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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마시는 선진국, 무엇이 다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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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 마시는 선진국, 무엇이 다르길래

[함께 사는 길] 믿고 마시는 수돗물을 위해·②

우리나라의 수돗물은 세계 물 맛 대회에서 7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물의 맛뿐만 아니라 품질, 안전성 면에서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정수처리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깐깐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수돗물 검사기준도 법정항목 54개를 넘어 200여 개 이상의 물질을 검사하여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돗물의 원수는 주로 댐에서 취수하고 있다. 식수원 보전을 위해 댐 주변지역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또한 지난 1999년 한강수계특별법을 시작으로 금강, 낙동강, 영산강 유역까지 4대강수계특별법을 제정하여 식수원 상류지역에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고 댐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 차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 수많은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나름 철저한 관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돗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다양한 규제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수원 녹조, 수십 년 된 노후한 관로와 녹물 사건, 부정적 언론 보도, 사회적 무관심, 홍보 부족 등 다양한 이유들로 직접 음용율은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수돗물이 있어야 할 자리는 정수기와 먹는 샘물이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해 가계 부담이 2조 원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수돗물의 직접 음용율이 70퍼센트가 넘는 선진국은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 프랑스 파리시 공원에 설치된 음수대.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수돗물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가자원"

노르웨이의 오슬로 상하수도공사와 NRVA Water Plant 정수장은 인구 70만 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이다. 수돗물 정수과정은 응집, 침전, 여과, 염소소독, UV(자외선 살균소독) 등 우리와 비슷하다. 수돗물의 순환시스템을 온라인으로 홍보하는 것도 한국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원수관리가 철저해 과도한 정수처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NRVA 정수장은 국가 보안급 시설로 간주해 정수장을 지하화시켜 외부의 재난·재해로부터 안정성을 담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사고가 발생되는 상수도관은 터널식으로 운영관리하고 있어 누수되는 상수도관 진단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시스템이지만 수돗물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국가 자원으로 간주하여 예산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핀란드의 헬싱키 지역환경사업소도 양질의 원수 공급을 위해 120킬로미터 떨어진 호소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정수관리, 상수도 관리를 안전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노후한 관로와 30퍼센트 안팎이 되는 누수율 문제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수돗물에 대한 관리를 지방자치단체가 공기업을 신설하여 독립적으로 추진하고 국비 지원 없이 100퍼센트 수도세로 충당하며 적극 대처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시에라 산맥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근처에서 양질의 수원을 취수하여 250만 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2011년부터 'water station'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음수대 설치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2016년 10월부터는 상점이 아닌, 공공시설이나 그 외 시설에서 병물 판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모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텀블러를 제공하며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버클리 대학의 경우, 2만여 명의 학생이 1인당 6달러씩 녹색계획기금을 납부하여 수돗물 음수대 설치 확대,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탄산음료 음용 줄이기 등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캠페인은 대학생과 학교당국, 지자체가 협력하여 대학은 물론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돗물 음용률 증대가 단순히 수돗물에 대한 인식 개선을 넘어 1회용 플라스틱으로 인한 지구 환경문제를 걱정하고, 탄산음료 등으로 인한 비만과 건강 문제를 제기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수돗물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네덜란드 물관리청 산하 21개 지역창. ⓒ수돗물시민네트워크

거버넌스 통한 물 관리

그동안 수돗물 민영화로 물 값 폭등을 경험했던 프랑스 파리는 2009년에 <Eau de paris>(파리의 물)를 창립하고 2010년에 수돗물을 재공영화하면서 수도정책의 혁신을 이루고 있다. 시의원, 소비자, 근로자, 전문가로 구성된 파리시 행정위원회는 연간 수차례 논의와 회의를 거쳐 파리시의 모든 수도정책에 대한 심의와 의결을 하고 있다. 물 정보화센터를 운영하며 수돗물 관련 주민 반상회, 청소년 교육 등 시민의견 수렴 과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텀블러나 수돗물 전용 용기 디자인 대회를 개최하여 수돗물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수도세 고지서와는 다르게 수돗물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한해 수도세를 사용한 내역과 수돗물의 수질개선을 위한 노력을 담은 브로슈어를 우편 발송한다. 또한, 900만 명을 대상으로 수돗물 설문지를 발송하여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수거율은 3퍼센트도 되지 않지만, 이러한 과정이 수도세를 납부하는 시민들에게 제공하여야 할 당연한 정보라며 파리시 관계자는 전했다. 또한 설문지가 회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설문지의 기능은 시민들의 의견 수렴 외에도 홍보기능이 있는 것으로 회수율이 적다고 해서 절대 예산낭비라고 판단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유역관리에 있어서 가장 선진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EU의 물관리 기본지침을 바탕으로 국가 수준, 유역수준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큰 강을 중심으로 6개의 유역위원회를 두고 지자체, 주민, 전문가, NGO 등이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관리하고 있다.

