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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코드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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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드레스 코드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예종석의 'CEO에게 보내는 편지' 〈28〉의복 매너

K 사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이제 날씨도 많이 풀리고 싱그러운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매너에 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순서로 외모의 관리에 대해서, 특히 의복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외모 중에서도 옷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사대부는 외출 시에 의관을 정제해야 한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유교 관습에 따라 의복도 격식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요즘에 와서 기성세대의 일부는 옷에 신경쓰는 사람을 좀 신통치 않은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는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외양보다 내실이 더 중요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람의 내실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한 인간의 사람 됨됨이나 갖춘 실력을 한두 번의 만남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첫 인상은 만난 지 4초 내에 결정되고, 그렇게 한번 형성된 첫 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고 하지요. 이런 점에서 외모는 굳이 기호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이미지를 일거에 커뮤니케이션하여 그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이미지는 타고난 생김새와 옷차림, 화술, 교양 등으로 결정지어집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양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요소들은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관리가 가능합니다. 후천적인 관리는 선천적인 외모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역할도 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의복은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듯이 한 사람의 이미지 메이킹에 큰 기여를 합니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는 언어이며, 그 사람이 자신을 외부에 전달하는 메시지라고도 하지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 입는 수준은 예전에 비해서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경제발전으로 소득이 높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옷의 공급이 많아진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옷 입는 수준이 감각적으로도 기성세대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것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에만 하더라도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식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양복을 잘 차려입고도 흰 양말을 신은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하던 때도 있었지요. 옷 입기의 기본을 흔히들 'T, P, O', 즉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경우)'에 따라 적절하게 갖춰 입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에서 '코드'라는 말이 유행입니다만, 사실 이 단어는 옷과 관련해서는 '드레스 코드'라는 말로 오래 전부터 통용돼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드레스 코드'란 특정한 모임에 어떤 옷차림으로 가야 하는가를 지정하는 용어이지요.

오래 전에 외국의 파티에 초대받은 어느 우리나라 기업인이 초청장에 명시된 턱시도를 입고 참석하라는 의미의 '블랙 타이'라는 드레스 코드를 보고는 평상복에 상가에 매고 가는 검정 넥타이를 매고 가서 우스갯거리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드레스 코드를 잘 이해하지 못해 생긴 에피소드이지요.

외교관들은 드레스 코드를 특히 중시합니다. 영국같이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에서는 외국의 대사들이 여왕에게 신임장을 제정할 때 예복인 모닝코트를 갖춰 입고 마차를 타고 입궁하게 하기도 합니다. 외국의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외교사절들이 연미복을 차려 입고 도열해 있는 장면을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지요.

최근 드레스 코드에 맞지 않는 옷차림으로 세계적인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된 모랄레스가 외국을 순방하면서 의전에 맞지 않는 스웨터 차림으로 정상회담장에 등장해 큰 화제가 되었지요. 그는 대통령 취임식장에도 노타이 차림으로 나타나 또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튀는 행동으로 널리 알려진 모 정치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선서를 하는 자리에 면바지에 노타이 차림으로 등원해 여야 간에 공방이 벌어진 일도 있었습니다. 의원이 되기 위한 선서 때 옷차림 때문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그 국회의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 장관이 되기 위한 청문회에서는 드레스 코드에 맞는 옷차림과 정제된 화법으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요.

정치인들이야 특정한 목적을 갖고 계산된 행동으로 드레스 코드를 파괴하기도 하는 것이고, 위의 두 사람은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뜻한 바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권자와 표를 주로 의식하고 행동하는 정치가와 달리 비즈니스맨은 격식에 맞지 않는 옷차림으로는 사업상대에게 좋은 인상이나 신뢰를 주지 못하며, 따라서 사업상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중요한 상담을 하는 자리에 스웨터 차림이나 면바지를 입고 나타난 사람을 거래상대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요즘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가들에게서 시작된 캐쥬얼 복장이 이른바 비즈니스 캐쥬얼 선풍을 일으켜 우리나라의 일부 기업에서도 자유복장을 허용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내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거래처를 상대로 영업을 하거나 상담을 하는 입장이라면 아무래도 그런 복장으로는 성공을 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미지가 목숨과 같은 정치인의 옷차림을 예로 든 김에 옷차림이 정치운명을 갈라놓은 유명한 사례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은 케네디와 닉슨은 역사상 최초의 TV토론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닉슨은 부통령을 역임한 바 있는 거물 정치인이었고, 케네디는 젊은 정치 초년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TV라는 뉴미디어를 활용할 줄 알았던 케네디는 화면에 활기차고 신뢰감 있게 비치는 짙은 색의 양복과 그 옷에 잘 어울리는 와이셔츠와 넥타이에다 분장까지 완벽하게 하고 등장해, 화면에 노쇠하게 비치는 밝은 색 양복을 입고 나타난 닉슨을 압도했습니다. 복장이 당락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았겠지만, 선거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만큼은 사실이었습니다.

정치인처럼 언론에 자주 노출되지는 않지만 경영자들에게도 옷차림에 얽힌 일화는 많습니다. 제가 아는 경영자 한 분은 외국의 금융권 인사들이 즐겨 맨다고 알려진 특정 브랜드의 넥타이만을 수십 년째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이른바 명품으로 알려진 그 넥타이를 선호하는 이유는 본인이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브랜드의 넥타이로 인해 사업상의 혜택을 적지 않게 누리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언젠가 합작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의 유수한 최고경영자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두 사람이 같은 브랜드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더랍니다. 마침 상대방도 그 브랜드의 넥타이만을 수집하는 마니아였던지라,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지만 넥타이를 화제로 시작된 대화는 초면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금방 친숙하게 만들었고 상담은 성공리에 끝났다고 합니다. 같은 브랜드의 넥타이로 인한 동류의식이 두 사람을 짧은 시간에 가깝게 만든 것이지요.

'T, P, O'에 맞는 복장은 경영자의 실력에 알파를 더해주어 자신감을 갖게 해줍니다. 모든 것을 갖춘 것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가 빌 게이츠가 연설에서 번번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의 적절치 못한 옷차림으로 인해 자신감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실력은 없으면서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경영자가 많아도 안 되겠지만, 내실에다 세련된 외양까지 갖춘 월드 클래스의 최고경영자가 많아져서 우리 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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