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산자와 죽은 자의 대화이다(임지현)."
'집합적 유죄'의 논리가 있다. 가해민족 전부를 단죄하거나 피해민족 모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논리다. 저자는 학생들에게서 그런 태도를 발견할 때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양민 학살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지"를 묻는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도 20여 년이 지나 태어난 세대이니, 까마득한 옛날 일을 책임질 수 없다고 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저자는 다시 묻는다.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잔학행위에 대해 자네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왜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한 통치에 대해 책임을 묻는가."
21세기 동아시아의 기억 문화는 전사자 추모를 호국 영령 숭배라는 정치 종교의 차원으로, 전사자 숭배의 정점을 보여준다. 일본제국에서 시작한 정치 종교가 여전히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 문화를 지배한다. 그래서 늘상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 한복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사자를 국가가 나서서 호국영령으로 현창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논리는 베이징의 인민항일전쟁기념관, 국립서울현충원에도 적용된다. 이를 증명하듯 현충원에는 아예 '정국교(靖國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세워져 있다."
'정국'을 일본식으로 하면 '야스쿠니'다. 중화민국 시기 쓰촨 지역의 일부 군벌은 자신들을 '정국군(靖國軍)'이라고 불렀다. 정국은 <춘추좌씨전> 희공 23년조의 "오이정국야(吾以靖國也)"에서 비롯한 말로, 전쟁에 공이 있는 자를 포상함으로써 '나라(國)를 평온케 한다(靖)'는 맥락으로 쓰였다. 하지만 야스쿠니는 <춘추좌씨전>의 정국과는 다르다. <좌씨전>의 정국이 고대 왕권 국가의 도덕률이라면, 야스쿠니 신사의 야스쿠니는 근대 국민국가의 헤게모니적 지배 장치에 가깝다.
역사적, 도덕적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시효가 있을까. 저자가 내건 키워드는 '기억'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그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존적으로 전후 세대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러나 그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지금 여기의 문제이니, 전적으로 전후 세대의 책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기억은 전후 세대가 과거에 개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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