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종교 지도자들 간의 오찬에서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언급됐다. 기독교계의 문제 제기에 대해 문 대통령이 원론적 수준에서 답변을 한 것이지만, 최근 청와대의 외교사절단 오찬 행사에서 동성애자인 뉴질랜드 대사 부부(夫夫)가 문 대통령을 접견한 일과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오찬 행사 관련 사후 브리핑에서 "김성복 한국교회총연합회 공동대표가 성소수자 인권법 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면서 "거기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은 '동성혼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다만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박해받거나 차별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같은 대화가 오가자, 김희중 천주교주교회의 의장도 나서서 "천주교 입장에서 저희도 성소수자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인권이 존중돼야 하고 (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씀하신 바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지,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고 대변인은 전했다. 고 대변인은 이 대화 내용을 전하면서 "(김 대주교가) '구별'해서 말했다"고 표현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주한 외교사절단 초청 만찬 행사에서 필립 터너 뉴질랜드 대사를 접견하고 인사를 나눈 일이 있었는데, 이날 행사는 부부동반이었고 터너 대사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여서 남성 동반자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었다. 터너 대사는 행사 후 트위터에 쓴 글에서 "제 남편 히로시와 함께 주한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문 대통령과 영부인을 뵙게 돼 커다란 영광이었다"며 "문 대통령님 덕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했었다.
과거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2017년 4월 "동성애는 허용하고 말고 찬반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각자의 지향이고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라면서도 "동성혼까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로 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바 있고, 특히 "군대 내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성소수자·인권운동 단체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지만 동성혼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은 대선 전부터 그대로 유지돼오고 있는 셈이다.
한편 고 대변인에 따르면, 김성복 목사는 이날 오찬에서 성소수자 문제 외에도 "국민 통합에 종교인이 앞장서 달라는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지만 분명 한계도 있다"며 "일본과의 수출 규제 문제 같은 외교 사안에 대해서도 국민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앞장서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또 "정부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갈등을 해소하는 단초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정부도 통합에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방향에서 발언한 셈이다.
김 목사는 기독교계 내에서 중도·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한국교회총연합회'를 대표해 이날 오찬에 참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무효와 문 대통령 하야 등을 주장하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자리를 사실상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한기총은 2017년 12월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는 대표자(당시 엄기호 목사)가 참석했으나, 올해 2월 18일 오찬 간담회 때부터는 참석 대상이 아니었다.
반면 기독교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이홍정 총무는 이날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와 비교하면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적대감을 극복하고 평화, 번영, 통일을 본격화하는 '행동하는 정부'"라며 "현재 북미 관계가 장벽을 넘지 못해 남북공조 또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지만, 남북의 평화적·자주적 공조가 유보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고 대변인은 전했다.
김희중 대주교도 "현 정부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올바르다고 확인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한 길을 가기를 바란다"고 말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오도철 원불교 교무도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갖는 신뢰가 상당하다"며 "그만큼 검찰·언론·교육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도 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종교 지도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생각이 다양한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증오와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라며 관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종교가 종교 간 화합을 위해 발전해 왔듯 국민들 사이의 화합에도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NCCK와 조계종에서 언급한 남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에 있어 정부가 속도를 내 달라는 요청도 있지만,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며 "그래서 정부는 양쪽을 다 조화시키려 하는데, 이 시점에 통합된 국민들의 힘이 있다면 어느 쪽이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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