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받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를 보류하면서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 5배 인상안도 미국 의도대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 인상의 법적 근거는 한국에 심각하게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조약의 개폐(改廢) 없이는 미국의 일방적 요구가 더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미 국무부와 미 의회는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연장 결정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 및 시민단체들은 '미국 압박에 굴복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에 좌절감만 안겨주었으며, 청와대와 여당의 숱한 말의 성찬은 결국 눈속임이었다'고 강력 성토했다. 미국이 한국에 압력을 행사해 일본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유도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압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느냐는 의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태 남북 및 한미 관계 등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결단을 보인 적이 없던 정부가 지소미아와 관련해 자주국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한 국민은 큰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
현 상황에서 우려되는 것이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 문제다. 미국 측은 주한미군이 전적으로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면서 한국의 안보 부담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전 방위적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대북 억지 역할과 함께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 견제용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의 고압적 태도는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한 것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를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전략 지역으로 지정해 한반도 유사시 미 본토의 병력을 직접 투입하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1990년대 초까지 실시했다. 이런 과정에서 주한미군은 중국을 겨냥한 비수라는 인식과 함께 미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였다. 세계 여러 분쟁 지역 미군의 순환배치를 지원하는 주요 군사 기능도 도맡고 있다. 주한미군의 이런 기능은, 미국이 슈퍼 갑이 되면서 한국의 대미 군사종속을 제도화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 시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될 것에 대비해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만들어 남한에 영구 주둔할 장치를 마련했다. 중국이 G2로 급성장하자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를 배치해 미 본토를 방어할 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강력 반발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검토하는 한편, 한국에 경제 보복 조치를 취했다. 한미군사동맹의 강화가 한반도 안보 상황 및 한중 경제관계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떤 형식으로든 한미군사동맹의 수정 보완책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지소미아 연장 조치 강제에서 보듯,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상징되는 한미동맹의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 의회는 22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반가운 소식이라며 환영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협정의 장기 갱신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또한 미국의 안하무인식 시각을 드러낸 사례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통한 한미일 삼각군사구도를 강화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추진 중인데, 이런 움직임이 한반도 평화통일과 남북한 평화공존 및 교류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한국 정부는 면밀히 검토해 대처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방위비분담금 인상과 관련해 미국이나 한국 정부는 설득력 없는 구실만을 거론할 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리적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만약 법리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요구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지탄받아야 할 강대국의 횡포일 뿐이다. 그러나 그 근거가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있다면, 한국의 부담을 키우는 조항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 이 조약이 갖고 있는 불평등성, 즉 한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이 동시 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한 말이 주목된다. 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한·미동맹 '갱신'을 언급하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힘든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무임승차 불가론'에 이어 '한·미동맹 재정립론' 등 각종 논리를 총동원한 것이다<경향신문 2019년 11월 22일>. 미국이 선제적으로 한·미동맹 갱신을 언급한 배경이 어떤 의도인지 확실치 않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적극 수용해 구조적으로 한반도 상황을 21세기에 맞게 변형, 정상화하는 노력을 할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 전문과 3조에서 태평양지역의 안보를 거론하고, 4조에서는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right)로 규정했다. 4조는 미국을 슈퍼 갑, 한국을 슈퍼 을로 규정한 세계 어느 국제법서도 찾아보기 힘든 불평등 규정이다. 4조를 바탕으로 주한미군주둔군협정인 SOFA가 부속 협정으로 만들어졌고, SOFA에서 주한미군방위비분담특별협정, SMA가 만들어졌다.
SOFA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고, 주한미군방위비분담협정은 SOFA 5조(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를 담았다. SOFA가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미국이 부담하게끔 했는데도 양국은 SOFA 5조의 예외적 협정을 별도로 만든 것이다.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런 조치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의 '권리' 조항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런 변칙을 확대할 경우 이번과 같은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요구가 나올 국제법적 근거가 된다는 해괴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SMA에 따른 분담금은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군사건설 및 연합방위 증강사업, 군수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지원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관련 조항의 수정 조치 없이 한국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건 불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이 계속 부당한 요구를 해올 경우 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에 따라 현 불평등한 군사동맹의 개폐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 청원란에는 문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를 통고해야 한다는 청원이 제기된 바 있다.
현 조약 상태로는 한국이 미국의 전쟁에 일방적으로 끌려들어갈 위험도 크다. 미국은 최근 방위비 분담 요구 시 미국본토에 배치된 전략 무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비용, 한반도 역외지역 작전에 주한미군을 투입하기 위한 준비태세의 강화를 위한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비용 등 터무니없는 항목을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문과 4조에 근거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태평양지역으로 확대한 논리로 추정되는데,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명쾌한 입장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조약의 불평등성은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협정과 비교하면 명백히 드러난다. 필리핀에서 미군은 필리핀 부대 내에 주둔해야 하고 미군의 영구기지는 불가하다. 미군 기지는 필리핀 국내법의 적용을 받아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한미상호안보조약은 무기한 유효하다고 되어있지만 필리핀, 일본의 경우 그 기한이 10년으로 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의 상호방위조약도 미군의 일본 배치를 권리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한미동맹을 정상화하는 것이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이 국가 간 호혜원칙을 보장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란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2~13위권이고 대 미국 무기 수입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한국이 군사적 자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 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침묵하고 그 곁가지인 SOFA, SMA에만 매달리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미국의 비이성적인 수탈적 태도는 계속될 우려가 크다.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마비시킨 특권을 인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유지되는 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전략과 같은 불합리한 조치는 수정되지 않고, 한반도 정책에서 한국이 미국에 종속되는 비극적 현실이 개선되기 어렵다.
미국 정부가 국제 사회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방위비 분담에서 한국 정부를 몰아붙이는 이유는 현재의 한미동맹 구조 속에서 미국 측에 승산이 있다는 계산의 결과다. 트럼프가 내년도 대통령 재선에서 미군의 해외 주둔 경비의 대폭 삭감을 내세우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이란 핵합의 탈퇴와 시리아 미군 철수로 인한 쿠르드족 배신 논란에 휘말렸다. 북한 비핵화 문제도 교착상태에 빠져 외교 문제에서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해외 파병 주둔 관련 정책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어 재선에 성공하려는 속셈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야는 방위비 분담에 대한 미국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대해 결의안 하나 채택 못했다. 유엔의 대북 제재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두고 통일부 장관이 미국에 건너가 양해를 구한다는 식의 설명회를 하는 모습은 너무 한심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을 공식 거부했고,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한 시한이 연말로 다가오면서 내년 초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거나 4월 총선이 북한 핵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내외 정세는 눈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가는 상황임을 고려해 정부나 시민사회의 경각심이 요구된다. 특히 미국이 ‘한·미동맹 재정립론’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한미상호방위조약 개폐를 통한 한미관계의 정상화에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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