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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발의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며

[2020년 기후는 정치다] ④

정치란 77억 개의 세상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쌍둥이도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인간은 자신이 보는 세상만을 세상이라고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이 지구상에 사람의 세상은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 인구는 현재 약 77억 5천 6백만 명이다.(https://worldometers.info.kr/kr, 2020. 1. 5.) 지구상에는 약 77억 5천 6백만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란 이런 서로 다른 수많은 세상을 조정하고 소통시키면서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는 어떤 방식이다. 왕정도 있고, 참주정, 귀족정, 대의정, 민주정도 있다.

참고로 19세기 말 한국, 중국, 일본 등 3국에서는 서구 민주정을 도입하고 번역할 당시 그냥 정치체제 가운데 하나인 민주정을 이데올로기 차원으로까지 격상시켜 민주주의라고 번역했다.(박승옥, 내가 알아야 민주주의다, 42~48쪽 참조)

이들 각각의 정치 제도는 모두 다 공히 장단점이 있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철인 정치도 말이 좋아 철학자 정치지 왕이나 절대자가 하루 아침에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역사상 부지기수이다. 젊을 때 근본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정반대 극단의 태극기 부대원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실험한 정치 체제 가운데 그래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가장 폭 넓게 확보할 수 있는 체제는 그나마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주권자가 통치자이자 피통치자가 되는 독특한 이중 정체성의 정치다. 그리고 이같은 이중 정체성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주권자들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드는 핵심 동인이다.

이미 통치 능력을 상실한 대의정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비롯한 서구 유럽과 미국의 대의정은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정치 체제이다. 선거를 통해 왕과 같은 권력자와 엘리트 귀족 특권 권력자를 뽑는 대의정에서 주권자는 결코 통치자가 될 수 없다.

주권자는 그저 관객으로서 구중 궁궐 ‘왕좌의 게임’을 관람하는 극장정치 소비자로만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대의정이란 말하자면 주권자를 거대한 극장에 가둔 암흑의 리얼리티 정치 쇼다.

한국은 물론 서구 유럽과 미국의 대의정은 이미 정치 체제로서 통치능력을 잃어버렸다. 기후위기와 극에 달한 불평등만 보아도 이는 자명하다.

미국은 상위 1,600명이 미국 전체 부의 90%를 소유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그리고 워렌 버핏 3인의 부가 중하위 1억 3천만 명의 부와 똑같다. 이 숫자는 최근 1억 2천만 명으로 줄었다. 그 까닭은 제프 베조스가 이혼으로 재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세계 억만장자 26명의 재산은 전세계 하위 인구 절반의 재산과 같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상위 10%가 전체 국민소득의 절반을 가져간다. 상위 10%의 자산은 나머지 90%의 자산 총액보다 더 많다. 하위 계층 10%는 자산보다 더 많은 부채에 허덕거리는 부채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 마디로 1997년 IMF 이후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국민은 더욱 가난해지는 지옥 속으로 떨어졌다.

지금과 같은 대의정 체제에서 이같은 불평등은 해결 불가능하다. 아니 국민을 대변한다는 한국의 여의도 대의 정치꾼들은 오히려 이같은 불평등을 법과 제도로 촉진한 공범자들이었다. 여의도 국회의원 가운데 지금도 최저임금으로 살고 있는 하위 10% 계급이 있었던가.

2016/2017 주권자들은 탄핵 촛불을 들어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정의로운 세상을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낡은 5공 체제에 살고 있고, 구체제의 기득권 금수저들은 오히려 날이면 날마다 더 부를 더 쌓아 올리고 있다.

청년들은 일을 해서 집 한 채 사는 일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하는 삼포 오포 등등의 포기가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이 말도 안되는 체제를 뒤집어 엎을 수 있을까.

한국 국민의 통치자로서의 능력

1948년 대한민국 재건 헌법을 만들 때 미군정과 친미파로 변신에 성공한 친일세력들은 정치 체제 자체를 한국 국민들이 통치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처음부터 대의정 체제를 만들었다.

당시 한반도의 남쪽 정부였던 미군정과 미국이 조선인을 자치 능력이 없는 3등 민족으로 경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즈벨트는 일찍부터 조선을 40~50년간 신탁통치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국은 최소 10년의 신탁통치를 주장했다.

소련은 이와 반대로 조선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가 협상 과정에서 최대 5년의 신탁통치안으로 합의를 해줬다.

그런데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그런 미국은 조선의 즉각 독립을 주장했고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가짜뉴스를 호외로 발간하면서까지 대서특필했다.

그 결과는 조선-동아의 친일 부역자 신분을 민족세력으로 위장하는 매우 훌륭한 신부 세탁이었고, 결국 극심한 좌우익 대립 조장과 한국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민족의 비극이었다. 물론 이런 조선-동아의 매국노 짓거리 가짜뉴스는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불행하게도 대의정과 가짜뉴스의 그런 경로의존성이 지금까지 무려 70년 이상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인민들은 이같은 대의정 체제 아래서도 주권자의 통치자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드러내면서 거의 폭발에 가까운 정치행동을 숱하게 감행해 왔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집강소 민주주의는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과부의 개가를 허용하고 공사채를 탕감하고 토지를 분배하고 탐관오리를 처단하는 등 폐정 12개조를 실행했다. 오로지 세금을 쥐어 짜내기 위해 필요도 없는 보를 만들어 과도한 수세를 징수했던 고부군수 조병갑 등 당대 조선 왕조 관료들의 가렴주구와는 근본부터 판이하게 달랐다. 주권자 인민의 통치 능력을 이보다 생생하게 입증하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해방 직후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간 뒤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전국에서 인민 스스로 조직한 좌우합작의 인민위원회 또한 주권자들의 통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였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저항공동체의 민주주의와 자치야말로 주권자의 자치와 통치 실천 능력의 전범이었다.

그리고 2016/2017년의 촛불시위는 한국 국민들의 비폭력 평화 행동을 통한 국가 통치권의 탈환 능력을 유감없이 전세계에 과시한 혁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초럼 유구한 주권자 통치권 행사의 역사를 이어받은 촛불혁명의 완수는 물론 당연히 개헌이다. 문재인대통령은 2018년 3월 현행 헌법에 따라 헌법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문대통령의 1차 개헌 노력은 국회에서 정족수 미달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무산되고 말았다.

문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개헌안의 내용과 상관없이 헌법개정의 권한이 있는 당시 국회와의 정치 협상 과정을 볼 때 애초부터 통과가 불가능했다.

촛불정부라면 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발의제 개헌 하나만이라도...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가 아니다. 삼권분립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권자가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민발의와 국민소환, 국민투표 등이다. 헌법과 법률, 국가 주요 정책과 제도에 대한 발의에서부터 투표까지 국가의 주요 의안에 대한 결정권이다.

원천권력의 주체인 주권자에게 국민발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촛불 정부의 의무이자 권한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 국민의 통치와 자치능력에 견주어 국민발의권이 없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20대 국회의 식물국회, 동물국회를 생각하면 여의도 정치인들의 통치 능력이야말로 낙제점이 아니던가.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정부는 국민발의권 원포인트 개헌을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후위기 적응과 극복의 혁명과도 같은 전환이 주권자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해진다. 그래야만 이 지옥같은 불평등이 주권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래야만 실종된 재벌개혁, 노동개혁, 관피아 척결 등의 과제가 국민 스스로의 토론과 합의와 결정을 통해 가능해진다.

어떤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감히 이같은 국민발의권을 부정하는 무식하고 용감한 짓을 벌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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