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계엄' 문건이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 해당 문건을 수사한 검찰이 부실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해당 문건 작성에 청와대가 관여한 정황과 진술이 있었음에도, 검찰이 이를 수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계엄 문건을 최초 폭로한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계엄 후 군 투입 논의가 담긴 문건이 최초 작성된 시기는 검찰이 공개한 시기보다 적어도 일주일 이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한민구 당시 국방부장관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 배경으로 군인권센터는 황교안 전 청와대 권한대행이 계엄 논의에 연루돼 있을 가능성을 재차 주장했다. 즉 기무사가 청와대와 '직통'으로 계엄 논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날 군인권센터는 서울 마포구 센터 교육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밝히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군인권센터 "계엄 논의 청와대 개입 정황...황교안이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지난해 3월 군인권센터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군이 친위 쿠데타를 위한 계엄을 논의하는 회의를 진행했다고 밝혀 파장을 낳았다. 해당 사건은 이후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검찰 수사 당시 계엄 논의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의 진술에 따르면, 계엄령 문건 작성이 시작된 날짜는 2017년 2월 17일로 추정됐다.
하지만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에서 관련 문건이 공개된 날짜보다 최소 일주일 전부터 작성됐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익명의 제보자를 인용해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한 전 장관을 만나기 일주일 전인 2017년 2월 10일 기무사 3처장 소강원을 불러 계엄령 관련 보고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당시 조현천이 문건을 '반드시 수기로 작성하라'는 지시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제보에 따르면 해당 지시에 따라 문건을 작성하게 된 실무자 모 서기관은 2017년 2월 13일부터 문건을 작성하기 시작해 같은 해 2월 16일 다섯 장의 자필 문건을 조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후 조 전 사령관은 소강원 처장에게 계엄 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했다. 태스크포스의 첫 회의는 조 전 사령관이 한 전 장관을 만나기 전인 2017년 2월 17일 오전 9시에 열렸다.
이 같은 제보 내용을 두고 군인권센터는 "'2017년 2월 17일 조현천에게 계엄령 검토를 최초로 지시했다'는 한민구의 진술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제보에 의하면 계엄 논의는 한 전 장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무사에서 2017년 2월 10일경부터 이뤄졌기 때문이다. 즉, 국방부 장관 지시로 계엄 논의가 시작된 게 아니라, 기무사가 먼저 계엄 준비를 했고, 관련 문건 작성 후 기무사령관이 국방부 장관과 만났다. 기무사가 단독으로 계엄 준비를 한 게 아니라면, 이를 지시한 다른 윗선이 있었음을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군인권센터는 이번 제보(기무사에서 먼저 계엄 준비가 구체적으로 이뤄졌다는 제보)가 사실상 계엄 준비를 청와대가 지시했음을 보여주는 다른 증거라고 주장했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계엄 논의의 핵심으로 보는 이전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군인권센터는 나아가 이 같은 계엄 논의가 2016년경부터 청와대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검찰이 (한민구 등) 불기소 처분장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조현천은 2017년 2월 10일 청와대에 들어가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을 만났고, 김관진은 2016년 10월 이미 국가안보실 소속 국방비서관실 행정관 신기훈(공군 중령)에게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시 대처방안,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방안이 담긴 문건을 작성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이어 "조현천과 김관진이 만난 2017년 2월 10일은 조현천이 소강원에게 계엄령 보고를 요구한 날짜와 일치한다"며 "계엄령 문건의 발단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하의 청와대라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총장이 해명해야"
군인권센터는 "제보에 따르면 검찰은 합동수사단 수사를 통해 이미 이런 진술(황교안 권한대행이 계엄 논의의 몸통)을 복수의 참고인으로부터 확보했다"며 "이런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합수단 수사 당시 한민구는 거짓말을 했고, 김관진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발뺌했음에도 검찰은 이들을 구속수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이 같은 사실을 검찰이 알고도 이를 모르쇠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다시금 겨냥했다.
이어 군인권센터는 "검찰은 한민구의 거짓 진술만 그대로 인용해 불기소 사유로 적시했고, 사건 수사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문건 작성의 발단, 태스크포스 구성 일자 등에는 일언반구도 남기지 않았다"며 "그 까닭이 궁금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이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제보에 따르면 검찰은 조현천이 없어도 충분히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상황에서 수사를 중단해 주요 피의자를 1년 이상 방치,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줬다"며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수사를 중단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소장은 특히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나는 그 같은 수사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관련 수사자료를 확보해서 어디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점검하는 게 책임 있는 검찰총장의 자세"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윤 총장은 지난 21일 군인권센터가 2017년 2월 작성된 계엄령 문건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을 공개하고 합수단이 관련 수사를 덮었다고 밝히자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군인권센터는 당시 합수단 수사단장이 윤 총장이라고 밝혔다.
한편 군인권센터는 문건 수정 논란 등이 인 연유도 추가로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계엄령 문건이 총 10건 작성됐는데, 지난해 센터가 공개한 문건은 2017년 3월 6일 작성된 문건을 일부 수정한 문건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지난 21일 공개한 문건은 2017년 2월 22일 작성된 문건이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10개의 문건이 존재한다는 제보자 진술 사실 여부와 이 중 검찰이 '최종본'으로 판단한 문건은 무엇인지도 검찰이 밝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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