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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의 뉴욕, '터미널'에 갇힌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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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의 뉴욕, '터미널'에 갇힌 미국

'오동진의 영화 갤러리' <10> 마이클 무어의 미국, 스필버그의 미국

UA 800기. 서울발 나리따행. 이어 나리따에서의 뉴욕행. 열몇시간의 비행 내내 세권짜리로 된 어윈 쇼의 <야망의 계절>을 읽었다. 아주 어릴 때 TV로도 보고 또 책으로도 읽었지만 다시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길래 우연히 손에 잡았다가 여행길까지 끌고 왔다. 어떤 내용은 기억이 생생했으며 어떤 장면은 새로웠다. 헤밍웨이 등과 동시대 인물이었지만 그보다는 주목을 끌지 못했던 어윈 쇼다. 하지만 글발 하난 정말 끝내 준다. 아니면 안정효의 번역이 최고던가. 내용도 TV 미니시리즈로 딱이다. 쇼의 작품 가운데는 이것보다 <젊은 사자들>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옛날에 읽은 책은 아무래도 해적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읽은 옛날 책에는 주인공인 루돌프 조르다쉬의 누나 그렌첸 조르다쉬와 그의 첫번째 애인이었던 줄리가 따로 있지 않았다. 깜박거리는 기억에 이 두 여인의 캐릭터는 줄리란 여자로 통합이 돼있었던 것 같다. 옛날엔 심지어 책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편집자가 분량 조정을 하면서 제 멋대로 인물을 죽였다 살렸다 한 것이다. 영화에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놀라운 창의력이란! 어쨌든 미국으로 가면서 가장 미국적인 소설을 들고 탔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바로 이 '어메리칸 드림'이다. 성공에 대한 미국인들의 강박증. 커지고 싶은 욕망. 그게 늘 말썽을 일으킨다.

얘기를 듣자니 내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뉴욕은 그리 덥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JFK 공항을 나서는 순간 후끈,하고 더운 열기가 코끝에 닿았다. 내가 더위를 몰고 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의 끈적끈적한 더위만큼 뉴욕도 뜨겁고 습한 것 같았다. 며칠 있지 않을 거지만 벌써부터 더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뉴욕의 더위에 앞서 그보다 먼저 노심초사했던 공항 검색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예전에 하지 않았던 지문 날인을 외국인에게라면 일일이 받는 것이 거슬렸지만 이건 나중에 국가적으로 따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검색대에서 공연히 이 문제로 실랑이를 벌여봐야 해결될 건 전혀 없을 듯 싶었다. 검색요원이 한마디 물었다. 뉴욕엔 왜 왔냐고?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고 싶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 얘기는 목구멍 안으로 꿀꺽 들어 갔다. 그리곤 어설픈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개인적인 여행이다, 딸을 보러 왔다고 했다. 아니다. 그보다는 더 아양섞인 분위기로 얘기했던 것 같다. 우리 식으로 이랬던 것 같다. 개인적인 여행이에요. 헤헤. 딸 아이 보러 왔걸랑요. 헤헤...검색요원이 내 여권에 도장을 쾅하고 찍었다. 내 여권에는 마치 이런 말이 찍혀 있을 것 같았다. not Al Qaida!

***관광상품이 되어 버린 9.11 테러**

키가 164Cm나 되버린 딸 아이를 만나니 이제 정말 품안에서 벗어났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섭섭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낯선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냥 가슴 속 한켠에서 뭉클, 이제 얘도 험난한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구나 싶었다. 그건 내가 도와 줄 수 없는 일. 잘 버티고 이겨나가려므나. 하지만 그건 모든 아빠가 갖는 노파심에 불과할 것이다. 애는 벌써 '니클 벡'이니 '데이빗 매튜 밴드'니 '크리드'니 '에버네슨스'같은 록그룹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사춘기 소녀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아이는 크고 세상은 변한다. 신이 있다면 이 아이들이 보다 성장했을 때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해서는 안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 돌아가는 폼새를 보면 절대로, 절대로 신이 있는 것 같지 않다. 혹은 신이 있다 해도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바보같은 존재일 것이다. 헤이 God! 나와서 한판 붙자구.

