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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도 좋은 날이 있다"

김민웅의 세상읽기 〈208〉

겨울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지만 봄이 계절의 문턱을 넘어선 것은 분명한 듯 합니다. 자신의 시간은 끝나가지만 그래도 잊지는 말아달라고 이따금 겨울이 자기존재 확인을 위해 시샘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아마 그 자신도 이미 대세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건 도리어 애교스럽기조차 합니다. 난데없이 맹렬한 혹한(酷寒)이 몰아쳐도 봄을 막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겨울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지를 미리 알고 있기에 우리는 바람이 거칠게 불어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건 잠시 일어나는 일일 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임을 충실히 마치고 돌아가는 계절의 뒷모습은 우아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그 계절이 다시 우리를 낯익은 표정으로 방문할 것을 압니다. 같은 모습인 것 같으나 사실은 다른 모습이기에 매번 그 방문은 신선합니다.

강물도 풀리고 들판에도 새들이 더욱 힘차게 날아다닙니다. 아침에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유난히 생기가 넘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천지에 스며드는 기운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겨울이 추위를 견디면서 내면을 다져나가는 때였다면, 봄은 그 내면에 깃든 생명의 힘을 밖으로 뿜어낼 준비를 하는 때입니다. 겨울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이는 그래서 봄이 자칫 허탈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즈음에 기지개를 펴는 곡절은 털 것은 털고 드러낼 것은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셈입니다. 겨울에 필요했던 것이 봄에는 소용이 없게 되고 봄에 필요했던 것은 여름이 오면 무용지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걸 모르면 우리는 성장의 법칙과 충돌하게 됩니다.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지키려 들면 스스로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아버립니다. 그걸 가려보는 눈이 봄에는 있어야 합니다.

씨앗을 감싸고 있던 껍질은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물기를 머금기 전까지는 필요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면, 그 안의 생명은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땅위로 줄기를 뻗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 겁니다.

그러나 그 껍질도 섣불리 또는 난폭하게 해체해버리면 씨앗의 생명을 죽여 버릴 수 있습니다. 성장의 욕망이 앞선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봄은 '부드러운 힘'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얼었던 땅을 헤집고 뻗어가는 뿌리는 그 자체로 볼 때 그야말로 연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뚫고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흙과 뿌리가 생명력 있게 만나는 방식입니다.

마음의 벽을 뚫는 것도 이 부드러운 힘의 능력입니다. 굳어 있던 마음을 어루만져 생명을 피워내는 것은 결코 우격다짐이 아닙니다. 우격다짐은 벽을 더욱 두껍게 할 뿐입니다.

겨우내 슬픔이 고여 있던 영혼이나 쓸쓸함으로 자신을 자기도 모르게 학대했던 시간들을 보냈던 사람들, 또는 깊은 낙심으로 절망의 감옥에 갇혀 수형(受刑) 생활을 했던 이들 모두 봄의 들판으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 계절의 초대가, 자신을 꽁꽁 움추리고 있으면 그나마 지켜진다고 여겼던 착각에서 해방시키는 시작이 될 겁니다.

바람이 불어도 좋은 날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생명은 부드러운 미소에서 태어난다고 하는 것, 그걸 온 몸에 익히는 기쁨이 출렁이는 계절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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