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루(Duoro). 북스페인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포르투갈 북부를 가로질러 대서양에 이르는 길이 897킬로미터의 강이다. 이 지역 출신인 20세기 최고의 포르투갈 시인 미겔 토르가(Miguel Torga)는 도우루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우루 계곡을 이처럼 노래했다. 북포르투갈의 핵심인 도우루 지역은 리스본으로 북동쪽으로 450킬로미터 정도 떨어졌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400킬로미터)보다 조금 더 먼 거리이다.
이 지역은 특히 포르투갈 와인의 주요 생산지다. 그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이 2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했다는 점에 주목해 유네스코는 2001년 오랜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노력으로 독특한 경작시스템을 구축한 것을 높이 평가해 이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런 만큼 도우루 지역은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리스본이나 포르토에서 도우루 지역 와인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나는 다른 길을 택했다. 나는 스페인 북부도시 살라만카(Salamanca)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살라만카대학을 돌아본 뒤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살라만카에서 포르투갈까지는 130킬로미터다.
'포르투갈 82킬로미터'. 얼마를 달렸을 때 안내판이 나타났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 11킬로미터'. 한참을 달리자 안내판이 다시 나타났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은 유럽연합으로 국경이 사라지고 도로 위에 가건물 같은 것을 지어서 그 밑으로 차들이 지나가도록 만든 것이 유일한 국경 표시였다. 그래도 국경이라니 차에서 내려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로밍을 해왔지만 스페인은 대도시가 아니면 거의 로밍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포르투갈에 들어가자 로밍이 펑펑 터졌다. 국경을 지나 조금 달리다가 도우루 계곡을 향해 우회전해서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황무지가 많은 스페인보다는 나무도 많고 비옥하고 농경지가 많아보였다.
길은 오르막길로 변해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앞에 우리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낡아빠진 경운기 비슷한 것을 타고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농부를 만났다. 낡아빠진 경운기를 보니 역시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비해 못 산다는 것을 실감했다(참고로 1인당 국내총생산은 스페인이 2만8000 달러이고 포르투갈은 2만1000 달러이다). 낡은 경운차를 추월해 언덕을 달려 올라가자 곧 정상이 나왔고 내리막길이 보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내리막길의 양 옆 계곡으로 끝없는 포도밭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우루 계곡이다. 이곳에 포도를 경작한지 2000년이 됐다지만, 이곳에 저 끝없는 포도밭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경탄이 나왔다. 다랑논처럼 비탈을 개간해 밭을 만들고 돌을 골라 모아 제주도 돌담 같은 나지막한 벽을 쳐서 만든 포도밭이 무려 25만 헥타아르나 이어진다니! 도우루 계곡의 포도밭을 허공에 매달린 '공중 정원(hanging garden)'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우루 계곡은 한 마디로, 인간이 피와 땀으로 만든 기하학적인 예술품이다. 앞에서 인용했듯이 토르가가 왜 도우루 계곡을 "스스로 자신을 넘어서 자신이기를 멈춘 자연의 경이"이고 "자연의 과잉"이며 "지질학적 시"라고 노래했는지 이해가 됐다. 도우루 계곡은 이를 개간한 인간의 피와 땀에 의해 '자신을 넘어서 자신이기를 멈춘 자연'이며 '자연의 과잉'이자 '지질학적 시'이다,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민초들이 피와 땀으로 자연과 함께 만든 이 자연건축물이 지배자들이 영토에 대한 아집으로 만든 만리장성보다 더 위대한 건축물 아니겠는가?
10여 년 전 마오쩌둥이 중국 혁명을 위해 떠났던 1만 킬로미터의 장정을 따라가다 윈난성 위엔양의 계단논과 다랑논을 찾아간 적이 있다. 10여 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달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나타난 다랑논들의 끝없는 곡선과 기하학적인 무늬를 봤을 때의 감격이란! 그것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고 예술품이었다.
특히 이 다랑논은 논의 물이 햇볕을 받아 천상의 장면을 연출했다. 그저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해가 지기 전에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도우루 계곡은 물이 찬 위엔양의 논과 달리 마른 포도밭이기 때문에, 그 같은 장관은 아니다. 그러나 다랑논이 곡선이 중심이었다면, 도우루 계곡은 포도밭 고랑들의 직선의 행렬들이 또 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유럽의 포도주하면 우리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생각하고 포르투갈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와인도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우루의 끝없는 포도밭을 바라보고 있자 문득 생각난 것이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19세기 초에 만든 '비교생산비설'이다. 각 나라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다 국내에서 만들 것이 아니라 경쟁력이 있는 물건, 즉 다른 나라에 비해 싸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고 생산비가 많이 드는 물건은 수입해 써야 한다는 주장으로 현재 국제무역의 기본 틀이 되는 이론이다.
