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올해를 끝으로 반환점을 돈다. 지난달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이미 절반의 임기가 지났을 수도, 이제 반환점일 수도 있다. 그 사이 촛불로 표방된 정부의 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정권 지지층과 반대층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올해 정부는 대내외 악재에 둘러싸여 갈 길을 잃은 기색이 역력했다. 부동산 폭등과 저조한 경제 성적이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던 소득주도성장과 충돌해 민심 이반을 낳았다. 아울러 갈수록 활로를 잃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대적인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고, 일각에서는 더 자유주의적 개혁만이 위기 돌파의 묘책이라는 반박도 나왔다. 이 같은 갈등은 지난 10일 밤 겨우 국회를 통과한 512조2504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으로 일단 결론 지어졌다. 하지만 더 강력한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는 이른바 '퍼주기 예산' 논란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는 집권 세력의 민낯을 드러나게 했다는 평가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조국 사태는 진보 진영과 민주당 지지 층, 젊은 세대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정의당으로 대표된 주류 진보 진영은 이 사태에서 갈 길을 잃었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페미니즘 정권을 표방한 취임 시기 대통령의 목표와 달리, 정부 임기 내내 커져간 남녀 갈등은 특히 올 한해 들어 여성 연예인의 연이은 자살, 일제 성노예 피해자 문제가 야기한 한일 갈등과 이에 대한 정부 대처를 비판하는 여성계의 목소리,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의 주류 인터넷 문화 등과 맞물려 폭발하는 양상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캠페인은 특히 올해 '타다 논쟁'으로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표방한 정부는 톨게이트 노조 등의 문제에서 어떤 리더십도 보이지 못했다. 그 사이 특히 친재벌 노선으로 전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정부를 향한 노동계의 배신감이 올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구적 위기가 된 환경문제, 곧 기후위기 문제는 올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한국에서도 대규모 길거리 시위를 열어 정부를 압박했고, 미세먼지 문제는 올해도 한국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정부는 기후위기 문제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해 이 문제를 우려하는 이들의 실망을 샀다.
현 정부에 반환점 이후, 곧 남은 임기가 특히 중요한 까닭이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프레시안>은 특히 경제, 노동, 여성, 환경, 진보의 다섯 분야에 관해 각 분야 전문가와 인터뷰를 준비했다. 여태 문재인 정부의 해당 분야 정책을 어떻게 보았는지,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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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플랫폼 서비스를 위시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4차 산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부소장은 플랫폼 서비스의 경우 산업의 '혁명'이라기보다는 디지털 경제의 틀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인식이라며, 한국 사회의 4차 산업에 대한 논의가 플랫폼 산업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경계했다.
김 부소장은 4차 산업이 가져올 변화는 사회 전반에 미칠 것이지만 지금도 취약한 일자리에 먼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과 관련해 노동, 기업, 정부 등 이해관계자 간 힘 관계와 논의가 중요하다며, 전통적인 법제도나 고용관계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디지털 기업이 어떤 사회적 합의 위에서 움직이느냐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지난 16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진행한 김 부소장과의 인터뷰 전문을 정리했다.
프레시안 : 먼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올 한해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디지털 신산업 중 사람들의 입방아에 주로 오르내린 건 플랫폼 산업이다.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플랫폼 산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하면 떠오르는 건 보통 AI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플랫폼 산업을 4차 산업으로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김종진 : 4차 산업의 정의와 관련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게 독일의 산업 4.0이다. 독일이 제조업 강국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제조업 위기 논쟁이 일며 ‘어떻게 해야 제조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까’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산업 4.0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혁명을 붙이지 않았다. 거기 보면, 1차, 2차, 3차, 4차 산업이 도식화되어 있다. 산업 3.0이 컴퓨터를 활용한 것이라면, 자동화, AI, 정보통신융합(ICT), 사물인터넷 이런 걸 4차 산업으로 분류했다.
독일은 지속가능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자본, 노동 3자가 운용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이걸 산업 4.0이라고 부른다. 서비스 4.0, 제조업 4.0 하는 식의 하위 카테고리가 있는데, 노동에 대해서도 독일 노사정위원회가 노동 4.0이라는 백서를 냈다. 이게 2000년대 중반에 유럽에서 알려졌고, 세계경제사회포럼이 기술 산업, 자본의 관점에서 ‘혁명’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4차 산업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다.
