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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끝난 날 아시는 분?"

[노회찬정치학교를 가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특강 후기

"바닥이라 생각했는데 지하 1층이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존중사회와 선진복지국가를 꿈꿨던 고 노회찬 의원의 뜻을 이어가는 노회찬정치학교. 노회찬 전 의원은 생전에 '저는 그 누구도, 보수라 할지라도 전쟁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 보수가 아닙니다. 가짜지요.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더불어 사는 삶', '정치'에 이어 노회찬정치학교 세 번째 강의 영역의 주인공은 '평화와 전쟁'. 평화와 혐오, 분단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두루 거쳐 마지막에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의 평화 경제와 남북 관계' 특강이 있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제는 바닥이라 생각했는데, 지하 1층이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로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유엔총회에서 우리 정부가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가 북한과 회동하지 못한 채 귀국한 최근의 상황을 두고 한 말로 보였다. 그럼에도 김연철 장관은 불협화음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에 빗댄, '어울림의 철학'에 근거한 확신으로 강연 내내 긍정적이었다. 롤러코스터의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진전돼 갔던 남북관계에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 김연철 통일부 장관. ⓒ노회찬정치학교

"한국전쟁 끝난 날 아시는 분?"


"한국전쟁이 시작한 날은 언제인지 아시죠, 그러면 전쟁이 끝난 날을 아시는 분?"

강연 초반에 김연철 장관이 물었고, 나를 포함한 몇몇 수강생이 손을 들지 못했다. 전쟁이 시작한 날만을 기억하는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분단에 대해서 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분단 상황은 현재진행형으로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김연철 장관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가 DMZ 접경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는 것은 도시 개발과정에서 돼지농가가 접경 근처로 많이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9.19 군사분야합의서에 따라 남북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를 약속했다.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의 내용은 상호 감시초소(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남북 공동유해 발굴 등 세 가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화살머리고지의 전사자 유해를 공동발굴하기로 했던 합의는, 아직은 북측이 호응하지 않아 우리 군이 단독으로 지뢰 제거 작업과 병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1700여 점의 유해가 발굴된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 2020년 평화마을이 수립될 예정이다. 김연철 장관은 '비무장지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지대이다'는 형용 모순의 현실에서, 비무장지대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만들기 위해 더디지만 단단한 걸음을 우리 정부가 뚜벅뚜벅 걷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그 어려운 물음

김연철 장관은 '한반도 평화경제 시대'를 말하면서 평화경제의 모범 사례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 ECSC'를 꼽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은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이익을 분배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수립했다. ECSC는 지금의 유럽연합 EU의 전신이다. 유럽연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모네(Jean Monnet)가 ECSC를 기획했을 때,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두 국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절절한 공감대 때문이었다. 우리의 통일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통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된 세계관을 갖는 것이다. 김연철 장관은 "통일은 민주주의다"라는 말이 있다며, 민주주의의 가치와 제도를 통일 과정에서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통일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통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가 매우 정체되어 있습니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언젠가부터 '평화와 통일'이라는 단어보다 '남북관계와 외교'가 뉴스 헤드라인의 주를 이루었다. 친구들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본 기억이 없었다. 통일에 대한 사회적 합의, 프로세스가 되는 과정, 그리고 밑바탕을 이룰 민주주의에 대해 시민사회에 친숙하게 물밑에서 수면 위로 논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통일에 대한 이견이 점차 합의를 이루어갈 때 우리에게도 ECSC 같은 자발적 공동체가 수립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3원칙'과 '올림픽 휴전 결의안'

2019년 9월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3원칙으로 ①전쟁불용의 원칙 ②상호 간 안전보장의 원칙 ③공동번영의 원칙 등을 제시했다. 김연철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꿈꾸는 평화경제의 미래를 평화와 경제가 선순환하는, '환서해 산업'. 물류벨트+DMZ 접경지역 평화벨트+환동해 에너지·자원 벨트' 등이 결합된 아래의 그림으로 설명했다.

