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에 모인 중년 이상의 남자들은 영남공업고등학교의 실상과 말 많고 탈도 많은 한국 사립학교의 수준을 보여주는 듯했다.
성추행 가해자는 밥을 씹고, 성적 조작 책임자는 고기를 뜯었다. 체육특기생 성적을 조작한 사람은 술을 마셨다. 사학비리 문제로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된 영남공고 이사진. 이들은 학교를 망친 책임자들과 고기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겼다.
"학교가 망가졌는데, 고기가 맛있게 입에 들어갑니까?"
기자의 물음에 영남공고 이사진은 답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 했다. 가운데 상석에는 각종 비리와 갑질로 최근 승인이 취소된 허선윤 전 이사장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왜 한 자리에 모였을까.
이 자리는 영남공고 정식 이사회 현장이다. 10월 25일 오후 6시, 대구 동구에 위치한 한 고깃집에서 영남공고등 이사회가 열렸다. 안건은 '임시 이사장 선임'. 대구교육청은 지난 10월 14일 허선윤 이사장에 대해 ‘임원취임 승인 취소’ 처분을 결정했다.
허선윤 후임을 결정하는 이사회 현장. '짤린' 허선윤이 위법하게 참석한 것은 물론이고, 그는 일명 ‘상석’에 앉았다. 체육복 비리 책임자 장상교 교장, 성추행 가해자 임종수 행정실장, 성적조작 책임자 권기운 교감-김종일 교감 직무대행도 참석했다.
한마디로, 영남공고 문제의 남자들이 다 모인 셈이다. 이사는 한준희, 이경만, 김태욱, 장병언, 추OO, 나OO이 자리했다.
"짤린 허선윤 전 이사장이 이사회에는 왜 왔습니까?"
기자의 물음에 허 전 이사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가 이사회에 참석한 건 대구교육청의 ‘임원취임 승인 취소’ 결정을 무시한 행위다.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사진은 별 문제 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밥상만 쳐다봤다. 결국 영남공고 이사회는 불법-엉터리로 회의를 진행한 셈이다.
영남공고는 거짓 회의록을 작성해 문제를 더 키웠다. 당일 이사회 회의록엔 허선윤 전 이사장이 참석 이사로 포함되지 않았다.
영남공고는 허 전 이사장의 참석이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거짓 회의록을 작성한 걸로 보인다. 거짓 회의록 작성은 사문서 위조·변조죄에 해당한다.
이런 불법-엉터리 이사회 개최, 거짓 회의록 작성 등은 ‘임원취임 승인’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관할청은 사립학교 임원이 학교 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일으킬 경우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현재 교육부–대구시교육청 합동 감사팀은 영남공고 이사진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대구교육청 소속 A 감사관은 “10월 25일 이사회 관련 제보를 받고 현재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남공고 ‘고깃집 이사회’에서 선출된 임시 이사장은 장병언 이사다. 장병언은 허선윤 전 이사장의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다.
허 전 이사장은 교장으로 재직한 2013년, 최OO 교사의 부친에게 정규직 교사 채용 대가로 3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OO 교사의 부친은 8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2011년 장병언 영남공고 이사가 '아들 채용을 부탁하려면 허선윤을 찾아가라'고 알려줬다"고 증언했다.
영남공고 이사진들의 불법 행위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나OO, 추OO 이사가 자진 사퇴했다.
영남공고 여러 교사는 학교 정상화를 위해선 "허선윤의 최측근인 이사들이 전원 사퇴하고, 교육부 차원에서 임시 이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립학교법 제25조(임시이사 선임)에 따르면, 임시 이사는 의결정족수를 미달할 경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파견할 수 있다. 영남공고 이사회의 의결정족수는 4명이다.
현 이사 5명(한준희, 김태욱, 이경만, 유두식, 장병언) 중 최소 1명 이상이 사퇴 혹은 ‘임원취임 승인’ 취소 결정이 나와야, 임시 이사 파견 요건이 충족된다.
영남공고 교직원 87명은 "이사 자진 사퇴를 바란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임종수 행정실장을 통해 이사진에게 전달했다. 아래는 영남공고 교사들이 작성한 탄원서 내용 중 일부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정말 소박합니다. 교사로서 당당하게 수업을 하고, (중략) 선생님들끼리 인사하고 같이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고, 경조사에 눈치 보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만드는 겁니다. (중략)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학교를 정상화시킬 수 있도록 이사회에서 용기 있는 사퇴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교사들이 건넨 탄원서는 11월 1일 되돌아왔다. 장병언 임시 이사장을 제외한 이사 4명은 탄원서를 거부했다. 장병언 이사는 임시 이사장으로서 형식상 탄원서를 건네받은 걸로 전해진다.
영남공고 황우철(가명) 교사는 “이사진이 탄원서를 읽지도 않고 돌려줘 화가 난다”면서 “허선윤 전 이사장의 비리와 갑질 등을 방임한 이사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A 이사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당일 이사회 개최 시작부터 허선윤 전 이사장이 식당에 와 있었다"고 밝혔다. 이사 A씨는 "허선윤 전 이사장 관련 여러 기사들을 보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최근 이사직을 관뒀다"고 털어놓았다.
B 이사는 "영남공고 이사진 관련 교육부-대구교육청 감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언론 인터뷰는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남공고 이사 5명은 모두 허선윤의 측근이다. 한준희 이사는 허선윤 전 이사장의 교장 재직 시절, 교감 출신이다. 허 전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김태욱 이사는 대구 능인고등학교 교장 출신이다.
이경만 이사는 허 전 이사장의 친인척이다. 장변언 이사는 허 전 이사장이 교사 임용 대가로 수천 만원을 받는데, ‘연결고리’ 역할을 한 인물이다. 유두식 이사는 영남공고 박OO 교사의 모친이다. 박OO 교사는 카누 체육특기생 성적 조작 책임자다.
불법-엉터리 이사회를 개최한 '고깃집의 남자들'은 <셜록>의 취재를 모두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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