혁명이라는 건 완전히 바뀌는 건데 그럼 지금의 사물인터넷이나 플랫폼이 그 정도의 변화냐. 일부 그렇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건 아니라는 게 다수 의견이다. 기존의 컴퓨터와 IT가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학계의 논의나 정책에서는 현재의 변화에 대해 디지털화, 디지털 경제라고 표현한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 내 다른 국가의 페이퍼도 지금의 기술적 변화에 대해 디지털화, 디지털 경제라는 표현을 쓴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말은 한쪽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그럼 지난 한 해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플랫폼 산업과 관련한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김종진 : 4차 산업 혹은 디지털 경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플랫폼 노동이 과잉 의제화된 면이 있는 것 같다. 플랫폼 노동에 학계나 언론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라고 본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타다', 물류 운송의 '쿠팡', 최근에는 가사 서비스의 '대리주부'까지, 서너 개 업종에서 플랫폼 업체가 공세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플랫폼 노동이 미래 일자리를 변화시키는구나'하는 노동 측면의 논의가 떠올랐다. 그런데 눈에 많이 보이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타다'나 '요기요' 같은 업체들에 대해서만 논쟁이 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만 예로 들어서 봐도 많이 차용되는 ILO의 분류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많이 이야기가 나오는 타다, 요기요, 대리주부 같은 장소 기반 플랫폼만 있는 게 아니다. 웹 기반 플랫폼도 있다. 번역이나 디자인 등 일감을 플랫폼에서 받아다 하는 거다. 여기는 프리랜서 성격이 강해서 직접고용이나 노동자성 문제가 아니라 수수료 적정성이나 결과물에 대한 수정 요구 횟수 같은 공정경쟁 룰 문제가 발생한다. 외국에서는 이런 분야에 대한 논문이 많이 나와 있다. 한국도 웹 기반 플랫폼이 출발하고 있고 더 성장할 것 같은데 조사가 많이 안 돼 있다.
"4차 산업, 취약한 일자리에 먼저 타격 줄 것"
프레시안 : 그렇다면 4차 산업에 대한 논의는 어떤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나.
김종진 : 현안을 넘어서 더 넓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노동만 보는 건 너무 가지만 보는 거다. 직무 전문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사라지거나 바뀔 수도 있는 일자리가 많다.
먼저 단순 업무를 하거나, 저임금을 받는 일자리는 자동화, 플랫폼 등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의 환전 업무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직접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해야 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미리 다 해놓고, 공항에 가서 받기만 하면 된다.
비정규직 문제도 다른 흐름으로 갈 수 있다. 지금 사내하청이나 불법파견, 시간제, 기간제 일자리도, 다는 아니더라도 꽤 많이 자동화 일자리로 갈 것 같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자동화, AI 등을 활용한 스마트 팩토리가 도입되면서 인력이 감축될 거다. 독일의 산업4.0 백서에 보면 공장 사진인데 다른 사람은 없고, 여성 노동자 한 명이 안전모를 쓰고 아이패드 하나 들고 있는 그림이 나온다. 미래의 공장이 그렇게 될 거라는 거다. 법률이나 심지어는 병원에서도 영상이나 사진 판독을 AI가 대체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누군가는 AI나 자동화 장비를 정비해야 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은 또 죽 이어질 거다.
전체 생산 인구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일자리 쇼크가 어느 정도 완화된다고 해도, 꽤 많은 일자리가 이런 식으로 바뀔 거다. 전반적인 변화를 봐야 한다.
프레시안 : 지금도 취약한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일단 눈에 들어온다.
김종진 : 취약한 일자리일수록 집단적인 교섭력이 없다. 노조를 만들지도 못하고, 협회 조직도 못한다. 간호사같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있는 직종을 보면, 간호협회가 있다. 노조도 있다. 그러니까 협회와 노조를 활용해서 국가에 정책적 개입을 할 수도 있고, 자본에 맞서며 노동권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4차 산업으로 표현되는 자동화나 디지털화되는 일자리는 그럴 권한이 거의 없거나 분산되어 있다. 이게 되게 중요한 문제다.
아직 유럽사회가 강고한 것은 노동자 혹은 이해당사자 조직이 있어서 권력 재분배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취약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을 만들어 정치의 보수화를 막고, 복지체제를 만든다.
한국사회에 노조가 없으면 누가 상한노동 주52시간제를 이야기하고, 누가 최저임금을 이야기하겠나. 노조가 있어야 최저임금위원회에 노조 대표가 들어간다. 노조가 없으면 최저임금은 자본가가 일방적으로 정하게 된다. 최저임금을 예로 들면, 실업급여, 장애인수당, 청년수당 등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43개다. 이를 자본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국가 예산에도 그만큼 영향을 미치게 된다. 4차 산업과 관련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 재구성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지난 1세기 내지 1.5세기 동안 자본이 국가와 함께 일자리 문제를 다뤄왔다면, 이제 노동이 끼어서 운용하는 모델의 중요성이 더해졌다. 그런데 이 노동의 힘이 더 약해질 것 같다.
