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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위폐 의혹, 미국이 '결자해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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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위폐 의혹, 미국이 '결자해지' 해야

[기고] 7일 북-미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증거'다

지난해 11월 의욕적으로 개막됐던 북핵관련 제5차 6자회담 1단계회의가 제4차 6자회담 말미에 나온 9·19 공동성명의 뜻 깊은 성과도 무색하게 표류한 지 벌써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달러 위조 및 유통 혐의와 그에 대한 보복으로 금융제재를 발동하자 북한이 반발해 지구촌 최대 현안의 하나인 북핵 협상 테이블이 텅 비게 됐고, 북·미 간 공식 접촉도 중단됐다.

그런 가운데 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북·미간 공식 접촉이 재개된다.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캐슬린 스티븐스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테러자금지원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가 대좌해 위폐 의혹과 관련된 논의를 할 예정인 것이다. 일부에선 이 접촉이 6자회담 재개의 긍정적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낙관론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은 이번 회동이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조치와 그 근거를 설명하는 '브리핑'이라는 것을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 지난 2월28일 애덤 어럴리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북한의 성명 직후 "이번 접촉에서 북한에 제재 조치를 취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겠다"며 북·미회동의 성격이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 조치와 그 근거를 북측에 설명하는 브리핑이며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톰 케이시 국무부 대변인도 6일 정례 브리핑에서 "스티븐스 부차관보를 대표로 한 국무부 관계자들과 재무부, 국가안보회의 등의 관계 전문가들이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 브리핑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사리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놓고도 사전에 의제를 한정하고 회동의 성격을 '일방적인 통보'로 규정함으로써 긍정적인 논의의 마당을 스스로 억제하는 듯한 인상이다.

북핵 6자회담의 표류까지 불러 온 북한의 달러위폐 제조 및 유통 의혹 사태의 흐름을 살펴보자. 작년 9월 하순 미 재무부는 위조달러 제조와 북한의 자금세탁을 도와준 것으로 알려진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제재를 가하는 한편, 10월 하순엔 해성무역,조선국제화학합작 등 8개 북한회사에 대해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지원 혐의로 미국내 북한 자산에 대해 동결령을 내린다.

제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를 앞두고 잇따라 터진 대북 악재는 결국 북한을 자극했고, 11월9일 개막된 1단계 회의는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기약없이 끝나버린다.

그 뒤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차관보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교체 출연을 통해 북한 위폐 제조 및 유통 문제 제기는 수위를 점점 높여가며 북·미 관계의 악화는 물론, 한미 관계까지 미묘하게 만들어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1월15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이다. 그는 "위폐 제작은 북한의 국영기업이나 기타 국영단체에 의해 조직되고 있으며, 북한 당국은 위폐 제조 동판과 (인쇄) 장비를 폐기한 뒤 물리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네가 범인이니, 스스로 증거를 털어 놓고 속죄한 후,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라!"는 주문이다.

그 뒤로도 미국은 수시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의 위폐 제조 및 유통 혐의를 기정사실화한다.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5일 위폐가 평양~대만~마카오를 잇는 '삼각 고리'를 통해 유통됐다는 미국·홍콩 등 조사당국의 주장과 수퍼노트(100달러 짜리 정교한 위폐)가 지난달에도 마카오 등지에서 유통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위폐의 주문처가 대만의 한 지하조직으로 지난10여 년간 평양의 고위관리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액수를 주문했으며, 수퍼노트는 주로 평남 평성시 평양상표인쇄소와 '62호 제조창'으로 불리는 국립조폐공장 등에서 인쇄된 것으로 추정했다. 심지어 북한의 마약 밀매와 돈세탁 등의 혐의까지 더해 북한 정부 차원이 아니면 위폐 제조와 유통을 감행할 수 없다는 정황의 사실성에 무게를 더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안타깝게도 미국의 입장과 북한의 입장을 번갈아 비호하는 듯한 묘한 줄타기를 지속해 왔다.

북한의 수퍼노트 제조 및 유통 의혹의 실체적 진실(substantial truth)은 과연 무엇인가.

첫째는 미국의 주장대로 북한이 위폐 제조와 유통을 오랫동안 적극적으로 감행했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리가 부족하다. 미국은 그동안 부단히, 아니 심심하면 북한의 (좀더 정밀하게는 북한 정부의) 위폐 제조 및 유통에 대해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해 왔지만, 가장 중요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과, 언론 보도가 전부이다.

둘째로 북한이 결백하다는 가정이다. 이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 그동안의 여러 정황 증거는 북한이 수퍼노트의 제조는 아니더라도 유통에는 연루됐을 개연성을 농후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피폐와 만성적인 경화(硬貨)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으로서는 위폐라도 상관 없이 유통시켜야 할 판이다. 2월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북한위폐 논란 관련 포럼'에선 중국에서 북한 쪽으로 달러 위폐가 많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중국에서 제조된 위폐가 북한을 거쳐 서방으로 흘러나올 수도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정황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북한 위폐 의혹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 아직까지는 '신(神)만이 알고 있다'가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현명한 것일까. 여기 '명답' 하나를 소개한다. 글레프 이바셴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의 제언이다. 7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편협대화'에서 이바셴코프 대사는 달러 위폐 제조 및 유통 의혹과 관련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 "미국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북한의 위법행위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두 가지 발언을 종합하면 미국의 북한 위폐 관련 압박은 아직까지는 실체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는 북한의 달러 위폐가 모스크바를 경유해 유통됐다는 얘기도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며 우리 정보 당국 등은 그와 관련한 실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 재차 강조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에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논리임에도 이바셴코프 대사의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 동안 북한 위폐 의혹에 대해 미국과 국내외 보수 언론들이 너무 논리 비약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마치 용의자가 전과가 있다고 해서, 험악하게 생겼다고 해서 당연히 이번 사건에도 주범일 것이니 이실직고 하고 죄값을 받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북한 정부가 위폐 제조를 주도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 그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한 후에 징치를 하든지 제재를 가하든지 해야 한다. 북·미 뉴욕 회동도 그런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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