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미 하원을 통과한 의료보험 개혁안에 대해 이념적·경제적 이유에서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를 갈망해왔던 미국인들이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 <식코>를 통해 미 의료보험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이 23일 <CNN>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 내놓은 평가는 그들의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의보 개혁 찬성론자들은 1912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제시한 이래 100년 만에 이룩한 역사적 성과를 긍정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긴 여행의 첫 걸음"이라는 말로 보편적 의보 제도가 완성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한다.
마이클 무어는 '퍼블릭 옵션'(정부운영 공공보험) 조항이 빠진 이번 개혁안을 '조크' 혹은 '나쁜 법안'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번 표결을 보험회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공화당과의 싸움으로 규정, 모든 역량을 동원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한 마이클 무어는 '2보 전진'에 대해 "향후 6개월 후부터는 보험회사들이 기존에 질병이 있었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의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없게 됐다는 점과, 부모의 보험에 함께 가입될 수 있는 자녀의 연령을 26세로 연장한 점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의료보험이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보험회사의 손아귀에 여전히 놓이게 했다는 것은 커다란 후퇴"라며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한 의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권법 통과 때도 흑인 투표권 없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가 미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만난 이들의 반응도 마이클 무어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응급의로 활동하는 파멜라 바이런은 "희망적이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낼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백만 달러 로비 자금을 퍼부은 보험회사들에 의해 법안이 후퇴했다"며 "일부 사람들에게는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 지역 의사인 제레미 캐스로우는 "의료비는 약값이 너무 비싸서 오르는 것이고, 지금도 오르고 있다"며 "이번 법안은 그 엄청난 돈을 납세자에게 물리고 있지만 약값 상승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동시에 보편적 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선진국인 미국의 제도를 개혁하자는 운동을 해 온 이들은 이번 법안이 개혁으로 가는 긴 여행이 작은 첫 걸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의보 개혁 운동을 벌이는 민주당원인 제리 콜드웰은 "50년 전 처음 통과된 민권법에서는 흑인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이번 법안에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머지않은 때에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21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의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제도 개혁안의 필요성에 대한 연설을 하고있다. ⓒEPA=연합뉴스 |
오바마 정치적 명운에 관심 집중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등을 돌리진 않겠지만, 이번 법안 통과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됐다고 평가하는 분석이 우세하다. <뉴욕타임스>는 22일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한 몇 안 되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할 것이라면서도, 정치적인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전했다.
수혜 대상이 인구의 5%인 차상위계층에 집중된 반면 상류층과 중산층은 보험료가 늘어서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면서 반대파들의 결집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50인 이상 고용하는 사업주들이 의보 부담을 지게 되면서 노조가 고용불안을 우려해 개혁을 외면하는 분위기여서 오바마 지지자들의 응집력은 약해졌다.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빼앗고, 여세를 몰아 의보 개혁 철회 입법까지 통과시킨다면 오바마의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의보 개혁 실패로 1994년 중간선거에서 패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그 경우 오바마에게 조기 레임덕이 찾아와 재선에도 실패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야외 잔디밭에서 법안 서명 행사를 갖고, 미국 내 각 지역을 돌며 법안 홍보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은 불리해진 정치적 지형을 바꿔놓으려는 시도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앞으로 몇 달 간 이 문제에 대해 자주 연설할 예정이며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이러한 행보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미 의보 개혁 철회 입법을 내겠다고 선언했고, 각 주에서는 위헌소송을 제기되는 등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쓰러뜨리기 위한 공화당과 보수 성향 유권자 모임 '티파티'(Tea Party)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의보 개혁론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까. 마이클 무어 감독은 22일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커먼드림스>에 보낸 글을 통해 의보 개혁법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렇지만 공화당의 생각은 틀렸음을 특유의 능청스런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다음은 무어 감독 기고문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보기)
공화당 친구들에게
▲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허점을 고발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 ⓒ프레시안 |
이번 법안 덕분에 언젠가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질지 모르는 23살 청년은 파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를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요.
암이 세 번째로 재발하면 살기 위해 20만 달러를 더 써야 하는데, 이제 의료보험 회사들은 암이 재발했다고 해서 명부에서 그의 이름을 빼버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번 법안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것은 범죄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공화당 친구들이여. 당신이 설사 이번 의료보험 개혁안에 반대했더라도 우리는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이 법이 필시 당신을 보호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화가 나 있겠죠.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병 때문에 쓰러지고 의료비로 인한 파산 때문에 집을 팔아치워야 한다고 해도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해야 스스로 편안하다는 것을 압니다. 존 웨인이 아직 살아있다면 당신들을 위해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겁니다. 보험회사들의 사명은 당신에게서 가져갈 수 있을 만큼의 모든 돈을 가져가는 것, 단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죠. 그들은 악마처럼 일합니다. 어떤 병이라도 보험 적용을 한 하려고 하고, 당신을 아프게 하는 악마.
그래서 언젠가 갑자기 삶을 위협하는 질병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할 때, 당신은 아마도 소위 빨갱이 사회주의자들, 캐나다 의보제도를 추종했던 민주당원과 무당파들이 지난 일요일 저녁에 한 일에 대해 생각하겠지요.
이게 어떤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보험회사를 운영해 온 도둑놈들은 법안이 통과됐더라도 앞으로 4년 동안 기존 병력이 있던 성인들의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보험사들은 또 향후 4년 동안은 가입자들에게 매년 돌려줘야 하는 보험액의 상한선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만일 보험사가 기존 질병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깨트린다면, 하루에 무는 벌금은 겨우 100달러에 불과하고요!
무엇보다 최고인 것은 이 법은 가난하거나 나이든 사람(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보험 적용 대상을 뜻함 - 옮긴이)이 아닌 모든 미국인들로 하여금 사보험 회사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정 보험회사들이 승리한 날입니다.
그러니 공화당 친구들이여,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보편적인 건강보험을 갖추기까지는 갈 길이 수만리입니다. 여전히 150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이는 매년 1만 5000명이 수술을 받거나 의사 진찰을 받을 만한 여력이 안 돼 생명을 잃는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러나 다른 3만 명은 살 수 있습니다. 이게 당신에게 괜찮은 일이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개의치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이 의보 개혁안을 개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미국인들이 보호받게 되고 더러운 보험 회사들이 업계에서 퇴출될 것입니다.
나의 공화당 친구들이여, 가능하다면 오늘 아침 당신의 AM 라디오와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로부터 잠시간 떨어진 채 부디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행복해 해 주십시오. 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고, 우리가 나아지는 것은 당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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