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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소녀는 어떻게 성매매 범죄자가 되었는가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③ 성인남성들만 사는 나라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처벌이 관대한 이유는?

지난 10월 미국 법무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아동 성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사이트 운영자인 한국인 손 모 씨에 대한 기소장을 공개했다. 손 씨는 지난해 3월 한국 경찰에 체포돼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이 사건으로 손 씨와 이용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손 씨는 1심 재판에서는 나이가 어리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으며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뒤에는 결혼도 했다. 검사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재판부는 손 씨의 죄가 무겁다며 집행유예 없이 실형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였으나, 결혼해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는 점을 참작사유로 삼았다.

그렇다면, 해당 사이트 이용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일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용자도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심지어 공중보건의인 한 이용자는 9세 아동 성착취 영상물 등 33개를 다운받아 소지하고 있었는데도 형사처벌되면 취업이 제한된다는 이유로 벌금형마저 선고 유예됐다. 이 정도면 처벌이 아니고 가히 대접(?)이라고 할 만하다. 명백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이처럼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5세 소녀는 어떻게 성매매 범죄자가 되었는가


나는 국선보조인으로 성매매 혐의로 소년보호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아이들을 변호했다. 그때마다 의문을 품었던 것은 아동복지의 관점에서 보호받아야 할 위기의 아이들이 왜 성매매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재판까지 받는가 하는 점이었다. 가출로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은 쉽게 아르바이트(알바)를 구할 수도 없고, 알바를 구해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처럼 춥고 배고프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성매매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어린 여자아이들을 찾는 성인남성의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여자아이가 있다. 남자친구가 사실상 포주 노릇을 하며 여자아이에게 성매매를 시켰다. 나중에 딸을 찾은 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고, 여자아이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던 성인남성들이 검거됐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남성들만 성구매자로 조사받은 게 아니라, 여자아이 역시 성매매 혐의가 인정된다며 소년보호사건의 재판을 받게 됐다. 그것도 소년분류심사원에 구금된 채.

엄마는 15세 딸 아이가 성인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해 신고했는데, 아이마저 졸지에 성매매 범죄자가 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성을 구매한 성인남성들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혹은 간단한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고 멀쩡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작 여자아이는 성매매 범죄자로 구금되었다. 여자아이를 접견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빠 또래의 아저씨들 중 단 한 명도 여자아이의 나이를 물은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성매매 신고를 하겠다고 위협하며 돈을 주지 않거나 계속 만나 줄 것을 요구했다. 여자아이를 변호해주겠다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이가 왠지 나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른들의 바닥을 본 아이를 내가 무슨 자격으로 변호할 수 있단 말인가.

15세로 나이가 같은 또 다른 여자아이도 있다. 가출한 아이들의 공동체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아이들이 생활비와 유흥비 명목으로 아이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채팅으로 성인남성과의 성매매를 알선하고, 성매매 대금을 착취하는 방식이었다. 남자아이들의 포주 노릇은 어른들에게 전수받은 듯 똑같았다. 여자아이는 처음에는 같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게 좋았고, 자신이 돈을 벌어 그들과 생활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아이는 외출마저 감시당하는 생활이 계속되자 무리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성구매자인 성인남성에게 사정을 말하고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도와주지 않았다. 다행히 한 성인남성이 도와줘 여자아이는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제로 성매매에 동원된 여자아이는 끝내 소년분류심사원에 구금되었다. 여자아이가 경찰에 진술한 성매매 사실 중 일부에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대체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매매를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인위적인 구분 때문에 피해자로 보호받아야 할 위기의 아이들이 구금되고, 처벌되고 있다. 의지할 어른도, 의지하고 싶은 어른도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성 구매자들인 성인남성들은 이처럼 취약한 여자아이들의 상태를 이용해 임신이나 성병 감염과 같은 모든 위험을 이들에게 전가한다. 그런데도 자발적인 성매매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들은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아이들은 처벌될까 두려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성구매자인 성인남성은 잠시 '쪽'팔리고 말면 그만. 심지어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들에게는 하나의 무용담이자 자랑거리가 된다. 얼마나 어린 여자아이와 했는지.

남성에게 유리할 때만 보장되는 아이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이하 '아청법')은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미성년자)을 자발적인 경우와 비자발적인 경우로 나눈다. 자발적인 경우에는 성매매 피해 아동 청소년이 아닌 '대상 아동 청소년'이라 칭하며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발적인 경우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성매매를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보호처분은 비록 형사처벌은 아니지만 형법의 대체에 불과하기에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똑같다.

