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이뤄진 국회 정상화 합의안 수용 여부를 놓고 의원총회를 열어 논의한 결과 '조건부·부분적 추인'이라는 어정쩡한 답을 내놨다. 내년도 예산안 합의 처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필리버스터 철회 등 한국당이 양보해야 할 합의 내용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심재철 신임 한국당 원내대표는 9일 오후 의원총회 결과 브리핑에서 "예산안이 합의처리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합의 작성을 했던 것"이라며 "예산안이 합의되면 다른 모든 것들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는 "(예산) 합의가 제대로 될지 안 될지는 (예결위) 간사에게 얘기를 좀더 들어보겠다"면서 "예산안이 (합의가) 잘 안 될 경우는 그때 가서 다시 판단하겠다"고 했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합의안) 내용 자체가 예산안 합의 처리라는 전제 조건이 있는 것"이라며 "저희가 11월 30일 (예산 심의 중단 시점) 이후 내용을 몰라서 간사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른바 '4+1' 체계에서 어떤 일을 해놨는지 우리가 먼저 파악하고 우리가 예산안을 합의처리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그 다음 단계를 말할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앞서 심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날 정오부터 1시간 30분간 협상을 하고 5개항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합의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예산안 심사는 오늘 당장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예결위 간사가 참여해 논의한다. 예산안은 12월 10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
2. 한국당은 지난 11월 29일 상정된 본회의 안건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신청을 의원총회 동의를 거쳐 철회한다.
3. 위의 2가지 합의가 선행된다면, 국회의장은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돼 본회의에 부의된 공직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사법개혁 법안을 정기국회에 상정하지 않는다.
4. 내일 본회의는 10시에 개의해 밀린 비쟁점 법안을 처리한다.
5. 법사위를 열어 데이터 3법 등 계류 법안을 처리한다."
한국당 의원총회는 이 내용을 놓고 이날 오후 4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토의를 벌였다. 의원총회장의 의원들 자리마다에는 이 합의안을 출력한 종이가 배부돼 있었다. 그러나 결국 합의안의 '1번' 항목에 대해서만 부분적 추인이 이뤄졌다. '2번'인 '필리버스터 철회'는 예산안 합의 성사 여부를 살펴본 뒤에 다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당 의총장 안에서는 격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의총 중에 먼저 자리를 뜨며 기자들과 만나 "(의원들에게) 내용이 수용이 잘 안 된다"고 언급했고, 다른 의총 참석자도 "한 분씩 다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 원내대표도 '필리버스터 철회 반대 의견도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반발 의견도 있었고 찬성 의견도 있었다"며 사실상 인정했다.
만약 한국당과 민주당 등 다른 정당이 다음날 본회의 전까지 예산안 합의에 도달한다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신청을 철회하고 정기국회 중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다는 3당 교섭단체 간 합의문이 이행되는 수순으로 가겠지만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회는 다시 파행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심 원내대표와 김 정책위의장은 '내일 오전까지 예산안 합의에 도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큰 전략이 "시간 끌기로 개혁을 무산시키려는 것"(이정미 정의당 의원, 9일 결의대회)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예산안과 법안 상정 시점이 당초 '4+1'이 추진했던 '9일 오후 2시'에서 '10일 오전 10시'로, 또 3당 교섭단체 합의안에 따른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철회도 '예산안 합의 이후'로 하루씩 미뤄지는 것을 보면 "한국당 최고의 전략가"(심 원내대표, 이날 원내대표 선거 정견발표)인 김재원 의장의 '전략'이 발동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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