그는 유엔총회의 이른바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말하면서 '2018 평창-2020 도쿄-2022 북경'으로 이어지는 올림픽 개최가 한반도 문제 해결과 평화 분위기 조성에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기도 했다.

ⓒ통일부

분단이 와 닿지 않는 세대에게, 통일이 손에 잡히려면

수강생들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전쟁과 이산가족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 통일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김연철 장관은 세대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도 '통일을 어떻게 생활에서 체감하고, 손에 잡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통일은 교복이 아니다"라며, 달라진 환경을 반영해 다양한 창의적 해법을 마련하려 한다면서, 금강산의 '세 가지 공간'적 의미를 관광지구+이산가족 상봉장+사회문화 교류의 장'으로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국민을 설득하고자 고민하는 정부의 태도가 느껴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좋았다. 그런 점에서 남북이 함께 고민하는 주요 역점 사업이 관광이라는 것은 다행스럽고, 전략적이라는 생각이다.

금강산에 관광이 재개되어 이산가족 상봉장을 넘어서 남북의 사회문화 교류의 장이 되는 순간이 언젠가 올 것이다. 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기차로 횡단하는 오랜 꿈이 실현이 되는 때도 올 것이다. 2018년 6월 한국은 국제철도협력기구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남북의 철도, 도로 착공식도 작년 겨울에 이루어졌다. 잠시 중단된 지금의 남북 대화가 재개되면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더 빨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통일지향의 평화 만들기, 그 주체 형성이 필요


'평화와 전쟁' 영역의 담임을 맡아 3주 동안 함께한 한신대 이기호 교수는 김연철 장관의 강연과 학생들의 질의응답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 문제의식과 비전을 함께 함께 나누기 위해 가감 없이 옮긴다.

"통일부는 남과 북의 평화와 협력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내의 통일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도 진행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남남갈등은 향후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작은 축소판이 될 수도 있고 풀고 가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반공과 분단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분권형 통일정책 혹은 분권형 대북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통일부는 외교통상부, 국방부, 국정원 등과의 협력은 물론 정부 부처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정책을 만들어내야 통일교육, 경제교류, 문화교류 등 다양한 차원의 접근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한반도에 여전히 남아 있는 마음의 분단과 냉전체제의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종교단체, 대학 등 다양한 단위의 주체와 개인들이 다차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적극적인 통일지향의 평화 만들기의 주체들을 형성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통일의 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바와 같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는 아니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이라는 공동의 목표와 장기간의 프로세스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통일을 향한 방향은 초당적으로 공유되어야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또는 장관의 임기에 연동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긴 안목과 꾸준하고 지속적인 정책이 펼쳐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통일부는 때로는 전방에서 때로는 후방에서 통일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기본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부야말로 통일을 향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죽교가 있는 개성, 통일은 우리에게 해결책을 줄지도 모른다

최근 청년에게 가고 싶은 국내 관광지를 물은 설문에 '개성'이 상위권에 들었다. 죽음으로 충의를 지켰던 정몽주의 마지막을 아는 선죽교가 있는 개성을 '내일로'를 통해서 가볼 날은 멀지 않았을까. 김연철 장관도 강연 중에 철원의 궁예 성터와 연암 박지원의 묘 같은, 듣기만 해도 매력적인 역사 장소들을 들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과제를 떠안은 시대, 어쩌면 통일은 우리에게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회찬정치학교의 '평화와 전쟁' 영역은 강의마다 고민을 주었다. 평화란 무엇인가에 누구도 쉽게 정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연철 장관의 특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질의응답을 하면서도 평화와 통일이 각자에게 매우 다양한 관념으로,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 평화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 어렵다고 해서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노회찬의 뜻을 잇는 학교에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무엇이든 짜내면 점진적 평화에 한 발 내디딜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 2006년 11월 27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노회찬 전 의원. ⓒ노회찬정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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