이에 반해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 성착취의 형태로 성매매를 명확히 열거하고 있고, '아동 성매매'라는 용어 대신 '성매매 상황에 있는 아동 성착취'라는 용어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매매에 동원된 아동은 아동의 합의나 동의 여부를 떠나 성매수 범죄의 피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서 13세 이상 아동이 성행위에 동의할 수 있다고 취급되어 성 착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간주된 아이들은 범죄자로 취급되고 보호처분에 의해 구금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신고를 못 하는 것은 물론 법률적 조력, 성폭력 피해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성매매 아동청소년의 지위를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로 분류할 것을 촉구했다.

'탁틴내일' 등 시민사회단체는 성매매 범죄의 대상이 된 미성년자들을 '피해 아동'으로 보호하라며 '대상아동 청소년 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했고(국가인권위원회도 법 개정을 권하고 있음), 현재 개정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궁박한 상태를 이용'당했음을 입증한 아동과 청소년만 피해아동으로 보겠다는 입장이다.

아동과 청소년이라는 것 외에 무엇을 더 입증해야 궁박한 상태가 입증이 될까. 50대 이상의 성인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국회 역시 너무나 예상 가능하게도 '대상 아동청소년'을 '피해 아동'으로 바꾸는 법 개정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아니, 반대하고 있다.

2017년 대법원은 15세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어 임신에 출산까지 하게 한 49세 기획사 대표에게 무죄를 판결해 크게 논란이 됐다. 법원은 아이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성관계에 동의하였고 두 사람이 연인 사이였다는 가해 남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미성년자는 미성숙하여 어른이 보호·양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왜 성인남성과의 성적인 문제로 얽히면, 남녀 간의 사랑에 따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둔갑하는가.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35세 남자가 채팅으로 만난 10세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술을 먹이고 양손으로 누르고 강간한 사건에 대해 항거불능의 폭행이 없었다며, 13세 미만 의제강간제로 3년형을 선고했다. 강간의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의제강간죄가 없었다면,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2심 재판부는 채팅으로 남자를 만난 10세 여자아이의 행실에 대한 편견에 기반해 재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35세 성인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10세 여자아이에게 술을 먹이고 양손으로 누른 폭력을 항거 가능한 폭력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겨우 10세 여자아이라도 성인남성과의 성적 대결에서는 '아동'은 사라지고 '여자'만 남는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은 어느새 성적 자기결정권, 즉 '자발'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아이들을 공격한다. 성인남성의 성범죄에 대해 법과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성인 남성의 성범죄 대상이 성인 여성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피해자가 아동이라고 해도 처벌의 관대함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 아동은 사라지고 여성만 남는다. 조두순 급의 극악한 폭력을 동반하거나, 아동이 아주 어리거나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남성의 성욕은 마땅히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을 참지 못하게 한 책임은 피해자인 여성이 진다. 심지어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에도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라는 이름으로 '유혹'과 '행실'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아이들도 피할 수 없는 '남성'이라는 이름의 권력

앞서 예로 든 '웰컴 투 비디오 사건'처럼 아동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대부분은 남성이다. 성매수자도 대부분 남성이다. 강간 등의 성폭력 범죄자도 대부분 남성이다.(2018년 경찰청이 발표한 성범죄 통계치를 보면, 유사강간 포함 강간 범죄의 절대다수인 98%가 남성이고, 피해자의 97.8%는 여성이다.)

성범죄 처벌법을 만드는 국회도, 수사기관도, 법원도 대부분 남성이 주도하고 있다. 일부 여성이 있다고 해도 남성들이 다져놓은 선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은 가장 혹은 가장이 되어야 할 남성들의 성범죄를 '일탈 행위'로 치부하고 우대 조치한다. 불법 영상을 촬영한 남자들이 교사 및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처벌이 감경(벌금형에 심지어 기소유예) 혹은 면제되는 것을 보라. '웰컴 투 비디오' 사건에서 손 씨에 대한 양형 참작사유도 결혼하여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법원이 성범죄자들의 취업을 금지시킨 직업군에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오히려 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가장의 성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보다 그의 가족 부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장이 되고 사회를 이끌어 나갈 남성들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딸을 유린한 경우에도 그 딸을 양육하라면서 석방해주기도 한다. 가장의 책임이란, 가장이 되어야 할 성인남자가 짊어진 책임이란, 이렇게 무거운 것이어서 웬만한 성폭력은 성폭력이 아니고, 성폭력이라고 해도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책임만 지운다.

남성들이어, 제발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동의했다거나 사랑했다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사랑한다면 아직은 어린 그들이 건강하게 무사히 성인으로 성장하게 지켜보아라.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라. 또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했다는 이유로 자발적이라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성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묻지 말라. '남성'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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