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러운 점은 한미 양국의 정부나 군부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언론은 솔레이마니가 피살된 후 약 닷새 동안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참수 작전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그러다가 김 위원장이 공개 행보에 나서자 "거침없는 행보" 운운하고 있다. 전형적인 '널뛰기'식 보도이다.
더 중요한 점도 있다. 2019년 북미 협상이 결렬되고 북한이 "새로운 전략 무기"를 언급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전망은 극히 불투명해졌다. 이에 따라 상황 변화가 없으면 참수 작전과 같은 대응책이 공공연히 거론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안정적인 억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 지도부에 불안감을 심어주려고 할수록 그 불안감이 한미 양국에도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의 '역효과'를 기억하라
2003년 봄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고 바그다드를 순식간에 점령하면서 '이라크 효과'를 자신했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라크의 지도자 후세인 동상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인 김일성 동상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핵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역효과만 불러왔다. 미국이 이라크를 파죽지세로 점령할 때,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플루토늄을 생산했다. 김정일 정권이 후세인 정권은 힘이 없어 당한 것으로 간주하고는 "핵 억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강한 믿음에 휩싸였던 것이다.
'김정은 참수 작전'이 공공연히 거론되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부터이다. 한미 군 당국은 합동군사훈련에 참수 작전도 포함되었다고 언론에 흘렸고, 미국의 전략 폭격기의 한반도 상공 출현도 잦아졌다. 박근혜 정부는 참수 작전의 일환으로 '보이지 않는 전투기' F-35 도입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3월 신형 대구경 방사포 시험사격을 현지지도하면서 "지금 적들이 '참수 작전'과 '체제붕괴'와 같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마지막 도박에 매달리고" 있다며, 핵탄두 발사 항시 준비 및 선제공격 방식으로의 전환을 명령했다. 여차하면 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안정적인 억제 관계'가 절실한 이유
이 두 가지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북한은 이라크, 리비아, 우크라이나, 시리아 등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왔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핵협정을 잘 준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협정에서 탈퇴했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란의 명백하고도 임박한 공격 위협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군 사령관을 암살했다. 이렇게 이란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을 상대로 한 도발은 중동만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란의 사례도 북한 지도부의 뇌리에 각인시켜 "핵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공산이 크다. '미치광이'를 자처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금지선'을 넘으면서 자신이 공언해왔던 한반도 비핵화의 꿈마저 더더욱 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현명해져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되면서 국내에서는 참수 작전에서부터 미국 전술핵 재배치,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재배치, 미사일 방어체제(MD) 강화 등 강경 대응책이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하나같이 자해적인 것이다. 북한의 핵공격을 억제하겠다며 취하는 조치가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수 작전만 보더라도 그렇다. 냉전 초기에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유사시 상대방의 지도자를 제거한다는 참수 작전을 강구했었다. 그러자 암호명 '죽은 자의 손(dead hand)'이 등장했다. 핵 사용 승인권자가 제거되거나 지휘통제 체계 마비로 명령권자의 생사를 알 수 없을 때, 자동적으로 핵 보복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최고 지도자의 결사 호위를 공언하고 있는 북한이 과연 예외일까?
'코리아 아마겟돈'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달성할 때까지 '안정적인 억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안정적인 억제 관계란 상호 간에 무력 침공을 억제할 수 있는 군사력은 유지하면서도 심리적인 불안감 조성은 최소화할 수 있는 관계를 일컫는다.
한국은 이미 세계 7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공군력은 북한을 압도하고 있고, 각종 미사일도 수천 개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정보 능력이 '안대'를 끼고 있는 수준이라면, 한미동맹의 정보 능력은 고성능 '망원경'을 갖고 있는 수준이다. 이미 대북 군사적 억제력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군비증강은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면서 '남북관계의 안정성'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상대방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비로소 나도 안전해질 수 있다"는 미하엘 고르바초프의 호소를 곰곰이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 누구를 위한 것 이전에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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