부자 동네, 재벌소유 부동산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낮아진다.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하게 복무해온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 틈바구니에서 부동산 공시제도는 꾸역꾸역 30년간 누적된 문제점을 안게 됐다. 제도의 발전은커녕, 지난 10년간 국토부를 뒷배로 관료집단처럼 되어버린 한국감정원과 무능한 감정평가사협회간의 예산 다툼, 밥그릇 싸움으로 공시 업무가 갈기갈기 찢겨 나뉘다보니 국민은 이해하기 더 어렵게 복잡해지고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감정원은 첨단과 합리와 객관을 앞세워 AI인공지능, 대량산정모형과 같은, 일반 국민은 도저히 알 수 없는 통계 모형을 동원하여 공시가격을 산정하려하고 있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통계 모형 뒤에 숨어서 산출 근거와 내역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가격을 결정한다면, 앞으로 공시가격은 예산 빼먹기 가장 손쉬운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 될 것이다.

부동산 관련 제도를 잘 알고 있는 많은 프로페셔널들이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또는 부동산에는 무지하나 불안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팔아 수익을 올린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력 또한 부동산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에서 줄타기 정책을 내놓고 있는 중이다.

반면 부동산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하여 필요한 공시 제도, 임차인 보호제도, 부동산 세제 등 여러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일은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소위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부자들의 편에서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할 때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으며, 자신에게도 가장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심각한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고가 아파트 대출 규제 등을 포함하는 12.16 대책이 발표되었고, 부동산 문제는 대한민국의 주요 해결 과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12.16 대책에서 고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단계적으로 높이겠다는 방안을 함께 발표하였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시세'라는 불분명한 분류 기준에 따라 현실화율을 달리 적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미 지금도 공시지가 현실화율에 대하여 국토부와 경실련에서는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국토부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에 따르면 공시지가가 얼마나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상업·업무용 부동산의 경우 공시지가가 시세와 현저히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는 오랜 기간 지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공시지가에 대한 불신을 국토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토지, 건물이 일체로 거래되고 이용됨을 전제로 하는 일괄 평가방식은 현재의 주택공시가격보다는 상업·업무용 부동산에 적용할 필요성이 훨씬 더 크며, 국세청까지 나서서 감정평가를 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국토부는 여태 이를 외면해왔다.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은 명확히 알 수도 없는 '시세'라는 금액 기준으로 분류하여 적용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특성에 맞는 평가 방법의 적용, 부동산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 수익 논리를 배제한 현장 전문가의 역할을 확대하되, 예산만 받아먹는 먹튀 방지를 위해 전문가간 적절한 경쟁 유지, 공시지가 산출 근거의 투명한 공개, 설명 의무 강화, 성과 평가 모형 마련,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게끔 할 독립성 확보 방안 마련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문가가 자신과 집단의 수익을 올리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존경받고 인정받으며, 사회 시스템의 기초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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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흔

2004년부터 감정평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부동산 현장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가격은 현상이지만, 가격에는 적절한 자원의 배분과 사회의 가치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소통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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