프레시안 : 한편에서는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이야기한다.
김종진 : 기본소득도 과잉된 면이 있다고 본다. 플랫폼 노동 토론회에 와서도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이해당사자 조직이나 사회적 역학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기본소득은 너무 리버럴하다.
사회수당은 찬성한다. 필요한 경우에 한해 10~20만 원 정도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기본소득 진영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57만 원씩을 주려면 스웨덴이나 덴마크 이상의 복지 지출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3년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 하는 식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는 복지가 더 낫다고 본다. 그런 게 쌓이면 기본소득화가 될 수도 있겠다.
"디지털 기업이나 플랫폼 기업은 기존 틀 밖에서 싸운다"
프레시안 : 4차 산업과 관련한 변화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이를 둘러싼 이해당사자 간 역학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 중 4차 산업을 주도하는 주체인 기업은 어떻게 변했나.
김종진 : 전통적으로 자본의 가치사슬은 제조업 중심에 금융업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앞으로 플랫폼 기업이나 디지털 기업이 금융자본 못지않게 엄청나게 성장할 거라고 본다. 혹은 기존의 자본이 플랫폼 기업이나 디지털 기업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의 아마존 모델이나 우버 모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런 기업을 보면 우선 장치산업에 자본을 투자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나 삼성을 보면 공장을 지어야 한다. 오폐물이 나오면 환경문제도 책임져야 하고 소방 안전 관리도 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이나 디지털 기업은 사무실만 임대하면 된다. 장치산업은 필요 없고, R&D 투자를 통해 자본을 엄청나게 증식한다.
이런 자본이 어디까지 출현할지가 대단히 중요하고 이들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도 중요하다. 법 개정도 이런 자본을 염두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
프레시안 : 타다 같은 플랫폼 서비스를 보면, 아예 새로운 법 제도를 정부에 요구하기도 하는 것 같다.
김종진 : 앞으로 엄청나게 유능한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IT 기업을 만들 거다. 그들은 자신이 기존 현대차 사측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더 무섭다고 본다. 지금의 대기업은 어쨌든 기존 고용관계나 노사관계의 틀에 묶이는 면이 있다. 이 틀을 지키기 싫으니까 불법파견, 위장도급도 나타나고 노사갈등도 일어나지만 어쨌든 틀을 두고 싸운다.
그런데 우버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이나 디지털 기업은 이 틀을 벗어나는 걸 경영전략으로 생각한다. 고용관계도 필요 없고 노사관계도 필요 없다. 그래서 엄청나게 위험하다. 이들은 '우리는 기존 기업처럼 노조 파괴하지 않아요'라고 하는데 사실 틀이라는 게 없거나 아예 벗어나 있으려고 하니까 파괴할 게 없다.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지금 타다에 대해 논쟁하지만 6개월 후에는 아마 또 다른 모델이 나올 거다.
최근에 대리주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휴게시간 등에 대한 근기법 예외 적용을 요청해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 않았나. 이런 건 빙산의 일각일 거다.
프레시안 : 디지털 기업이나 플랫폼 기업의 기업관이나 노동관에서 또 전통적 자본과 구별되는 점이 있나.
김종진 : 기업 유지를 중시하지 않는다. 배달의 민족이 4조 원에 팔렸다. 너무 잽싸다. 지금 디지털이나 플랫폼 분야에 진출한 CEO나 임원들은 사업을 엄청나게 키워서 브랜드화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여서 투자 유치를 받고 주식을 매각하고 또 다른 걸 만드는 걸 생각한다. 기존의 1세대, 2세대 기업가들은 그래도 기업을 물려주려고 하는 생각이 강했다면, 디지털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거기에서 고용관계라는 건 소모품처럼 생각되기 쉽다. 옛날 회장들 보면 노조 탄압하면서도 어디 가서는 '우리 직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 디지털이나 플랫폼 기업은 '우리 직원'이라는 말을 안 쓴다. 이런 점 때문에도 일터에서의 안전할 권리나 헌법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한 일자리가 늘어나게 될 거다.
프레시안 : 혁신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기업가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종진 :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2세기 전 마차와 자동차의 싸움에서 자동차 산업을 규제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기술 발전을 막아야 한다는 사람은 없다. 기술이 발전해서 이용자에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는 다 동의한다. 지금 스마트폰 쓰지 말자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생산하고 일에 참여한 사람에게 공정한 분배와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사회는 기업 혼자 운영하는 게 아니다. 세금을 내는 시민이 있고, 시민의 핵심 주체 중 하나는 노동자다. 배달의 민족이 매각 과정에서 이익으로 남긴 4500억 원은 대표 혼자 잘 해서 번 건 아니다. 노동자들이 헌신한 몫도 있다.