주목할 것은 리카르도가 이때 예를 든 나라가 영국과 포르투갈이고 비교한 상품이 바로 직물과 포도주였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직물은 싸게 만들 수 있는 반면에 포도주 만드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포르투갈은 반대로 포도주는 싸게 만들 수 있지만 직물은 만드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따라서 영국은 옷만, 포르투갈은 포도주만 만들고, 경쟁력이 없는 포도주와 옷을 수입해 쓰면 서로 이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영국에 수출하고 대신 직물은 영국에서 수입해서 써야 경제적이라고 것이다. 리카르도가 예를 든 것처럼, 당시 포르투갈의 주요 수출상품은 포도주였다.
이 이론은 나름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 그것은 '시간'이란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즉 국제경쟁력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인데 고정적으로 본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영원히 가발이나 봉제나 하고 경쟁력 없는 자동차는 계속 미국서 수입해 써야 했다는 이야기이다. 박정희 정권이 5.16 쿠데타 후 추진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안은 상당히 민족주의적이어서 우리가 박정희의 경제발전하면 떠올리듯이 외국서 차관을 빌려다가 가발, 봉제 등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재벌재산을 몰수하고 화폐개혁으로 놀고 있는 돈들을 환수해 이를 재원으로 해서 북한처럼 철강, 정유공장 등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켜 자립형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 같은 계획에 의해 정유공장, 철강공장을 지으려고 미국에 원조를 요청했다. 그 때 미국이 보인 반응은 "비효율적이니 미국에서 사다 쓰라"는 것이었다.
포르투갈 와인 중 국제적으로 유명한 것은 일반적으로 '포트(port) 와인'이라고 부르는 '포르투(porto) 와인'이다. 원래 포트 와인이라고 불러왔는데, 최근 들어 다른 나라에서 '포트 와인'이라는 이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포르투갈 정부가 포르투갈산 와인의 이름을 '포르투 와인'로 바꿨다. 와인 중에서도 '최고급' 와인으로 대접받는 이 와인은 일반 와인과 달리 과거 소주에 포도와 설탕을 넣고 집에서 담갔던 우리들의 '수제 포도주'처럼 맛이 달고 도수도 일반 와인보다 훨씬 높은 20도에 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 순해져 17도 이하로 떨어진 우리의 소주보다 도수가 높고, 독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값도 일반 와인보다 훨씬 비싸다. 대개 슈퍼마켓 등에서 20유로 정도이고 여행을 하며 내가 확인한 것 중 제일 비싼 것은 다른 곳보다 값이 싼 슈퍼마켓임에도 불구하고 659유로(130만 원)짜리가 있었다. 포르투 와인은 식사 후 후식으로, 입가심으로 많이 마시는 와인이다. 포르투 와인에 대한 포르투갈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도우루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손님이 오면 저녁 식사 후 좋은 포르투 와인을 따서 앉은 순서대로 왼쪽 방향으로 잔을 돌리면서 와인을 음미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포르투 와인이 그렇게 독한 데에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고 전해진다. 영국은 위도가 높아 춥고 해가 많이 들지 않는 지방이라 포도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와인은 프랑스에서 수입해왔다. 대신 영국은 스카치위스키를 발명했다. 위스키는 위도가 높고 추워야 만들 수 있어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위스키를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다 실패하고 대신 만든 것이 미국의 대표 술인 버번, 그리고 쿠바 등의 럼주이다. 영국 밖에서 위스키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 바로 위도가 높은 캐나다이며 크라운 로얄 등 캐나다산 위스키도 알아준다.
18세기 초 스페인의 왕위 계승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시작했다. 영국은 전쟁 상대인 프랑스로부터 와인을 수입하기 어려워졌다. 프랑스의 대안이 포르투갈이었다. 이 전쟁에서 포르투갈은 우여곡절 끝에 영국 편을 들었고 메투엔(Methuen) 조약 맺는다. 이 조약에는 포르투갈 영국산 직물에 대해 면세를 해주는 대신 영국은 포르투갈산 와인에 비해 낮은 관세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조약으로 포르투갈 와인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만 섬유 산업들은 영국 제품 때문에 다 망하고 말았다. 때문에 이 조약이 포르투갈의 산업화를 가로막고 포르투갈이 유럽에서 낙후한 국가로 남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고 의식 있는 포르투갈 학자들은 비판하고 있다.