아이가 어디를 가고 싶냐고 했다. 이때 말을 잘해야 한다. 공연히 메트로폴리탄이니 구겐하임이니 MOMA니, 클로이스터스 성당이니 하는 비교적 고상한 장소만 읊조리면 아이로부터 당장 핀잔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솔직하기 때문에 사람 눈앞에 두고 픽픽 거린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아빠같은 사람들은 참 어쩔 수 없어!" 그래서 그 '아빠같은 사람'으로 아이에게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뉴욕 메츠 경기장이니 맨하탄의 메이시 백화점같은 곳을 얘기해야겠다고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도 말은 이렇게 나왔다.

"옛날에 쌍둥이 빌딩 있던 데가 보고 싶어."
애가 물었다. "왜?"
"그냥."
무심한듯 애가 말했다. "거기 지금 아무 것도 볼 거 없어."
"그래도..."
"그럼 작년에 오지. 작년엔 사진같은 것도 많이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거 없어?"
"엉. 지금은 정말 볼 거 없어."

아이한테는 이미 9.11이 관광의 대상이 된듯 싶었다. 아니, 이 아이한테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는 9.11이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린 그곳을 갔다. 과거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있던 곳. 이번 뉴욕 여행의 첫 방문지였다. 아이 말대로 거기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다. 예전에는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있었다. 알 카에다의 공격(난 테러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으로 빌딩이 무너졌다. 그러니 당연히 거기엔 아무 것도 없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거기에 뭐가 있기를 기대한 것일까.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었다. 그 비극과 참사에 대한 숙연한 반성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저 덩그러니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빈 공터만이 나를 맞이했을 뿐. 거기에서 회한이나 반성, 분노의 느낌을 살려내긴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너무너무 더웠다.

***마이클 무어의 미국**

마이클 무어도 그랬을 것이다. 어느 날 푹푹찌는 여름 한가운데에 이곳에 와서는 마음 한구석에서 신경질을 냈을 것이다. 짜증을 냈을 것이다. 민간 여객기를 납치해 건물에 충돌시키는 극단주의자들의 전대미문의 공격으로 건물이 붕괴하고 사람들이 죽었지만 정작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은 사건의 본질을 잊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을 것이다. 배가 나오고 항상 뿌르퉁한 마이클 무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그럼 내가 진실을 밝혀주지. 부시와 알 카에다가 얼마나 똑같은 인간인지 내가 당신들에게 얘기해 주겠어. 그걸 증명해 보이겠다고! 마이클 무어의 역작 <화씨 911>은 바로 여기서, 그런 결심을 토대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마이클 무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선동주의자라고 한다. 그나마 그것도 여기 미국에서나 들리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마이클 무어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는 모양이니까. 왜냐면 그의 전작인 <볼링 포 컬럼바인>이 극장 개봉에서 불러들인 관객 수는 정말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거야 어찌 됐든 무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를 선동주의자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의 책 '멍청한 백인들'을 한장도 들춰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그의 영화들인 <볼링 포 컬럼바인>이든 <로저와 나> 등등을 제대로 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마이클 무어의 최대 장점은 바로 확실한 '백 데이터'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비판은 미국식의 실증주의에 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점이야말로 책이든 영화든간에 그가 만드는 작품이 갖는 의미와 미덕이다. 마이클 무어가 선동주의자라고? 그가 조사해 내 밝혀낸 수많은 자료와 수치를 보면 그런 소리가 쑥 들어갈 것이다.

