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까지 거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표결 처리가 유력해진 27일 오전, 여야는 또 한 차례 정면 충돌을 예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지도부가 일제히 "오늘 처리"를 강조했고, 자유한국당은 국회 전원위원회 소집 요구를 들고 나와 맞불을 놨다.
민주당 "오늘 표결처리…선거개혁 완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 "오늘 본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표결처리할 예정"이라며 "선거법을 국회에서 합의 처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집권당 대표로서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마지막까지 제1야당과의 합의 처리를 위해 협상의 문을 열고 기다렸지만, 한국당이 논의를 거부하며 국회를 마비시켰다"며 "총선이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필리버스터를 무릅쓰고 국회 과반수 의원 합의만으로 표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바른미래당·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과의 '4+1 협의체'를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지난 23일 선거법 개정안 수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이 대표는 또 "예산 부수법안과 민생법안 통과가 시급하다"며 "200여 건에 달하는 민생법안이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인질극'으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국당을 비난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오늘은 선거개혁을 완수하는 날"이라고 못박았다. 이 원내대표는 "오후 본회의가 열리면 '지체 없이' 선거법 처리에 나서겠다. 여야 5당 합의 이후 1년을 끌어온 정치개혁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 발언 중 '지체 없이'라는 표현은 국회법 106조2의 8항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는 규정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원내대표는 "마지막 순간까지 문을 열고 기다렸지만, 한국당에서 끝내 돌아온 답은 '위성정당'뿐"이라며 "국민 대다수가 표결 처리를 늦추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선거법을 통과시키고 국민의 명령을 집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내대표는 선거법 표결처리 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상정을 예고하며 "공수처법이 상정되면 신속하게 검찰개혁 법안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검찰의 반발과 관련해 "검찰개혁 관련 법안에 대한 검찰의 발언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검찰 내부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언론을 통해 전달돼 나오고, 검찰이 검찰개혁 법안의 내용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당 "대국민사기극…전원위원회 소집 요구"
한국당은 선거법 일방 통과를 맹비난하며 국회 전원위원회 소집 요구를 예고했다가 정정하는 소동을 빚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는 '홍남기 방탄국회'로 본회의를 열지 않았지만, 오늘은 누더기 괴물 선거법을 처리하겠다며 본회의를 열겠다고 한다"면서 "대국민사기극", "의석 밥그릇 싸움", "추악한 뒷거래"라고 민주당 등 4+1 협의체를 비난했다.
심 원내대표는 이어 "국회법에 따라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구할 것"이라며 "국회의장이 전원위원회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은 교섭단체 대표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지만 한국당은 동의할 수 없다"고 새로운 공세를 예고했다. 한국당은 그간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에 대한 무더기 수정안 제출, 토론 과정에서의 시간끌기,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요구 등의 의사진행 지연 수단을 사용해 왔다.
심 원내대표가 언급한 국회 전원위원회는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참여하는 위원회로, 그 대상 안건은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거나 위원회가 제안한 의안 중 정부조직에 관한 법률안, 조세 또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률안 등 주요 의안"으로 돼 있고, 절차는 "(해당 의안의) 본회의 상정 전이나 본회의 상정 후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할 때"라고 정해져 있다. 과거 2001년 교원정년 연장안 관련 논의 때와 2003년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심의 때 전원위 소집이 추진된 적이 있고, 2003년에는 실제로 헌정사상 최초로 전원위 소집이 성사된 바 있다.
심 원내대표는 "선거법은 국민의 삶과 나라 운명에 중차대한 영향을 주는 법"이라고 근거를 주장했다. 또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 상정 후', '위원회(정개특위) 심사를 거쳐 위원회가 제안한 안건'이라는 전원위 소집 요건에도 해당되는 것도 맞다. 그러나 국회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봤을 때 문희상 국회의장이나 민주당이 전원위 개최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많다.
전원위원회 관련 사항을 규율한 국회법 하위법령 '전원위원회 운영에 관한 규칙(국회규칙133호)'의 2조 2항에는 "전원위원회 개회 요구서는 늦어도 본회의에서 당해 의안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기 전까지 제출돼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선거법 개정안은 이미 50시간 이상 무제한 토론이 진행됐기 때문에, 이 규정에 따르면 전원위 소집을 요구할 수 없다.
심 원내대표는 이같은 규정을 뒤늦게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헷갈렸다"며 "전원위원회는 선거법이 아닌 공수처법에 대한 것"이라고 회의에서의 발언을 정정했다. 심 원내대표는 "선거법은 필리버스터 토론이 다 됐기 때문에 공수처법 전원위를 검토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요 정당이 합의하지 않은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상상할 수 없는 행위"라며 "다수의 폭거로 법안이 강행 처리되면 헌법소원을 또 제기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국당은 이날 서울역 등 전국 곳곳에서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반대 취지를 알리는 대국민 선전전도 예정하고 있다.
다만 한국당의 전윈위원회 요구가 선거법이 아닌 공수처법 등 아직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법안에 대한 것이라 해도 국회법 해석상의 논란은 여전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법의 전원위원회 규정(법 63조의2)은 "국회는 (…) 전원위원회를 개회할 수 있다. 다만 의장은 주요 의안 심의 등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의 동의를 받아 전원위원회를 개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른 법문에서 "…한다", "…하여야 한다"고 규정된 것과 달리 "…할 수 있다"고 된 점은 이 규정이 강행·의무규정이 아니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국회법의 다른 조항들을 보면, 예컨대 필리버스터의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 요구서가 제출된 경우) 의장은 해당 안건에 대해 무제한토론을 실시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고, 인사청문회의 경우는 "상임위는 (…)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이 있는 경우 인사청문을 실시하기 위해 각각 인사청문회를 연다"고 의무적·당위적 규정이 돼 있다.
또한 패스트트랙 법안도 전원위원회에서의 추가 논의가 가능한지 역시 명확하지 않다. 안건의 신속처리(패스트트랙) 관련 내용을 규정한 국회법 85조의2는 "신속처리 대상 안건은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보는 날부터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되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미 토론이 끝난 선거법은 물론, 검찰개혁 관련 법안들도 이 규정에 따라 이미 본회의에 자동부의돼 있다. 특정 요건(재적 의원 3/5의 동의)을 충족한 법안은 일정 기한 내에 처리하도록 한 패스트트랙 규정의 취지에 비춰보면, 본회의 상정 후 또다시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는 것은 법문 간 충돌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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