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이번 대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대출 규제를 통해 15억 기준의 '초고가주택'은 담보대출이 불가능해졌다. 다만 현금으로 사거나 전세를 안는, 즉 갭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살 수 있다. 정작 실제로 사려는 사람은 배제된다는 불만이 제기되나, 그 정도 고급주택을 사려고 할 때도 대출을 해주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9억 원 기준의 고가주택에는 주택 가치 대비 담보인정비율(LTV)을 40%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빚내서 집 사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보유부담을 높이고자 중합부동산세 세율을 상향 조정하였다. 3주택자나 조정대상지역의 2주택자의 경우는 조금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등 보유세 부담을 강화하였다. 장기보유 특별공제에는 기존의 보유 기간 뿐만 아니라 '실제 거주했는지'를 요건으로 추가했다. 직접 살지 않을 것이면 세금을 많이 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임대차 관련해서는 "3.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에서 네 번째 하위 과제로 '임대등록 제도 보완'이 있으나, 임차인을 위한 직접적인 내용은 찾기 힘들고, 등록사업자에 대한 내용만 네 가지 항목이 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첫째, '임대등록 시 취득세, 재산세 혜택을 축소'하는 것이 있다. 기존에는 면적 기준만 적용했는데, 이제 가액기준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비싼 집은 임대사업을 해도 세제 혜택에서 제외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임대료 통제 없이 세금만 더 부과하면, '조세귀착'으로 임대료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다.
둘째, '등록 임대사업자 의무 위반사례에 대해 합동 점검'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동안은 위반사례에 대해 어떻게 조치했는지 모르겠으나,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셋째, '등록 임대사업차 책임 강화를 위해 등록을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것 역시, 진일보한 것일 수 있으나, 결국 기본 사항을 정비하는 차원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 임차인 보증금 피해 방지를 위한 사업자 의무 사항을 강화 적용하겠다는 것 역시, 내용을 보면 '보증금 미 반환 시' 등록 말소 후 세제 혜택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이 규제로 사고 예방의 효과가 나타나길 바랄 뿐이다. 이 항목 말미에 언급된 '권리관계 설명 의무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 정도가 임차인에게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것 역시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투기가 근절되면 우리는 집을 살 수 있을까?
임차인의 권리는 언제쯤 본격적으로 다뤄질까.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자가점유율은 57.7%이다. 지난 몇 년째 55%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자가'소유'율은 이보다 좀 더 높아서 61.1%이다(2017 주거실태조사). 둘의 차이인 5%는 자기 집이 있어도 전세를 내주고 남의 집에 사는 비율이라면, 임차인과 임대인의 정체성이 겹친 경우다.
본인의 노력이나 정부의 지원이 조금만 더 있으면 조만간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55%와 65% 사이의 10% 정도라고 보아도, 대략 열 명 중 네 명은 상당 기간, 혹은 열 명 중 세 명 이상은 계속해서 세입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쯤 정부는 이들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것인가? 이들이 모두 자기 집을 가지게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일까?
사실, 이른바 복지국가들의 자가점유율은 우리나라와 별로 차이가 없다. 이는, 복지국가는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세입자가 마음 편하게 사는 나라'라는 방증이다. 오히려 무리한 대출을 통해 자가보유를 장려한 부작용은 이미 2000년대 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설령 투기를 근절해서 집값이 잡힌다 한들, 대다수 청년들이, 고시원 사는 50대 1인 가구가 집을 살 수 있을까? 20억 원 하는 고급 아파트가 10억원 되고, 그래서 순차적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도 6억 원짜리 중급 아파트가 3억 원이 된다면, 매월 100만 원씩 25년을 저축해야 한다. 40%는 대출을 받는다 해도, 15년이다. 그동안은 어디에서 살까. 이들에게 급한 건 15억, 9억 원 이상 주택의 '가격 안정'이 아니라, 부담가능한 주거비(임대료)다.
이번의 강력한 조치를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보유주택이 매물로 나와 가격이 안정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런데 이는 '신규 공급'이 아니다. '투자' 목적으로 보유했던 주택 중에 빈집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이 대부분일 것이다(설령 빈집이어도 과연 수요로 연결될지도 미지수인 것은 별론으로 둔다. 빈집이 빈집이었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거주하고 있던 임차인은 어떻게 될까. 그 사람들이 전부 다 그 매물로 나올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닐 터이고, 다주택자들도 일부는 매물로 내놓지만 버티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본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다주택자 중 일부는 보유주택을 매물로 내놓기보다는, 전세가를 올려서 비싸진 세금을 벌충하려 한다. 자기 집이 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집에 전세 살면서 다른데 세를 준 사람은, 임차인으로서 오른 임대료를 다른 곳에서는 임대인으로서 올려서 벌충하려 할 것이다. 결국 임대료 상승이 확산된다.