마이클 무어같은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평화는 멀리 있어 보인다. 멀리 있기는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으나 지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라크에서는 매일매일 수십명의 어린이와 민간인들이 미군의 공격으로 죽음을 당한다. 미국 민간인들은 민간인들 대로 목이 잘리는 잔인한 비극을 당하며 산다. 학살의 역사. 참수의 역사. 난 지금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미국**

한국에서 실컷 멀티플렉스 비판을 해대고 다녔는데 미국 뉴욕의 멀티플렉스도 매한가지 수준이었다. 스크린수가 열몇개가 되도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엔 역시나 모두 다 될만한 영화들로만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랙2> 몇 개, <해리 포터> 몇 개 식이다. 여기도 생선가게에 생선이 별로 많지 않은 것이다. 이건 한국이 미국을 닮은 건가, 아니면 혹시 미국이 한국을 벤치 마킹한 것일까. 한가지 분명한건 자본의 이윤앞에는 모두가 다 똑같다는 것, 인종도 민족도 국가의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퀸즈에 있는, 한 멀티플렉스에 갈 때까지 어떤 작품을 볼 건지 결정을 못한 상태였다. 13살된 딸아이가 야후 닷 컴으로 이리저리 검색을 하더니 성룡 주연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보자고 했다. 으..그거 별로 안땡기는데, 빈 디젤 나오는 액션영화 어때,하고 눈치를 보며 물었다. 당장 싫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어쩜 그렇게 바보 같은 영화를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아니 뭐..(쩝!) 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아니냐, 때론 그렇게 무식한 영화가 좋을 때도 있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여전했다. 그래서 일단 무조건 극장에 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성룡 영화를 볼 듯 싶었다. <해리 포터>는 아이가 이미 본 탓에 서울에 돌아가서 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극장에 가니 성룡의 영화는 불티가 나는 중이었다. 상영중인 몇 개관의 티켓은 모두 솔드 아웃돼 있었다. 성룡의 인기는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에서 더 대단한 수준이다. 특히 아이들한테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남아있는 영화를 찾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터미널> 표를 샀다. 아이가 물었다. 무슨 영화야 아빠? 내가 대답했다. 스필버그니까 SF 아닐까? 머릿속에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가물댔다.

하지만 이제 영화기자는 그만둬야 할 때인지도 모를 일이다. <터미널>은 전혀 SF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영화에 대해 사전지식이 거의 전무했는지 나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즘들어 특히, 개봉되는 영화들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터미널>은 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제 온갖 장르를 돌아 다니며 수작행진을 계속해 내고 있음을, 그래서 장인 중에 최고 장인의 경지에까지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터미널>에서 보여주는 스필버그의 의식은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르다는 데 놀랐다. 과거 <쉰들러 리스트>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마냥 약간의 ‘닭살’ 느낌은 여전하지만 이 대책없는 휴머니스트조차 지금의 미국이 처한 비인간적 상황, 부시 정권의 무지몽매함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뉴욕 극장가에는 지금, 한편에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같은 직설적인 다큐멘터리가 있는 반면 또 한편에는 스필버그의 <터미널>처럼 에둘러 가긴 해도 인간적이면서도 정치적 올바름이 있는 영화가 관객들을 휘어잡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엔 괜찮은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동유럽에 위치한 한 조그만 나라 사람이다. 그는 조국이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온다(그가 미국에 왜 왔는지는 영화 마지막 순간 밝혀지며 이 또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 눈물 흘리게 한다). 부푼 꿈을 안고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빅터. 그러나 빅터의 미국 입국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불가능하게 된다. 그의 조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령국가가 되버렸기 때문이다. 비자가 말소된 것이다. 이때부터 소동이 시작된다. 어떻게든 단 하루라도 미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빅터. 그의 입국을 저지하는 공항 터미널 책임자(스탠리 투치). 결국 그는 공항 터미널에 짐을 풀고 노숙자 아닌 노숙자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착하디 착한 천성 때문에 터미널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공항 터미널을 ‘닫힌 공간’ ‘갇혀진 공간’으로 설정한 것은 지금의 미국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은유해 내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도 미국은 지금 가장 들어가기 힘든 곳이고 또 가장 나오기가 힘든 나라이며 그 어려운 관문이 바로 JFK같은 국제 공항의 터미널이다. 더 나아가 미국 내부는 지금 잘못된 이데올로기와 편견으로 바깥 세상과 철저하게 담을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원래의 진짜 미국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혹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미국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나라인가. 아니면 전쟁광과 다국적 기업가들만이 살아가고 있는 곳인가. 스필버그는 영화속 공항 터미널처럼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색다른 경계지점으로 사람들을 도열시킨다. 그리곤 스스로들 자신의 나라의 현 모습 그 진면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라고 충고한다. 이런 충고가 있고 그 충고가 먹히는 한 미국의 진정한 가치, 흔히들 얘기하는 이 나라의 힘은 다시 한번 살아날 것이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아이와 어깨를 부딪혀 대며 낄낄댔다. 톰 행크스의 코미디 영화가 일품이었다고 아이가 말했다. 톰 행크스가 말도 안되는 러시아식 액센트의 영어를 해댈 때 사람들은 감탄과 폭소를 오가며 환호했다. 영화는 때론 배우 한명, 감독 한명이 다 만들어 낸다. 톰 행크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국의 중요한 자산이다.