1990년 통일된 독일은 16개 자치주로 이뤄진 연방국가이다. 중앙의 권한은 미약한 반면 자치주가 실질적인 정책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체계는 물 관리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2012년 연방 물관리법을 개정하면서 수자원 감독청을 신설하고 공공재인 물을 민·관 협력체계에서 관리하되 최종적인 책임은 국가가 지는 거버넌스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물 관리 부서는 연방정부의 관리감독기능에 구속되지 않고 지자체 주도의 자체적인 물 관리 집행이 가능하다. 독일 역시 EU의 물관리 기본지침을 가장 기본에 두고 16개 주마다 별도의 수자원법을 제정하여 물 관련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 다양한 파트너십에 기반을 둔 하수 감시, 화학 물질 감시, 정수장 관리감독, 수질개선 활동, 댐 문제 해결 논의, 물 사용량 모니터링 등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물 관리의 특징으로 연방정부 내에서 철저한 분권과 전문성, 거버넌스 체계를 들 수 있다.

13세기부터 물 관리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EU수준, 국가수준, 지방수준, 유역수준으로 물 관리를 하고 있으며, 수자원국에서 총괄하고 있다. 지방 물관리청은 지방정부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데 30여 명 정도로 구성된 물관리위원회가 물에 관한 모든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모든 구성을 거버넌스로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물 관련 기업(NWP), 물 연구소, 물 공기업, NGO 등으로 수도협회를 구성하여 안전한 물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물 관리에 있어서 6가지 핵심 주제를 구성하고 있다. 물 관련 강력한 행정기구와 EU의 지침, 물 관리 경영감독시스템 구성, 물 관리 기획시스템 구성, 수질 관리 및 정수처리 등 적절한 예산의 편성, 물 관련 이해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 독려, 내부적, 외부적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 간의 신뢰

최근, 선진국은 수돗물에 대한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수돗물의 정수, 노후관로 교체, 시민홍보의 모든 비용을 국가와 국민이 부담하고 민간자본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또한, 상수도의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한편 정부로부터 간섭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를 참여시키는 분권화된 거버넌스를 실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돗물 공급과 관리에 대한 전문성, 안전성이 높아지고 있다.

철저한 수돗물 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시사점은 바로 국가(지자체)와 국민 간의 신뢰이다. 국가는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의 검증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며 70퍼센트가 넘는 국민들이 수돗물을 직접 음용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대구의 수돗물에서 발생한 과불화화합물 검출 사건이나 인천과 서울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건, 충남 지방상수원 정수장에서 발생한 우라늄 은폐사건 등에서 보인 지방자치단체의 불안하고 무책임한 대처는 국민들의 수돗물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처럼 안전한 물(수돗물) 관리를 위한 협업형 거버넌스 체계는 구축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방)정부의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 수돗물은 국민 생명의 기본이고, 국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물 관리 시대를 접하고 있다. 물관리일원화에 따라 지방상수도와 광역상수도가 통합 관리되고, 물관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 통합적인 물 관리 체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 관리 정책의 변화는 국민들로부터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대국민 소통체계 부족과 정부 중심의 TOP-DOWN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수도정책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선진화된 물 관리·처리 기술이 아니다. 우리나라보다는 분명 깨끗한 원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신뢰 수준이다. 신뢰와 협력에 기반을 둔 국가의 수도정책이 수돗물 음용률을 70퍼센트 이상으로 높이고 있다. 통합 물 관리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명확하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각오로 원수에서 수도꼭지까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며, 국민은 국가의 수도정책을 믿고 마셔야 한다. 이것이 공공재인 수돗물을 지키고 먹는 샘물과 정수기로 발생되는 플라스틱 공해와 가계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국가와 국민의 신뢰에 기반을 둔 선진국의 수도정책이 선진화된 물 관리 기술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배워야 할 가장 큰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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