매물로 나올 경우는 어떨까. 9억 이상의 경우 LTV가 20%이므로, 전세가가 집 가격의 80% 이상인 경우에는 대출을 받아 가능하다. 9억 이하인 경우에는 그보다는 수월할 것이다. 그래도 현 거주자가 살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매물로 나온 집은 그 집을 현 거주자가 대출을 받아 살 수 없다면, 누군가 살 여력이 되는 사람이 살 것이다. 이때 새 주인이 강화된 세제 규정에 따라 '실 거주의 세제 혜택'을 바란다면 직접 살기 위해 이사 들어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에 자기가 살던 집을 내놓으면 이 또한 매물이 되긴 하겠으나, 어쨌든 현 세입자는 나가야 한다. 퇴거한 세입자는 그 동네에서 새로운 임차 수요가 되거나, 원래 자기 집에 들어가려는 경우에는 그 집의 세입자를 퇴거시킬 것이다. 임차수요도 줄줄이 증가한다. 새 주인이 비운 옛집이 시장에 나오긴 하겠으나,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전월세가격 상승의 요인도 만만치 않다.
집값을 잡아 시장을 안정화시켜야 공공임대주택을 짓기도 쉬워지고 자기집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임차인의 처지도 나아진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얼마나 현실화될 것인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마치 '주택 필터링 효과'로 자가소유율이 늘어날 것이라는 말만큼 공허할 수도 있겠다. 주택을 많이 공급하면, '주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주거 상향 이동이 일어나서 자가 소유자가 많아질 것이라는 논리처럼 말이다. 주택 필터링 효과를 위해 공급에만 신경을 쓴 결과는? 1주택자는 줄고, 다주택자만 늘어났다. 2005년에서 2016년 사이 다주택자들은 6.6%에서 15%로 늘었다. 세입자도 따라 늘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투기가 근절되고 주택시장이 안정화되어야 공공정책의 개입 여지가 커지고 임차인 보호도 쉬워진다는 '단계론'이 강해서인지,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는 좀처럼 '강남 아파트' 가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임대 부문의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순서가 있는 문제일까? 순서가 있다면, 혹시 반대는 아닐까?
집을 가지지 않아도 임차인으로서 살기 편해지면, 굳이 이런저런 규제를 하지 않아도 구매수요는 줄어든다. 이때를 놓치면 영원히 집을 못 살까 봐, 임대인의 횡포를 피하기 위해서, 까지는 아니어도 주거 안정을 위해서 무리해서 집을 살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수요가 줄어들면, 역설적으로 자기 집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수월해진다. 충분히 가능한 논리다.
주거 사다리가 굳이 필요 없는 단일모델
케메니(Kemeny)는 임대시장의 성격을 단일 모델과 이원 모델로 구분하였다. 단일 모델(unitary model)의 개념은 임대주택이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이라 할 만큼 '하나의 부문'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영리 부문의 민간임대주택과 비영리 부문의 사회임대주택은 서로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하며, 다양한 비영리 공급자들이 활동하여 서로 구분이 모호한 단일임대시장이 형성된다.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독일 등이다 (홍인옥 외, 2011).
반면 이원 모델(dualistic model)에서의 비영리 부문은 영리 부문과 분리되어 서로 간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다양한 공급자가 있기 보다는 공공이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공임대주택 부문으로 구성된다. 결과적으로 대개 잔여화된 상대적 소수의 빈곤가구를 위한 주택으로 취급되어 사회적 낙인(social stigma)이 가해지게 된다. 주로 영미권 자유주의 국가들의 경우인데, 국가의 정책은 주로 자가소유의 촉진에 초점이 맞춰지고, 거주자들의 자가선호 경향도 높지만, 자가소유율이 쉽게 높아지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델이다.
2017년에 정부가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는 '주거 사다리 구축'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제목부터가 '사회통합형 주거 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이다. 주거격차가 있는 구조에서 '주거 상향 이동'을 도와주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다. 이원 모델에서는 꼭 필요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단일 모델에서는 굳이 주거 사다리가 필요없다. 물론 전혀 없을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격차 매우 적기 때문이다(그림1). 당장은 사다리가 필요할 순 있으나, 우리도 애초의 격차를 줄여 나갈 수는 없을까?
주거체제론적 접근
주택문제를 '주거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 및 국가의 역할' 차원에서 파악하는, 주거 체제 혹은 주택 레짐(Housing Regime)론적 접근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이러한 주거 레짐 시각의 연구들은 복지국가의 유형론(에스핑-엔더슨)을 차용하여 주거체제도 자유주의, 조합주의, 사민주의의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모델은 제도화된 복지서비스라기보다는 소외계층에 대한 잔여적 의미의 복지 서비스이며, 자가소유 위주의 주택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중모델의 국가론적 해석이다. 한국과 상당히 유사하다.
보수적 조합주의 모델은 한편으로는 잔여적이나 제도적 보장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진다. 국가를 대신해서 계층별 맞춤형 주택과 주거복지서비스를 시장이 어느 정도 해결한다는 점에서 혼합 또는 절충형이라 할 수 있으며, 프랑스나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과 일부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덴마크, 네덜란드와 같은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앞의 단일 모델과 유사하며, 주거권을 보편적 권리로 인정하고 주택의 공공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 덕분에, 주택의 탈상품화 정도는 크고 계층화의 정도는 낮다(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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