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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로 성찰할 것과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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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로 성찰할 것과 과제들

[기고] 불평등 완화 없이는 어떤 개혁도 도로아미타불

두 달이 넘게 대한민국이 조국사태의 블랙홀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엄청난 국력의 낭비이자 소모전이었다. 소위 ‘조국사태’에는 공정과 정의, 불평등, 지식인의 도덕성과 책무, 울타리 안과 밖, 세대모순과 계급모순, 검찰, 언론, 교육 개혁 등 여러 층위의 문제들이 겹쳐 있다. 이에 대한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어느 문제나 모순을 더 중시하는가에 따라 보수와 진보는 물론 진보 안에서도 치열한 논쟁과 대결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여러 모로 불완전한 인간은 성찰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인, 집단, 문명의 발전을 도모해 왔다. 조국 장관이 사퇴한 이후 우리는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성찰하면서 그것이 남긴 과제들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자한당은 합리적 · 도덕적 · 민족적인 보수당으로 거듭나야
광화문에는 자한당과 그 지지층, 60대 이후의 산업화세력, 동원된 기독교도들, 강남의 부유층 노인들이 절대 다수였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한 중년과 소수의 청년도 모였다. 합리적 보수를 제외한 세력, 소위 태극기 부대들은 반공이데올로기와 산업화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들이다. 이들의 색안경으로 볼 때 문재인 정권은 좌파 정권이자 타도 대상이다. 거짓과 억지까지 동원하여 악다구니하던 차에 상식적인 기준에서 보아도 문제가 많은 조국은 문재인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들은 허위와 가짜뉴스를 확대생산하며 조국의 부도덕성을 선동하며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고 대신 검찰과 기득권을 엄호하였다.

하지만, 도덕의 프레임은 정치를 후면으로 후퇴시켰다. 도덕적으로 더 타락한 집단이 도덕을 무기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언제든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들이 <조선일보>를 사령관으로 하여 보수언론과 SNS를 총동원하여 가짜뉴스를 생산한 것은 일시적으로 보수 대중을 선동하기는 했지만, 그를 비판하는 정보와 논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 너머로 확장되지는 못하였다. 조국이 사퇴하고 자한당의 지지율이 올랐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정치는 여러 변인에 따라 생물처럼 작동하고 자한당의 인사들은 조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기에, 그 칼이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다. 매도와 음해성의 흠집내기와 상대방 죽이기로 일관하는 정치는 소모전일 뿐이다. 언론이 그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독재정권처럼 통제되지 않고 SNS로 반대 정보와 담론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상황에서는 이로 얻는 대중과 표는 한정되어 있다. 이참에 자한당이 국민의 명령인 검찰개혁과 선거법개혁에 대승적으로 협조하고, 영국의 보수당처럼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민족적인 보수로, 산업시대의 유령에서 벗어나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자유주의 세력은 대중적 헤게모니를 상실했다

진보는 둘로 갈라졌다. 서초동에는 민주당의 지지층, 586과 60대 이전의 민주화세력, 검찰의 오만에 분노하는 청장년이 모였다. 절대 다수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이들이다.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동일시하는 자와 양자를 분리하는 자 사이의 차이는 있었지만, 갈등으로까지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번 기회에 검찰을 개혁하지 않으면 무소불위의 권력이 언제든 서민은 물론 장관과 대통령까지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키거나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절박감과 울분에서 거리로 향하였다. 기득권의 동맹에서도 검찰은 핵심고리였고, 적폐의 중심이었다.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하자는 촛불이 동력으로 작동하였다. 더구나, 586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부당하게 고문과 투옥을 당한 것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을 맞은 것에 이르기까지 검찰에 대한 트라우마와 분노가 있다. 그러기에 이들의 저항은 정당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번 사태를 통하여 많은 것을 상실하였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가 두 달 동안이나 국론 분열과 사실상 직무정지의 상태에 있었음에도 전혀 정치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합리적인 중도층과 진보층이 대거 이탈하였다. 고정 보수층과 진보층이 30% 정도씩 양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거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중도층의 향방과 진보의 열정이다. 중도층의 입장에서도 공정과 정의의 아이콘이었던 조국이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586들은 궤변을 늘어놓으면서까지 광적으로 조국수호에 나섰다. ‘문빠’들은 검찰개혁과 사회개혁의 차원에서 조국을 비판하는 진보 인사의 SNS나 언론 보도에 대해 무차별적이고 광기어린 악플 공격을 가하였다.