메트로폴리탄과 구겐하임, 클로이스터스를 포기한 대신 이번 미국 체류때는 더 많은 걸 구경했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탄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뉴욕 메츠 경기장에 가서 메츠 대 디트로이트의 야구경기를 보면서 역시 사람들을 구경했다. 딸아이의 학급 친구인 조너던의 집에 초대를 받아 미국의 전형적인 서민층 사람들을 만나고 구경했다. 퀸즈로 자리를 옮긴(혹은 분점을 낸) 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회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구경에 구경을 하며 다녔다. 미국은 지금 과연 어떤 지경에 처해 있는지, 정작 본인들인 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들은 과연 올 연말 대선에서 다시 부시를 찍을 것인가 아니면 존 캐리를 찍을 것인가. 부시를 찍은 이 나라를 우리는 배척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껴안고 가야 할 부분을 찾아내야 할 것인가.

뉴욕으로 올 때는 어윈 쇼가 시간을 죽여 줬다. 다시 뉴욕에서 서울로 장장 17시간(나리따 경유까지 포함해서)의 비행길을 돌아 오면서는 폴 오스터가 그의 신작인 <신탁의 밤>으로 고된 시간을 달래 줬다. 폴 오스터를 생각하면 미국이 좋아진다. 이런 작가가 존재하는 한 미국은 늘 커보일 것이다. 오스터가 언젠가 얘기한 말이 생각났다. 모든 작품 속에서 매일매일 일상의 '가까움(closeness)'과 신화의 '거리(distance)'를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가까움'이 없으면 감동받기 어렵고, '거리감'이 없으면 경이로움을 느끼기 어렵다고. 만약 신 가운데 글쓰는 신이 있다면 마치 오스터처럼 생겼으리라. 글쓰기에 관한 한 그는 지금 신의 경지에 올라서고 있다. 이런 작가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 미국인들은 과연 행복해하고 있을까.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부시가 일으킨 광기의 전쟁을 지금이라도 당장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우리는 지금 미국이 싫은 것이 아니라 부시와 같은 역사적 반동세력이 미운 것이다. 마이클 무어가 있고 스필버그가 있으며 또 폴 오스터가 있는 미국과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나리따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김선일씨의 피살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와의 통화에서 한국이 또 다시 들끓고 있음이 느껴졌다. 파병을 반대할 것인가 찬성할 것인가,이라크인들의 테러를 응징해야 할 것인가 혹은 이해해야 할 것인가, 노무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옹호해야 할 것인가. 아, 돌아가면 우리 삶은 또 다시 여러가지의 선택을 요구받을 것이다. 모두들 고단한 삶이다. 나리따에서 서울까지 2시간의 짧은 비행 내내 마음이 꽤나 울적했다. 인천공항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먹구름이 비행기를 감쌌다. 장마가 곧 시작된다고 했다. 장마전선에 의한 어둡고 습한 분위기가 한국사회에서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또
다시 우울해졌다. 잠시, 김선일씨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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