앞으로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디지털 기업, 플랫폼 기업들이 어떤 사회적 합의 틀에 동의하느냐에 따라 한국사회가 대단히 변할 것이라고 본다.
"노동, 기업, 자본의 4차 산업과 관련한 3자 논의 필요하다"
프레시안 : 기업의 상대방은 일차적으로는 노동이다. 앞서 노동의 힘이 약해질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김종진 : 노동조합 조직률이 촛불 이후 12%까지 올라왔다고 하고 민주노총도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조직의 다수는 87년 민주화 때 형성됐다. 현대자동차 평균 연령이 56세 정도 된다. 공공기관도 52~3세 정도다. 정년을 60살로 보면, 딱 8년에서 10년 정도 더 유지된다는 거다.
지금 주력을 이루는 조합원이 나가고, 그 자리는 자동화되거나 비정규직 뽑고 노조가 싫어서 가입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식이면 10년 뒤에는 조직률이 한 자릿수나 5% 미만으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기업 중심으로 가게 될 거다.
프레시안 : 전통적인 고용관계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한국의 노사관계가 기업별로 짜여있어 그들을 포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문제가 될 것 같다.
김종진 : 문제가 된다. 과거에는 기업별 교섭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노동조합 운동 차원에서 초기업별 노조가 논의됐다면, 지금은 변화하는 외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초기업별 노조로 가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도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개별 노사관계에 정부가 왜 개입하느냐고 했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산업 전반 문제다. 독일에서 산업 4.0과 노동 4.0이 같이 가는 것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노사관계를 고민하기 위한 면이 있다. 노사 2자 관계가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노사관계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내용적으로는 업종별로 최소 고용 유지 기간을 설정하거나 자동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노사가 산업별로 고용재창출 기금 같은 걸 만들어야 할 것 같다. 10년 뒤에 공장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하면 그때 파국으로 가지 말고 산업적 차원에서 대비를 해야 한다. 이런 걸 실현하는 게 정부 정책으로도 중요하다고 본다.
"정부의 4차 산업 대응, 노동이 빠졌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김종진 : 한국에서는 노동을 중요하게 다루는 독일의 산업 4.0 모델에 대해 진보적 학계 중심으로 논의가 돼왔다. 문재인 정부는 아무래도 친 노동자적 학자를 기용하는 면이 있어서 고용노동부 중심으로 독일 모델이 논의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경제사회포럼을 중심으로 자본이나 기술 산업 관점에서 4차 산업을 다룬 논의도 반영이 되어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정부와는 별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위원회는 완전히 기술산업 중심이다.
프레시안 :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보면, 산업적 변화는 전반적으로 다뤘고 복지에 대한 내용도 다소 포함되어 있는데 노동은 카테고리가 없다. 4차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신기술과 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저해되지 않는다고 하면, 기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게 한 규제샌드박스도 시행 중이다. 이런 대책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김종진 :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 입안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이해당사자의 핵심인 노동자 의견이 반영되기 보다는 기업 의견이 주로 반영됐다. 독일이 산업4.0을 만들 때 노동4.0을 동시에 추진한 것과 달리 우리는 기술 산업 위주로 정부 정책을 내놨다.
규제샌드박스도 기업만 생각해서 시행할 정책은 아니다. 기업에 대한 규제는 기업 운영의 편리성만이 아니라, 나머지 사회구성원의 위치에서도 판단돼야 한다. 특히 생명안전이나 위함요인이 큰 것은 사회적 공동의 규제 속에서 발전돼야 한다.
전반적으로 4차 산업과 관련한 법률과 정책을 기업만이 아니라 다른 이해당사자도 참여하는 구도 속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내용적으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나.
김종진 :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다음 일자리를 찾는 전환기회를 줘야 한다. 직업 전환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비슷한 종류의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러면 의미가 없다. 6개월이든 1년이든 준비해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찾을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러려면 유럽처럼 1, 2년 이상 충분한 실업급여를 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업급여 수급 기간이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기간이 짧고, 급여액도 최저임금 수준이다. 직업을 찾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할 수 없다. 재취업을 위한 교육,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새로운 고용관계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도 대비해야 한다. 1953년에 제정된 근기법과 노조법은 70년이 지나며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본다. 근기법상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기존의 고용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사회안전망 체계를 바꿀 필요도 있다. 고용관계에서 발생하는 임금이 아니라 소득에 비례해서 투명하게 세금을 매기고, 그에 따라 실업급여를 주는 방식 같은 걸 고민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비정규직이든 프리랜서든 동일가치노동에 대해서는 같은 임금, 복지제도, 사회보험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게 향후 100년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법 체계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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