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 한국에 전환된 뒤에도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실질적으로 이 권한을 갖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결론부터 밝히면, 이는 미국이 수년 전부터 추진해왔고 한국은 침묵했던 미래 밑그림의 하나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한미연합군 최고 지휘권을 자신이 계속 장악하면서 주한미군을 미군 장성의 지휘 하에 한반도에 계속 주둔시키려는 노림수로 해석된다. 미국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에 대비해 1978년 11월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를 만들었고, 이어 전작권 전환 문제가 구체화되자 껍질만 있던 유엔사를 계속 보강해왔다.
유엔사는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설립된 군사기구다. 전쟁 기간 해외참전국 및 한국군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했고,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되었다. 유엔사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1978년 11월 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연합사로 넘어갔다. 현재 연합사령관 겸 주한미사령관이 유엔사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데, 향후 연합사와 유엔사 두 사령관을 각기 다른 사람이 맡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이후 한미연합체제의 최고 지휘권을 유엔사가 갖게끔 하는 방침을 굳힌 원인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로 알려졌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군을 한반도에 직접 파견하면 북한의 미사일 공격 대상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유엔사 후방기지로 설정된 일본을 증원기지로 활용하는 게 전략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유엔사가 전작권을 갖게 되면 미군은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7곳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다(<한겨레> 2018년 6월 8일). 미국은 종전 선언을 할 경우 유엔사가 해체되면서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 7곳도 영향을 받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은 유엔사 후방기지의 역할을 담당해 유엔군 소속의 병력과 장비를 한국으로 전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향후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미군 해상호송 등의 역할을 담당해 일본이 전력제공국이 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할 때 인천 항구 지리에 해박한 일본인 수십 명을 차출해 상륙정의 해상 및 육상 작전을 지원토록 했으며 당시 일본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다고 일본 NHK가 지난 6월 방송한 바 있다.
미국은 향후 한반도 유사시 막대한 병력을 증파할 전략을 수립해놓았는데 이를 위해 한국이 최근 종료 결정을 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대단히 긴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미 지상군, 해군, 공군 병력 69만 명, 선박 160척, 비행기 2000대 등의 지원군을 한반도에 증강 배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인 비행장과 항구가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는 지소미아에 의해 보장될 수 있을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 2019년 8월 6일). 미국 정부가 지소미아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강력한 부정적 태도를 보인 이유다.
이와 관련해 유엔군사령부 웨인 에어 부사령관이 지난 4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있는 유엔사 본부에서 진행된 기자설명회에서 밝힌 유엔사에 대한 견해가 주목된다(<VOA> 2019년 4월 22일). 그는 "전작권이 주한미군에서 한국군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유엔사의 지위에는 변화가 없다. 유엔사는 연합사를 지원할 것이며 그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에어 부사령관은 이어 "유엔사가 해체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먼저, 유엔사가 창설될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돼야 유엔사가 해체될 수 있다. 두 번째, 유엔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정부가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면 유엔사가 해체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유엔사가 해체될 만한 정치적 상황이나 조건, 환경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추측하거나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1970년대 맺어진 합참-유엔사-연합사 관계약정(TOR)에는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유엔사가 연합사를 지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겨레> 2019년 9월 5일). 에어 부사령관의 말과 <한겨레> 보도를 종합하면, 향후 유엔사가 계속 주둔하면서 한미연합사의 지휘권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한국군의 전작권 행사는 물 건너가는 꼴을 면키 어렵다.
미국은 해외 파병역사에서 연합군 사령관직을 계속 맡아왔다. 그 이유로 미국이 참전할 당시 동맹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고, 동맹국에 무기를 배치한 사실 등이 거론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다. 미국이 핵과 같은 첨단무기를 가장 많이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나토의 역대 최고사령관은 미군 장성이 역임해 왔고, 역대 부사령관은 영국군 또는 독일군 장성이 맡아왔다.
미국과 한국의 국방장관은 지난해 11월 제50차 한미안보협의회의를 통해 현재의 연합사 구조를 지속 유지하기로 하고, 전작권 전환 이후 미래 연합사에서는 한국군 4성 장성이 사령관을 맡고 미군 4성 장성이 부사령관을 맡도록 한다는 공동의 공약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미국의 핵우산과 주한미군의 첨단전력 우위 등의 실상을 고려할 때 나토의 전철을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 정부는 국민이 확신하고 있는 한국군의 연합사 지휘라는 미래의 청사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알려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각에서 제기 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해제와 지소미아 동결조치 백지화 가능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게 되고 동북아에 냉전에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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