어쨌든 영국은 그동안 와인을 수입하던 프랑스 대신 포르투갈에 대량의 포도주를 주문했다. 그것이 리카르도가 이야기한 영국과 포르투갈의 국제 분업의 역사적 시초이다. 헌데 갑자기 엄청난 양의 포도주를 생산해야 하는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보관 숙성시킬 오크통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럼주를 보관하던 럼주 통인데, 이 통에 남아있던 럼주의 영향으로 포르투갈 와인이 도수가 강해졌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이는 야사이고, 정설은 다르다. 포르투갈이 영국까지 오랫동안 와인을 운송하고 보관하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포르투 와인의 제조 비법이다. 70도 이상의 독한 포도증류주, 즉 브랜디를 만들어 이를 와인에 섞는 것이다. 일종의 주정강화 와인이다. 그러면 일반 와인보다 도수가 올라가고 당을 산화시켜 알코올로 만들어주는 효소가 죽어 발효가 멈춘다. 그 결과로 포도의 당이 더 이상 발효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일반 포도주에 비해 단맛이 강하게 남게 된다. 그리고 발효가 멈추기 때문에 보관이 용이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물론 모든 포르투갈 와인이 이처럼 19도~20도로 도수가 높은 것은 아니고, 일반 와인은 다른 나라의 와인처럼 12~14도 수준이다.
이때부터 포르투갈은 원산지관리법을 제정하고 도우루를 세계 최초로 '와인재배 전문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보호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서양과 지중해성 기후로 비가 많이 내리고 땅이 비옥한 도우루강의 하류 지역,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심하고 건조한 동쪽 끝의 스페인 국경 지역, 그 중간 지역이라는 세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지형에 맞는 포도 종류를 개발하고 재배하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가자 '도우루계곡'이라고 쓴 큰 표시석이 나타났다. 근처에 마침 사람이 나와 있는 포도밭이 있어 다가가 구경을 했다. 놀라운 것은 포도나무가 우리 키에 훨씬 못 미칠 정도로 매우 작다는 것이다. 포도나무가 크면 포도 수확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수확이 쉽도록 키가 작은 품종을 선별해 이를 대량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포도 한 송이를 얻어 먹어보니 포도알이 작지만 엄청나게 달고 맛있었다. 우리 포도의 배 이상 달았다.
다시 내리막길을 돌아돌아 내려가면 계곡 사이로 푸른 강이 보인다. 도우루 계곡의 젖줄인 도우루강이다. 포르투갈의 '신의 물방울'인 포르투 와인을 길러낸 젖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작은 마을이 보였다. 도우루 강변의 아름다운 도시 핀아우(Pinhao)이다. 이 강은 도우루 계곡의 포도밭에 물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도우루 계곡에서 생산한 포도주들을 도우루강의 끝에 위치한 항구도시인 포르투로 운반해주던 운반로였다. 길이 20미터 정도의 바이킹식의 목선인 라벨로에 포도주를 담은 오크통을 실어 나른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해 이 강을 따라 포르투에서 출발해 도우 루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크루즈가 운행하고 있다.
핀하우가 보이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이른 아침 출발해 점심을 아직 못 먹은 것이다. 고불고불한 좁은 길을 따라 차를 몰아 핀하우로 내려갔다. 도우루 계곡에 위치한 핀하우는 아름다운 강변도시로 관광객이 넘쳐난다. 간신히 주차할 공간을 찾아 차를 세우고 강가로 내려갔다. 강을 바라보는 전망이 좋은 곳에서 도우루강의 정기를 마시며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강가에 가니 좋은 레스토랑에 강이 잘 보이는 야외 좌석들이 있어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가서 앉았다. 그 테이블의 구석에는 엄청나게 큰 와인병이 놓여 있었다. 이를 만지며 놀고 있자 종업원이 와서 이 와인병을 들어보이며 이 병은 이미 예약되어 있다는 표시라고 설명해 줬다. 특이한 예약 표시방식이다.
자리를 옮겨 음식을 시켰다. 포르투갈 가면 반드시 먹으라는 뽈뽀(문어)와 생선구이 그리고 양갈비를 시켰다. 포르트 와인을 한잔 하고 싶지만 "대낮부터 20도 와인은 너무 강한 것 같은 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식당에 들어섰을 때 벽에서 봤던 구호가 떠올랐다. "맥주가 정신과 상담치료보다 싸다(Beer is cheaper than therapy)." 맞다. 스트레스 쌓여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느니 맥주를 마셔 스트레스를 푸는 게 경제적이다. 맥주를 시켰다. 도우루강과 언덕을 따라 늘어선 포도밭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먹는 문어 맛이란! 우리의 문어 숙회와 달리 문어를 구은 것으로 문어가 이렇게 부드럽다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음식은 하나 같이 훌륭했고 관광지지만 가격도 스페인에 비하면 쌌다.
포르투갈의 첫 식사를 너무 행복하게 마친 뒤 천천히 구경에 나섰다. 눈에 띄는 것은 코르크로 장식한 장식이었다. 포르투갈의 주요산업 중의 하나는 와인하고도 관련이 있지만 와인병마개 같은 코르크 제조이다. 그래서 여가저기에서 보면 코르크로 장식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핀하오 시내를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 본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라 사진을 현지 사람에게 보여주고 어디로 가야 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언덕을 가르치며 저기인데 찻길이 없어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것도 한 시간을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이 더위에 맥주까지 한잔하고 거기를 걸어 올라가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포기하고, 포르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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