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사회가 제 아들을 살려내고 조교사 보직을 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는 기수 생활을 하면서 부당한 지시에 따르기 힘들어 정말 훌륭한 조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어렵게 노력해서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그 후 자비로 해외 연수를 다니며 마방을 받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빽 있고, 뒤로 거래가 있는 사람에게 밀리며 어려움을 토로해왔습니다. 그러면 저희도 답답한 마음에 '너도 그런 방법을 쓰면 안 되겠냐'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중원이는 '그렇게 해서 마방을 받으면 언젠가는 다 소문이 날 겁니다.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정당당하게 기다리면 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또 '자리가 하나 있는데, 경마처장과 아는 사람에게 부여돼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내년 6월에도 자리가 나는데 그것도 배정받기로 약속받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중원이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목숨을 던져서 이런 일을 바로 잡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부정 경마와 마사회의 불공정한 마방 배정 시스템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11월 29일 부산남경마공원 기숙사에서 세상을 떠난 고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 씨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13일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도 재발 방지 대책 마련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족들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문 기수의 유족과 공공운수노조가 11일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부산경남, 제주 경마공원 기수 75명(전체 기수 125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와 마사회 제도 개선 요구안을 발표했다.
갑을구조 때문에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기수들
문 기수는 유서에서 조교사와 기수의 갑을구조 때문에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조교사는 마주와 마필위탁계약을 맺고, 기수, 마필관리사, 말을 관리감독하는 직책이다. 일반적인 운동경기의 감독이라고 보면 된다. 조교사는 면허를 취득한 뒤 마사회의 마사대부 심사위원회를 통해 마방을 배정받아야 실질적인 조교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문 기수는 "일부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며 "이런 부당한 지시가 싫어서 마음대로 타버리면 다음엔 말도 안 태워주고, 어떤 말을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 걸고 타야만 했고 비가 오던 태풍이 불던 안개가 가득찬 날에도 말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고 썼다.
공공운수노조의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이 같은 내용이 확인된다.
기수 중 58.57%가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지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의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말라"고 한다거나, "다리가 안 좋은 말을 출전시킨다"고 답했다. "다리가 안 좋은 말을 출전시킬 때는 관객이 모르게 (달리기가 아닌) 평보 또는 구보로 출두를 지시한다"는 답변도 있었다. "말을 죽을 만큼 패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기수도 있었다.
기수 중 60.3%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답했다.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로는 기수의 85%가 "말을 탈 기회가 축소되거나 박탈된다"고 답했다. 부당한 지시에 대해 기수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문항에는 71.22%가 "어쩔 수 없이 그냥 탄다"고 답했다.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부실장은 "경마에 돈을 거는 사람은 모르는 상황에서 조교사가 부당한 지시를 한다면 부정경마로 연결되는 엄중한 일"이라며 "기수들은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조교사와 기수 간 갑을구조는 계약서 작성에서도 드러났다. 조교사와 기수는 원래 기승계약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기수 중 41.4%가 "기승계약서를 보지 못했고, 서명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문 기수가 일하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이렇게 답한 비율이 56.3%로 서울(34.6)이%나 제주(35.7%)에 비해 높았다. "기승계약서에 불합리한 조건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부산에서 86.67%로 서울(22.75%)이나 제주(50%)에 비해 높았다.
기수들 "마사회가 기수, 조교사, 마방 운영을 모두 통제하고 있다"
문 기수는 유서에서 '마사회 고위직의 개입으로 마방이 불공정하게 배정됐다'고 적기도 했다. 문 기수는 "지난번에 OOO처장과 친분이 있는 OO이가 좀더 친한 다른 사람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마방을 못 받아서 이번에 주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한 사람이 조교사 면허를 딱 받아서 와버렸네. 처장과 아주 친하신 분이"라며 "내가 좀 아는 마사회 직원들은 대놓고 나한테 말한다. 마방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고"라고 썼다.
이에 대해 마사회는 "조교사는 말 관리사의 노무 경영 등을 총괄하는 개인사업자로서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심사위원회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교사는 자율권을 가진 개인사업자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조교사 선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기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마사회가 기수, 조교사, 마방 운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10점 척도 질문에 90.1%가 8점 이상을 매겼다.
마사회가 기수를 통제하는 방식을 묻는 문항에는 76%가 기수 면허 유지권, 50.7%가 조교사 면허 취득권, 34.7%가 마방 배정 심사권이라고 답했다. 기수 면허, 조교사 면허, 마방 배정에 이르기까지 마사회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공공운수노조는 "마방을 배정하는 업무를 하는 마사대부 심사위원회 명단이나 회의록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내 아들 중원이의 한을 풀어주는 일"
공공운수노조는 위와 같은 기수 실태조사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 요구안을 발표했다.
조교사와 기수 간 갑을구조와 관련해서는 기승계약서 개선 및 현재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기수 면허갱신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조교사 협회와 기수 간에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마방 배정과 관련해서는 마사대부 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명단 공개, 심사위 회의록의 투명한 공개 등을 요구했다. 또, 조교사 면허 취득 순번에 따라 마방 대부를 배정하도록 하는 안도 제안했다.
이외에도 공공운수노조는 △ 기수의 적정 생계비 보장 △ 기수의 근골격계 치료 방안 마련 △ 마사회가 고용하던 조교사를 개인사업자로 두고, 하위 성과자를 퇴출시키는 등 무한경쟁 체제를 만들어 말과 사람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선진 경마 폐기 등을 요구했다.
문 기수의 아버지인 문군옥 씨는 "저희는 온 가족이 모든 생활을 다 접고 싸늘히 누워있는 아이와 생활하고 있다"며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이 아이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사회의 답을 받기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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