이는 민주화 운동 경력과 도덕성을 기반으로 대중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권력도 장악했던 586도 기득권과 다름이 없음을 대중에게 뚜렷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이제 ‘문빠’의 바깥에서 민주당 인사들의 당선을 위하여 발 벗고 주위 사람을 설득하고 SNS에 글을 올리고 퍼 나를 열혈 지지자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586의 종말과 문재인 정권의 레임덕을 그들 스스로 부른 것이다. 앞으로 586은 권력을 잡은 이후 울타리 밖의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은 채 기득권에 유리한 정책을 남발하고 그들이 비난하던 자한당의 행태를 그대로 반복한 것을 처절하게 반성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남은 몇 달 사이에 울타리 바깥의 국민과 청년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경제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노동개혁 등 사회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은 물론 그 이후도 위험하다.

진보좌파는 고립을 자초했다

노동자와 농민, 빈민, 진보좌파 활동가와 지식인, 가난한 청년 등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서초동에 가지 않았다. 이들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졌거나 노동존중의 사회를 추구하거나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한다. 이들은 국정농단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불평등과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가 2016 촛불의 주요 동력이었으며, 촛불의 명령은 정권교체를 넘어 불평등의 완화와 공정한 사회를 위한 개혁이었다고 본다. 촛불 이후에도 이들의 삶에 전혀 변화가 없는 까닭은 ‘자본-권력-보수언론-종교권력층-사법부-김앤장과 같은 전문가 집단 및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전혀 균열되지 않았고, 문재인 정권도 이 동맹에 안주한 채 신자유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사회개혁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회귀한 채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킨 문재인 정권에 대해 울분을 가졌다. 조국에 대해서도 기득권의 온갖 특권과 편법을 답습한 것으로 간주하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지금 현실은 심각하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부터 이어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문재인 정권에서도 불평등은 심화하고 서민과 노동자, 농민, 청년은 생존위기에 처해 있으며, 수출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되며 경제는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있다. 1,100만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7%(2017년 기준 홍민기, <노동리뷰>), 배당소득의 93.9%를 차지할 정도로(국세청, <2017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불평등이 악화하였으며, 청년실업자는 30만 명에 이르며(통계청 2019년 8월), 971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였다.(고용노동부 2018년) 이에 진보 좌파들은 조국사태라는 현실에서 주요모순은 세대모순이 아니라 계급모순이고 현재 한국 사회가 마주친 문제 가운데 가장 극심한 것은 불평등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검찰개혁에 동조하면서도 문재인 정권이 불평등 완화와 사회개혁에 더 추진할 것을 요청하였다.

