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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총리' 핀란드가 부럽나요?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선거권 연령 하향 그 다음의 과제, 정당 활동 보장

2019년 12월, 핀란드에서는 사회민주당의 산나 미렐라 마린이 34세의 나이로 총리에 취임했다. 언론들은 세계 최연소 행정부 수반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기사들을 냈다. 이만큼 젊은 총리의 등장은 이례적인 일이라지만, 사실 유럽 등지에선 '젊은' 정치인들의 모습이 그렇게까지 드물진 않다. 2014년 31세의 나이로 스웨덴 교육부 장관이 된 녹색당의 구스타프 프리돌린은 19세에 국회의원이 된 경력을 갖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독일 녹색당의 안나 뤼어만 의원은 2002년에 19세의 나이로 독일 연방의회 의원이 됐다. 2018년 국제의회연맹 자료에 따르면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의 나라들의 10~20대 국회의원 비율은 10%를 넘어선다.

최근 들어 '청년 정치'가 하나의 화두가 되어서인지, 한국에서는 그런 '젊은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부럽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도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피선거권 연령 제한 기준은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등은 25세, 대통령은 40세다. 19세 국회의원이나 34세 대통령의 등장은 법으로 봉쇄되어 있다. 선거권 연령 제한 기준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18세인 데 비해 19세를 고수하고 있다. 선거권·피선거권 연령 제한 문제 등부터 개선해야 청소년·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고 '젊은 정치인'도 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십수 년 동안 청소년운동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선거권·피선거권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 왔다. 올해 10월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청소년의 참여권 확대를 위해 선거권 연령 하향을 권고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국회 본회의에는 선거권 연령 제한 기준을 19세에서 18세로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선거법 개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되어 있다. 아직 통과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 일부라도 선거권을 가지는 날이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선거권 연령 하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젊은 국회의원이 등장하거나 청소년·청년들의 정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더 중요한 과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정당 활동의 자유 보장 문제다.

유례없는 정당 가입 연령 규제


대한민국의 정당법 제22조는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발기인 및 당원의 자격을 명시하고 있다. 사실상 선거권이 없는, 현재는 19세 미만 청소년들의 당원 가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만약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18세로 완화되더라도, 정당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여전히 정당 가입이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데 꼭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어야만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정당 가입 가능 연령을 선거권 연령보다 낮추는 것을 검토하라고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들 중에서는 한국과 같이 국가가 정한 법률로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 등을 규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는 각 정당에서 자체적으로 연령 등의 당원 가입 자격 요건을 정하며, 아직 선거권을 제한당하고 있는 청소년 때부터 당원 가입이 가능한 당들이 다수다.

예를 들어, 영국의 보수당은 연령 제한이 없고, 노동당은 15세부터 가입이 가능하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14세부터, 프랑스 사회당은 15세부터다. 그리고 이러한 정당들은 '유스 조직', 즉 청소년·청년 조직을 두어 10대, 20대들이 정당 활동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스웨덴의 프리돌린은 11세에 녹색당에 가입했고 16세에 녹색당 유스 조직의 대변인을 지냈다. 독일의 안나 뤼어만도 대략 15세 무렵에 녹색당에 가입했다. 그 밖에도 10대 때부터 정당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고, 유명 정치인들 중 상당수도 10대 때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 정치인, 젊은 국회의원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정당 안에서 청소년기부터 정치 활동을 하고 당내 입지를 만들어 가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대전제이다.

청소년들이 당내 경선에 참여한다면

한국에서 청소년들에게 정치는 오랫동안 금기였다. 물론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완화하여 청소년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청소년들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인식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정당 당원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정치 활동이기 때문이다. 정당 안의 청소년 조직들이 잘 꾸려지면, 청소년 대중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입법 등에 반영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뿐더러 정당들이 청소년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도록 끌고오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만약 청소년이 당원이 되면 당의 대표를 선출 과정이나 주요 선거에서 출마할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선거일에는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하는 나이여도, 본선 후보를 결정하는 예선에는 참여하여 결과를 좌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청소년 당원들을 만나고 그들의 표를 얻기 위한 정책을 약속해야만 할 것이다. 청소년 당원들이 다른 당원들과 함께 국회의원 후보를, 시장이나 도지사 후보를,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발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건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만큼이나 혁명적인 변화일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정당 가입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에 해당하는 기본권의 문제이다.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아동에게도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와 참여권의 문제이다. "정당 가입 연령 제한을 폐지하고 정당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한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제20대 국회에서도 정당 가입 연령을 15세로 낮추는 개정안, 연령 제한을 폐지하는 개정안 등이 여럿 발의되었다. 그럼에도 국회에서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한 번도 비중 있게 논의되지 못했다.

사실 법률로 정당 가입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들의 입장에서도 문제 삼을 만하다. 누가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는지는 각 정당들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정당의 결사의 자유이자 자유로운 정당 활동의 영역이기도 하다. 국가가 불필요하게 당원의 자격에 제한을 두는 것은 정당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정당법이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 인권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인 동시에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해 온 한국의 후진적 정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청소년 정당 활동 보장이 민주주의 강화의 조건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꾸준히 '민주주의 정치가 잘되려면 정당 정치가 잘돼야 한다'라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나는 정당 정치가 잘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정당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한 필요조건은 청소년의 정당 활동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이 정당에 참여하고 정치 활동의 경험을 쌓으며 정치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어야 건강한 참여 문화가 만들어지고 세대 교체가 구조화될 수 있다. 정당들이 적극적으로 정치교육기관 역할을 하고 청소년들을 조직화해야 우리 사회의 정치의식이 높아질 수 있다.

정당 당원이 되어 활동하는 데 법률상 나이 제한은 폐지되어야 한다.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정당에 가입하고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청소년이 이 사회의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청소년 인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나아가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더욱 활기를 띠고 튼튼해지게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하여 청소년의 정당 활동을 보장하는 선거법·정당법 개혁이 하루빨리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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