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전북에서 11석을 석권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고창ㆍ부안의 '알 수 없는 민심'이다.
현재 정세는 5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정균환 후보와 '전문가' 정치인을 내세우는 열린우리당 김춘진 후보의 치열한 경합에, 10년 동안 지역을 훑어온 무소속 김경민 후보가 바짝 뒤쫓고 있는 양상이다. 여기에 선거 막판에 부안 대책위가 우리당 김후보 낙선운동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전이 전개되고 있다.
***4선 '백전노장' 대 '정치신인'**
정균환 후보는 고창에서 3선, 16대에 지역구가 통합된 고창ㆍ부안에서 4선을 한, 말 그대로 '백전노장'이다. 민주당 원내총무와 최고위원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당 구파의 핵심 인물로 당내 쇄신파로부터 대표적인 '청산 대상'으로 지목돼 왔다. 고창ㆍ부안에서도 "이젠 바꿔보자"는 민심이 많았다.
이처럼 궁지에 몰리던 정균환 후보에게 '부안 사태'는 더없는 어부지리의 기회를 주는듯 싶었다. 지역의 반여권 성향이 도드라지면서, 머리띠를 묶고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집회에 모습을 드러낸 정 후보의 압승이 예상됐다. 부안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의료자문을 맡은 김춘진 후보가 지난 2월5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을 때, 지인들이 신변 안전을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탄핵 역풍'은 또다시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다. 후보 등록전 공개된 각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는 모두 열린우리당 김후보가 평균 15% 포인트 이상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 역풍은 지역에서 인지도가 낮은 김춘진 후보를 일거에 당선 유력후보로 올려놓았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1주일이 지난 지금, 정 후보와 김 후보 양측 모두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부안을 중심으로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문제가 막판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부안 대책위, "핵폐기물처리장 유치후보 낙선운동"**
지난 2일 부안 대책위는 핵폐기물처리장 유치에 찬성하는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주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사실상 열린우리당 김춘진 후보를 겨냥한 선언이었다.
대책위 김진원 조직위원장은 "열린우리당은 핵폐기물처리장을 부안에 유치하지 않겠다는 당론이 없는 데다, 부안주민들의 고통을 수수방관했다"면서 "2ㆍ14 주민투표 이후에도 부안 주민들의 의사를 계속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핵폐기물처리장 등 국책 사업 유치에 욕심을 버리지 않는 강현욱 전북도지사의 입당까지 허용하는 등 군민들의 정서상 용납할 수 없는 없는 당"이라고 지적했다.
김 조직위원장은 우리당 김춘진 후보에 대해서도 "김 후보는 주민들이 8개월간 핵폐기물처리장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더구나 중앙 정치를 등에 업고 낙하산 공천을 받은 김 후보를 주민자치와 참여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부안 주민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부안 대책위의 이같은 선언은 '밑으로부터의 압력'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핵폐기장 문제로 8개월동안 온갖 고초를 겪어온 부안주민들은 지금도 정부여권에 대한 분노가 대단하다. 이에 탄핵역풍으로 열린우리당 김후보가 당선유력 후보로 급상승하자 "이래선 안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대책위 하부조직 사이에서 확산됐고, 이같은 밑으로부터의 압박이 대책위로 하여금 김후보 낙선운동을 선포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안의 분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당 김춘진 후보, "내가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데…"**
이같은 대책위의 낙선운동 선언에 우리당 김춘진 후보는 '당혹스럽고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김춘진 후보는 "칼럼이나 입후보 기자 회견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면서 "부안 대책위가 나를 낙선대상으로 꼽은 것은 대책위가 정균환 후보측 인사들에게 휘둘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정후보처럼 머리띠를 묶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반대를 위해서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막후 역할론'을 폈다. 그는 "공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영향력 있는 정책 입안자와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벌였다"면서 "머리띠 묶고 단상에 오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이지만, 내가 한 일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내 홍보물에 최병모 변호사와 박원순 변호사가 추천글을 써준 것도 이런 나의 기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후보는 "백전노장을 상대하느라 쉽지 않은 싸움인 것은 사실이지만 준비된 정책과 비전을 가진 나를 주민들이 선택해 줄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각종 토론에서 "정 후보가 민주당 원내총무로 있으면서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관련법을 통과시켰다"는 '정균환 책임론'을 공세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정균환 캠프, "부안은 탄핵역풍 무풍지대"**
반면에 정균환 캠프는 핵폐기물처리장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대두되자 표정관리에 바빴다.
정균환 캠프의 권익현씨는 "부안은 탄핵역풍 무풍지대"라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핵폐기물처리장을 부안에 강요해 겪은 고통을 부안 주민들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역 의원으로서 머리띠 묶고 부안 주민과 함께한 정 후보를 부안 주민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권씨는 후보 등록전 정후보가 우리당 김후보에게 크게 밀리고 있던 언론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부안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씨는 정 후보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정 후보는 일단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았다"면서 "국회의원을 여러 차례 해 경험이 많은 것도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현역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면서 "부안 주민들이 정 후보를 선택함으로써 정 후보의 노력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소속 김경민 후보, "진짜 '핵폐기장 후보'는 나"**
지난 16대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11.4%를 얻어 정균환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무소속 김경민 후보는 "진짜 '핵폐기장 후보'는 나"라며 밑바닥 표심을 모으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김경민 후보는 지난 10여년간 고창ㆍ부안의 여러 가지 문제에 나서면서 밑바닥 정치를 해왔다. 지난해 7월 핵폐기물처리장 유치 철회를 요구하면서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청와대로 도보 행진을 하는 등, 8개월간의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에도 적극 동참해왔다.
지난 2002년부터 개혁당 활동 등을 해온 까닭에 지역 주민들은 그가 열린우리당 후보로 공천을 받을 것으로 예상해 왔다. 지역에서는 우리당에 대한 주민들의 강한 반발 여론을 의식, 공천받기를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탓에 '탄핵 역풍'의 최대 피해자라는 동정 여론도 꽤 높다.
김경민 후보 캠프의 박인주 사무국장은 정 후보와 김 후보에 대한 동시비판으로 말문을 열었다. "4선 의원을 하면서 정 후보가 고창ㆍ부안을 위해서 한 게 뭐가 있느냐"면서 정 후보측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지난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에 한번도 얼굴을 안 비친 김춘진 후보가 이 지역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에 함께 한 김경민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 현안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에 헌신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김경민 후보가 고창ㆍ부안 국회의원의 적임자"라면서 "밑바닥 표심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변이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부안에서 '탄핵 역풍'보다 여론을 더 좌지우지하는 것이 '핵폐기장 민심'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 '핵폐기장 민심'이 표심으로 어떻게 연결될 지는 미지수다. 세 후보는 모두 동상이몽 속에서, 불안한 '표심 다지기'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한 부안주민은 "정균환이도 싫고 열린우리당도 싫고, 정말 고민"이라며 "정말 정치권이 혐오스럽다"고 말했다. '부안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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