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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이란 이름 아래 저임금 노동에 내몰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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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이란 이름 아래 저임금 노동에 내몰리는 아이들

[기고] 한국교육의 가장 아픈 곳을 응시하다

고등학교 현장실습을 두고 교육부는 훈련과정의 한 부분으로 '학습'한다고 하지만 학생들은 산업현장에서 임금노동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고가 날 때마다 사회적 언론에 몰매를 맞고 반복되는 대책을 내놓았다. 앵무새처럼 무의미한 현장실습 내실화 정책을 발표한다. 현장실습을 훈련이라고 했다가 노동이라고도 하는 등 말 바꾸기를 일삼는다. 그 결과, 현재는 현장실습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종합고의 직업교육과정, 일반계고 직업교육 위탁과정은 우리교육의 가장 아픈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불평등 해소의 논의 장에 초대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분리교육이 담긴 의미, 즉 어떻게 불평등한 교육문제를 해소해나갈지,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산업체의 인력 소용에 맞추는 훈련이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적합한 교육이라고 각색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훈련과정으로 운영되는 현장실습제도 해소는 직업계고의 교육 정상화와 내실한 교육 운영을 촉발하는 첫 단추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합뉴스

'현장실습'은 훈련과정의 한 요소

누구나 노동자가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면 어색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하게 된다. 낯선 일터에서 초기에는 당연히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기업은 이런 부분에서 어떻게 노동생산성을 높일까? 기업은 생산공간이 아닌 곳에서 별도의 훈련공간을 마련한다. 그 공간에는 실제 생산환경과 유사한 설비를 마련한 뒤 훈련교사를 배치한다. 누구나 낯선 생산도구와 직무환경에서 능숙하게 작업을 할 수 없기에 이 공간에서 생산도구 실습과정을 거쳐 생산현장에 배치된다.

이것뿐인가? 생산성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의 기술 수준에만 있지 않다. 노동집단 전체의 기술 수준에 있다는 점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 개별 공동체의 독특한 상호 소통 방법, 노동집단에서 숨어있는 암묵적 기술 형태 등을 익히는 공백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현장실습이라는 직무활동 기간은 훈련이란 전체 과정 중에서 훈련공간이 아닌 생산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자집단 간 포괄적인 기술전수를 의미한다. 이는 두 가지 관점이 추가된다. 낯선 생산현장에서 적응하는 시기와 노동생산 전체 주기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시기이다. 능숙한 노동자(숙련노동자)로의 성장은 끊임없는 학습, 노동, 사색(교육의 하위 3요소)이 병행되는 입사 초기 이외에도, 변화되는 기술이 현장에 적용되는 시점, 이직 시기, 노동자 집단 구성원이 변화하는 때 등 노동자의 생산 주기 내내 일어난다.

결국, '현장실습'은 생산공정 적응기간이며, 기업에 이익을 주는 노동자의 직무향상활동이다. 그래서 현장실습은 노동시간에 산정되어야 한다. 또한 기업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된 노동행위라 보아야 한다.

훈련비용을 기업은 왜 적게 투자하는가?

기업 훈련원의 훈련과정 비용은 국가 지원에서 충당하고 있다. 기업 내 훈련원 기간은 채용을 전제하지만, 배움의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해야하는 차원에서 수당 성격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다양한 국가 보조금, 훈련지원금, 취업 장려금, 장학금 등의 형태로 기업이 정부로부터 직·간접 해택을 받고 있는 식이다.

훈련비용은 세제해택 등의 방식으로 적극 장려하지만 기업은 이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서 줄여나가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기업 내에 있어야 하는 훈련원을 노동부 관할의 국가기관(훈련소)에 의존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신생분야, 미래성장분야, 기업이 위험을 가질 수 있는 분야 등 기업이 위험부담을, 즉 직접 투자를 꺼리는 곳에 사회적 자산이 투입되는 식이다.

즉,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사내기업의 훈련원이 점차 국가가 운영하는 직업 훈련소로 이전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무한 경쟁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주의 경쟁 구조 속에서 살기 위해 이윤 추구하는 기업이 훈련비용 투자를 꺼리고 있으며, 특히 낮은 단계의 훈련은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고 국가 기관으로 떠넘기고 있다. 그리고 교육부는 이 같은 기업의 경영전략을 교육적 성찰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그 모습이 고등학교에서 운영 중인 현장실습의 형태로 저숙련 일자리에 노동자를 충족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현재의 교육부는 직업계고등학교에 기업 훈련원(노동부 훈련소) 기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현장실습은 어떤 법률을 개정해도 교육활동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일·학습병행제법을 통해 더욱 현장실습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학생을 현장실습이라는 포장 아래 저임금노동으로 내몰고 있다.

현장실습은 구조적 노동착취 제도

취업 연계, 현장실무 경험 익힘 등으로 현장실습을 포장해도 현장실습은 직무훈련과정에서 생산노동과정으로 넘어가는 중간지대에 불과하다. 노동과 훈련의 공동분모지점인 셈이다. 이런 방식의 훈련은 실습장과 같이 별도 훈련장소가 아닌 산업현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우 명확하고 확실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런 전제적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현장실습은 훈련이 아니라 저임금노동으로 흘러가게 된다.

최근 현장실습에 참여하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있다. "다시는 아무도 죽이지 말라"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그분들의 증언은 학생들이 임금노동을 했고, 노동자로서 대우받지 못하였으며, 그들을 보호하는 법은 있지만, 있으나마나한 법이었다며, 취약했던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성찰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얇은 곳이 가장 먼저 터지는 현실. 기업이 사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구조가 그들을 이 세상 밖으로 떠나게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장실습은 교육이 아니다

현장실습으로 노동자의 기술향상과 학업의 병행이 가능하다는 주장, 회사 내 청년층이 산업현장에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신규 노동자들의 직무능력을 강화시킨다는 교육부의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교육이 계층 상승의 도구는 아니다. 교육은 사람살이의 이치를 알고 살림살이의 기초를 터득하여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인간이 사회체제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능을 익히는 것이 교육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 교육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교육의 본래 취지를 이어나가는 게 필요하다. 그것의 시작은 산업 중심에서 교육 중심으로 현장실습을 전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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