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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만 없애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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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만 없애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사라질까?

[안종주의 안전사회] 쪼개져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문제점 파악해야

지난 2일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 멧돼지 폐사체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검출됐다. 지난 11일에는 연천군과 철원군의 비무장지대 남쪽 민통선 내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 폐사체 2마리의 시료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돼지열병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어 국립환경과학원은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진현리 민통선 내 군부대가 12일 신고한 멧돼지 폐사체 2개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13일 밝혔다. 이로써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이 확인된 야생멧돼지는 모두 5마리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야생멧돼지가 공공의 적이 됐다. 개체수가 최근 크게 늘어난 멧돼지가 농작물을 마구 먹어치우거나 훼손해 산간마을 농민의 적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인천‧서울‧북한강‧고성(46번국도) 이북 7개 시‧군의 멧돼지를 모두 포획·사살하기로 한 것과 같은 극약처방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내 야생멧돼지에서 4건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면서 정부는 13일 이런 극약처방 대책을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야생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된 철원, 연천 지역을 감염위험지역으로 지정하고 돼지와 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5개 지역과 인접 5개 시군은 '발생‧완충지역'으로 설정해 포획과 이동을 차단하기 위한 철책을 설치하기로 했다.

인천‧서울‧북한강‧고성(46번국도) 이북 7개 시‧군은 경계지역으로 구분, 멧돼지 전면제거를 목표로 14일부터 집중 포획이 실시된다. 경계지역으로부터 외부로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경계선 둘레 폭 2km구간으로 설정된 '차단지역'의 야생멧돼지를 전면 제거한다는 목표다. 당국은 이를 위해 무료 수렵장과 멧돼지 일제 포획주간을 운영하고 마리당 10만원의 포획 보상금을 지급키로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모두 야생멧돼지 탓?

하지만 이런 조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는 확산되지 않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지금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인된 경기·인천 지역의 양돈농장 14곳에서 멧돼지로 인한 전파가 있었는지는 단 한 건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 연이어 발생한 파주·연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경우도 멧돼지 때문이라는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국내에서 지난달 17일 처음 발병이 확인됐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최초 발생에 이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무려 13곳에서나 잇따라 발생했음에도 이 가운데 단 한 건도 감염경로를 모른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정부의 여려 대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방역망이 뚫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우리가 북한 지역 아프리카돼지열병 유행 정도에 대해 깜깜이기는 하지만 북한에서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국방부는 휴전선 남쪽 철책선이 완벽해 북한 멧돼지가 우리 쪽으로 절대로 넘어올 수 없음을 강조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해 북한과 방역 협력이 긴밀히 이뤄지지 않았다면서도 북한에서 (우리쪽으로) 확산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파주 농가 최초 발병은 북한 야생 멧돼지를 통해 전염됐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 처음에는 북한과 야생멧돼지에 관심 안 둬

두 발생지역이 모두 휴전선 인근 접경 지역이어서 주요 용의선상에 북한과 야생멧돼지를 올려놓는 자세가 필요한데도 북한 야생멧돼지 변수를 성급하게 배제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은 일찍부터 있었다.

일부 수의학 전문가들은 북한 지역 멧돼지가 우리 철책선을 직접 넘어 바이러스를 퍼트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북한이 아프리카돼지열병 창궐로 감염돼지를 마구잡이로 처리해 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이 하천과 강물로 흘러들어가 이 물을 남쪽 지역 야생멧돼지가 마셔 감염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한 원인과 전파경로가 나올 때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철저하게 확인 또 확인하는 것은 사람 감염병이나 가축 전염병 원인을 캐고 확산을 막기 위해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학조사 자세이다. 하지만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대응과 관련해서는 이런 자세가 갖춰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이번에 야생멧돼지에서 잇따라 원인바이러스가 검출됨으로서 이런 지적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예단이 매우 위험한 것과 똑같이 특정 매개체에 모든 것을 돌리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하다. 14건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모두를 야생멧돼지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전파경로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가축 전염병 역학조사 능력이 불신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그리고 앞으로 제대로 된 가축전염병 관리를 위해서도 우리의 역학조사 능력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쪼개져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문제점 파악해야

현재 야생멧돼지 관리는 환경부가, 가축전염병 관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각각 나눠 맡고 있다. 또 이번과 같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면 일선에서 방역을 담당하는 곳은 시도와 시군구 등 지자체이다. 이런 현실에서 가축전염병 관리를 위한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환경부는 야생멧돼지 실태와 야생동물 관리에는 경험과 지식을 지니고 있지만 가축전염병 관리와 가축전염병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거의 없다. 또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축전염병 관리 경험과 지식은 많지만 사육 가축이 아닌 야생멧돼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파 경로에 대해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환경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충분한 인력을 갖추고 교육훈련을 받아왔는지, 농림축산식품부와 일선 지자체에는 가축전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인력과 실력이 있는지, 역학조사를 제대로 해낼만한 능력을 지닌 베테랑 역학조사관들이 충분하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더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치명적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더라도 우왕좌왕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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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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