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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정부의 착각"

김민웅의 세상읽기 〈209〉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대외관계에 있어서 최대의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약개정 문제였습니다.

도쿠가와 바쿠후 정부가 구미 열강들과 맺었던 조약들의 불평등성 때문에 일본은 여러 가지 손해를 계속해서 보고 있었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것은 메이지 정부의 국제적 위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도 절박한 사안이었습니다.

불평등 조약은 이른바 영사재판권을 인정해서 불법을 저지른 외국인들을 일본 국내법으로 처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세도 일본의 주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개정의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의 조약을 바꾸기 위해 메이지 정부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만, 별무효과였습니다. 구미 열강들은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만, 일본의 기존법제도가 워낙 낙후해서 영사재판권을 철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구미 열강들의 입장은 자신들의 이해에 맞도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임은 분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는데, "일본의 법체계가 구미 열강의 기준에 맞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일본 대심원에 외국인 판사를 임용하는 조약도 영국과 체결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일본 내 반발로 이 시도는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사절단을 구미 각국에 파견하여 조약의 불평성을 역설하고 일본의 발전을 선전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지 근 30년이 다 되어가는 1894년, 일본의 외상 무쓰 무네미스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영국의 대외 정책적 관심을 최대한 활용하여 영국과 일본 사이에 영일 통상항해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에는 영사재판권이 철폐되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자국 내에 자신의 법체계를 주권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되었고 근대국가로서의 외교적 위상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관세의 자주권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1911년, 고무라 주타로가 미국과 체결한 미일통상조약을 통해서 비로소 해결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적극 추진해 왔던 근대국가의 비원을 대외적으로 성취했으며,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조약개정의 과정은 당시 국제정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감으로써 그 환경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는 점, 즉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러시아를 상대하려고 했기에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어려웠다는 현실도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세를 바로 자신의 요구를 해결하는 데에 근거로 삼은 일본 외교 지도자들의 능력이었습니다.

이들 일본 근대사의 지도자들이 훗날 일본 제국주의의 길을 닦은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적어도 당시 이들이 일본의 장래를 깊이 고민하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무겁게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뒤 거의 100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는 자유무역협정 FTA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영사재판권에 버금가는 각종 불평등하고 오만한 요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국기업은 미국 법에 의해 보호받게 하라, 경제관련 정책이나 법개정은 미국과 협의해서 하라, 환경과 노동 관련법도 미국과 협의하고 해라, 이런 주문사항과 직면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에 맞추어…" 운운하면서 만일 우리의 국내법 체계가 이런 식으로 바뀌어져 나갈 때 우리는 우리의 주권이 송두리째 미국의 손에서 좌지우지되는 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내부의 요구와 목표에 의한 주체적 변화가 아닌, 강대국의 요구에 맞춘 변화는 변화의 와중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미국의 요구 사항에 대해 정부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도 오리무중입니다. 이른바 관료 내지 전문가 집단들의 판단과 결정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인데, 이들 소위 전문가들과 관료들은 민족적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모습을 보인 바 없습니다.

근 1세기 전 일본이 치열한 노력 끝에 해결했던 문제를 우리는 지금에 와서 마치 당연히 수용해야 할 현실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엄청나게 낙후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외국 순방 중에 난데없이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 운운하며 교육자들을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는 세력으로 낙인찍는 집단매도의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교육시장 개방을 윽박지르는 셈입니다. 교육자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습니다. 교육자들의 권위를 이렇게 망가뜨리면서 어떻게 교육의 장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위험한 발언이자 독선적 자세입니다.

또한, 개방의 과정에서 도태되는 자들도 있지만 능력 있는 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자유무역협정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이 냉혹하고 야만적인 세계관으로 만들어지게 될 세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있는 자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대외관계도, 국내 문제도 풀어나가겠다는 이와 같은 자세는 국가주권의 자주적 입지도 팽개치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고뇌의 요구도 권력에 대한 "흔들기" 정도의 수준으로 이해하며, 약육강식을 신념으로 살아가는 강대국과 손 잡고 사회적 양극화가 극복된 나라를 만들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문화적 식민지 체제의 수용은 스크린 쿼터 축소결정 과정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장래를 위해 참으로 위태롭게만 여겨집니다.

이 나라의 이른바 지도자들은 일본 메이지 정부 당시의 인재들보다 못하다고 한다면, 우리의 자존심이 너무 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다만 자존심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국가 발전 전략에 너무도, 너무도 중차대한 타격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지금 우리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습니다.

무지한 정부는, 결국 국민들에게 가지 않아도 될 고생길을 엽니다. 그리고 그걸 성과로 착각합니다. 속히 멈추게 해야 할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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