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빗장 걸린 국회…이해찬 "이런 꼴 처음 봐"

민주, '필리버스터 돌파' 뾰족수 없어 협상 재개될 듯

자유한국당이 29일 본회의 안건 전체에 대해 무제한 토론, 이른바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정기국회가 멈춰섰다. 이날 예정됐던 본회의는 무산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규탄대회를 열고 한국당을 소리높여 비난했다. 다만 필리버스터 종료를 위해서는 전체 의원의 3/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잠시 조정기를 거친 후 여야가 협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 외에는 마땅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이날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 이후,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교섭단체 3당(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의장실에서 긴급 회동을 가졌으나 본회의 개의 합의에는 실패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가장 먼저 회의장을 나서면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말을 안 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문 의장은 한민수 국회 대변인을 통해 "3당 원내대표가 오늘 의사일정 등을 합의해 오라"며 "의사일정 1항부터 의결 정족수가 필요한 의결 안건이어서, 지금이라도 본회의 의결 정족수가 된다면 언제든지 사회를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을 비판하며 "오늘 본회의는 민주당 불참으로 무산되는 방향"이라고 말한 것이나, 이 원내대표의 반응으로 미뤄볼 때 이날 본회의는 열리지 않게 된 셈이다. 조 의장은 "오늘 본회의를 열면 (199건 전부를) 건건이 필리버스터가 실시된다"며 "내달 2일 예산안이 자동상정될 때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부의하고 그때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도 부의하는 것으로 가려 한다"고 언급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장-3당 원내대표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의장은 사회를 거부하고 있고, 민주당도 필리버스터를 철회하지 않으면 전혀 움직이지 않겠다고 한다"면서 "의장은 민주당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 실질적으로 본회의를 열 수 없다고 한다"고 문 의장 입장을 전했다.

나 원내대표는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을 볼모로 잡았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우리는 급한 민생법 선(先)처리 요구를 했으나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철회를 안 하면 응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저희가 민생법을 볼모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법안 처리 무산 책임을 여당 측에 돌리며 이같이 말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오늘 처리해야 할 수많은 민생법안들, 민식이법이나 유치원 3법 등에 대해 한국당이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은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렵게 생각한다"고 한국당을 비판하면서도 "제1야당을 반(反)개혁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민주당에도 집권당으로서 큰 책임이 있다"고 했다.

오 원내대표는 "선거법만큼은 조속히 제 정당의 합의를 이뤄내서 빨리 국회가 정상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바라면서 마지막까지 중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 원내대표의 말은,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이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한국당이 내놓은 '필리버스터' 카드를 돌파하거나 우회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은 만큼 결국 여야 협상이 재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시사한다.

오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와 관련해 "하나 하나 199건을 (표결로) 종료시키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절차이고, 또 한 쪽을 배제하고 숫자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어서 (그렇게 해서는) 국회가 정상적으로 갈 수 없다고 보인다"며 "머리를 맞대고 합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헀다. 나 원내대표도 다음 주 의사일정 전망에 대해 "일단 좀더 협의를 해 보겠다"고 했다.

민주·정의·대안·평화, 한국당 맹비판…"선거법 반드시 통과"

민주당은 원내대표 회동 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한국당을 맹비난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며 "제가 30년 정치를 했지만 이런 꼴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 대표는 특히 "선거법은 우리가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다"라며 "(한국당이) '선거법만 통과 안 시키면 필리버스터를 안 하겠다고? 바꿀 것을 바꾸라!"고 강한 의지를 공개 천명하기도 했다. 그는 "선거법, 검찰개혁법을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서 나라를 바로잡겠다"며 "더 이상 우리가 참지 않는다. 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민생법안 필리버스터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며 "한국당의 시도를 정치 포기 선언으로 간주한다. 한국당은 마땅히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원내대표는 "용서할 수 없는 폭거에 단호히 대처하겠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 "슬기롭되 단호하게 해결해 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규탄 선언문에서 "공수처법, 선거법을 막겠다고 민생·경제 입법을 '올 스톱' 시킨 것은 국민을 배반한 폭거"라며 "의회민주주의 파괴 폭거 즉각 철회, 명분 없는 필리버스터 즉각 중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선거개혁을 촉구하며 국회에서 천막농성 중인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별도 규탄대회에서 "선거제도 개혁과 공수처법을 막으려는 한국당의 비이성적인 꼼수정치"라며 "민생보다 정쟁을 앞세우는 정치는 내년 총선을 통해 반드시 교체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심 대표는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지금 보는 '뗑깡 정치', 어깃장 정치, 동물 국회가 내년 총선 이후에도 그대로 계속될 것"이라면서 "한국당의 행패는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 왜 필요한가를 적나라하게 증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화당은 이날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무기한 철야 천막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창당을 준비 중인 대안신당(가)도 최경환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을 "폭거"로 규정하고 "한국당의 행태는 국정을 마비시키는 헌정파괴 수준의 거대야당 횡포이고, 민생을 볼모로 한 국정파괴 행위"라고 비난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한국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 비상한 결단을 해야 할 때"라며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에게, 4+1 협상을 통해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안을 함께 제출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