진보좌파의 현실인식은 타당한 것이었지만, 이들은 대중을 동원하여 사회개혁을 견인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전선이 형성되지 않고 진보언론조차 이들의 주장을 거의 보도하지 않는 구조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서초동에 모인 대중과 거리를 둔 채 연대하지 않음으로써 고립을 자초하였다. 사회개혁의 큰 틀에서 조국과 문재인 정권을 비판한 이들이 다수였지만, 극히 일부는 울타리 밖의 사람의 입장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를 투사하다 보니 조국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에만 매몰되었다. 진보좌파들은 대중 없이 관념에 머문 것,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 점, 디지털 시대에서도 그들이 혐오하는 극우세력과 다름없이 산업화시대의 논리와 운동에 머물고 있는 점을 뼈저리게 성찰하여야 한다. 이 성찰을 바탕으로 진보와 보수가 울타리 밖과 안의 사람들과 일치하지 않는 달라진 현실을 직시한 바탕 위에서 새로운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정의당은 한 마디로 조국을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데스노트에 오르게 되었다. 조국사태는 민주당과 구별되는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고 정의당의 위상과 이미지를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정의당은 조국을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는 중대한 실책을 범하여 민주당 2중대로 전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 달 동안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청년과 노동존중을 추구하는 진보적 대중들은 문재인 정권의 친재벌 반노동 행보와 기득권의 특권적 행태를 답습한 조국을 수호하는 담론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이들은 그나마 제도권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구현할 정당이 사라졌다는 좌절을 하였고, 이는 분노와 이탈로 이어졌다. 선거법 개혁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지도층의 변명은 가치와 이익, 대중과 권력 가운데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진보 정당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불평등 완화 없이는 어떤 개혁도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검찰은 연이은 무리한 수사로 자충수를 두어 조국을 피해자로 전환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령을 소환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가만히 있으면 나와 내 가족도 언제인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과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은 검찰 자신이었다. 검찰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부터 지금까지 기득권의 수호자로서 수많은 서민과 노동자, 독립투사와 민주 인사들을 부당하게 탄압한 과거를 뿌리에서부터 성찰하고 검찰개혁에 협조해야 한다. 아울러 검찰개혁은 공수처 설치나 검경수사권 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개혁은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검찰을 독립시키고 시민사회가 검찰의 권력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지검장의 직선제, 시민위원회가 검찰을 통제하는 시민검찰제, 범죄행위로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권을 이유로 형사법원에서 사소(私訴)를 제기하는 프랑스식 사인 소추제, 피해자나 변호사가 검사와 함께 공동 원고로서 소송에 참가하는 독일식 부대공소제 등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수처가 설치된다 하더라도 검찰은 괴물로 남을 것이다.

언론은 언제까지 ‘찌라시’와 ‘기레기’로 일관할 것인가. 언론인으로서 사명과 윤리를 송두리째 내버린 채 가짜뉴스와 궤변과 악플로 기득권이나 자기 집단의 수호를 위한 정치적 선동과 조작에 몰두한 이들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보수 언론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진리와 팩트의 조작에 치중할수록 언론과 광고의 중심은 점점 더 SNS로 이동함을 깨달아야 한다. 제4부로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는 철저히 보장하면서 가짜뉴스와 악플을 제한하면서 자유롭고 합리적인 공론장을 형성하도록 여러 개혁을 수행하여야 한다.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는 금수저의 대물림이 보장되고 언제든 ‘제2의 조국’은 양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교육개혁도 대학서열을 해체하고 입시를 철폐하지 않는 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특성화와 재정지원,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연계하면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국립대학을 네트워크화하는 것과 함께 지역의 문화와 산업과 연계하여 특성화하고 재정지원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경북대 섬유산업학부를 경북지역의 다른 대학의 섬유산업부의 교수와 학생과 하나로 네트워크하고 1년에 1,000억 원 정도씩 재정지원을 하고 이를 졸업한 이들이 대구 지역의 섬유 관련 산업체에 취업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1970년대까지 홍대 미대, 건국대 축산학과 등은 서울대보다 낫다고 자부하였으며, 지방의 국립대 또한 연고대 수준은 되었다. 세계 100대 대학의 서열과 재정은 비례한다. 재정은 별도의 세금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이명박 정권에서 행하였던 부자 감세를 원래대로 되돌리면 20조의 재정이 확보된다.

마지막으로 결과의 평등 없이 기회나 과정의 평등과 공정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교육개혁이나 언론개혁, 검찰개혁 등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고 불평등을 완화하지 않으면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왜냐하면, 불평등이 심할수록 기득권이 자신과 자식들의 자본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리창’을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권력과 자본, 정보를 동원하여 제도와 법을 바꾸고 편법을 구사하고 민중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심화한 사회에서는 누구나 ‘나경원’과 ‘조국’이 될 수 있다.

2016년 “이게 나라냐?”라며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대한민국이 진정 좋은 나라로 거듭나려면, 정부와 국민 모두 불평등을 완화하는 보편적 복지, 조세개혁, 경제개혁, 노동개혁, 일자리 창출에 우선하면서 시민이 주체가 되고 ‘차이의 평등’을 이루는 정치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럴 때 촛불은 비로소 항쟁에서 혁명으로 승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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