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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니 1천8백만달러, 핼리버튼 1백10억달러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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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니 1천8백만달러, 핼리버튼 1백10억달러 챙겨"

김재명의 뉴욕통신 <27> 체니와 핼리버튼의 정경유착

***김재명의 뉴욕통신 27 - 체니 부통령과 핼리버튼의 정경유착 내막
"부통령은 1천8백만 달러 주식 옵션, 기업은 1백10억 달러 챙겼다"**

미 부통령 딕 체니는 2001년 9.11사건 이전부터 이라크 침공을 부르짖어온 매파(the hawk)들의 좌장 격인 인물이다. 부시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가닥을 잡는 에너지특위(Energy Task Force)를 이끌면서 이라크 침공을 선창해 왔었다. 부시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폴 오닐의 폭로를 바탕으로 미 언론인 론 서스킨드가 올해 초에 펴낸 『충성의 대가』(The Price of Royalty)에는 "딕 체니 부통령은 9.11 테러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라크 침공을 선동했다"는 증언이 담겨 있다.

부시의 테러전쟁과 이라크 침공으로 최대호황을 맞은 기업은? 딕 체니가 5년간 CEO로 몸담았던 핼리버튼이다.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를 짓고, 이라크 석유시설 복구사업을 독점, 이라크에서만 110억 달러를 벌었다(핼리버튼 다음이 28억 달러 계약고를 기록한 벡텔 그룹이다). 핼리버튼의 이라크 재건사업 독점계약의 배후엔 딕 체니 미 부통령이 있다. 시사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 최근호는 "계약 스포츠 : 부통령은 핼리버튼을 위해 뭘 했는가"란 제목 아래 딕 체니-핼리버튼 정경유착의 검은 내막을 파헤쳤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체제가 무너진 과도기의 혼란 속에 핼리버튼이 이라크 특수(特需)로 떼돈을 벌고 있고, 그 배경엔 딕 체니의 정치적 입김이 서려 있다는 비판이 이 기사의 요점이다.

이 기사를 쓴 제인 메이어 기자는 △딕 체니가 경영자(CEO)로 몸 담았던 핼리버튼에 1,800만 달러 어치 주식 옵션 보유하고 있고 △시니어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1989-92년)으로 있으면서 핼리버튼과 관계를 맺었고 △핼리버튼 CEO 시절(1995-2000년) 외국 자회사들을 동원, 미국 법망을 교묘히 피하면서 이라크, 리비아, 이란과 모두 거래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즈음, 핼리버튼은 "이라크 위기가 우리에겐 기회"라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체니의 영향력 덕분에 이라크 재건사업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핼리버튼은 각종 바가지 요금과 과당청구로 폭리를 챙겨왔다고 비판한다. 미 관급공사가 정치헌금 신세 갚는 시스템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그 주요내용을 옮겨본다.(이 글은 시사월간지 <신동아> 3월호에 필자가 정리한 글을 다시 요약한 것임).

미 부통령 딕 체니는 말이나 행동을 조심스레 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체니는 1941년 미 네브래스카주에서 태어나 워싱턴의 권부(權府)에 자리잡기까지 63년 동안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이력서엔 한 부분이 실종돼 있다. 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큰 돈을 벌었던 5년 동안(1995-2000년)의 행적이다. 체니의 개인 이력서엔 단지 '경영자'(businessman)로 간단히 쓰여져 있지만, 그는 미 텍사스주 휴스턴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석유-가스 관련사업체인 핼리버튼(Halliburton)의 경영책임자(CEO)였다. 그는 정경유착을 통해 기업 매출액을 늘렸고 그 과정에서 그 자신도 부(富)의 성을 쌓아올렸다.

***1,800만 달러의 주식 옵션**

체니는 핼리버튼에서 5년 일하는 동안 무려 4,400만 달러를 벌었다. 비록 체니 자신은 "지금은 핼리버튼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핼리버튼으로부터 해마다 평균 15만 달러씩의 돈을 (부통령을 그만 둔 뒤에) 받기로 돼있다. 그뿐 아니다. 체니는 무려 1,800만 달러 어치의 주식 옵션을 갖고 있다. 체니는 그것을 언젠가는 자선기관에 기부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핼리버튼을 둘러싼 의혹을 잠재우진 못한다.

핼리버튼은 미 민주당을 비롯한 부시 행정부 비판자들로부터 걸핏하면 공격의 과녁이 돼왔다. 핼리버튼은 현재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에서 미국 기업으론 가장 큰 110억 달러 어치의 계약을 맺어, 이라크 특수(特需)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기업이다. 따라서 많은 반전론자들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뒤에 숨어있는 침공 동기를 핼리버튼에 대한 특혜와 관련지어 비판한다. 마치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당시 '베트남 특수'를 맞아 떼돈을 벌었던 다우 케미칼(Dow Chemical)처럼, 핼리버튼은 반(反)부시전선에 선 사람들에겐 상징적인 존재로 떠올랐다. 이를테면, 아이오와주 예선에서 승리하던 날 밤에, 미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주자 존 케리는 부시행정부가 핼리버튼에 준 이라크 특혜를 세차게 비난했다.

지금껏 체니는 "나는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계약을 둘러싼 미 행정부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9월 미 NBC TV방송의 간판프로인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에서도 "나는 (핼리버튼의 이라크 특혜와 관련,) 절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고, 개입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계약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주장을 폈다. 아울러 체니는 "핼리버튼이 매우 독특한 회사다. 핼리버튼만큼 대규모 엔지니어링 건설능력과 유전지대 작업능력을 갖추고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핼리버튼과의 '특수관계'를 묻는 언론사들의 질문 공세엔 구체적으로 답변하길 거부해왔다. 그는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뿌리치면서, 대변인 케빈 켈름스로 하여금 읽어보나마나 한 형식적인 답변을 인터넷 이메일로 보내곤 했다.

***"이라크는 제2의 골드러시 기회"**

핼리버튼은 이라크 재건사업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쿠웨이트에서 사들인 석유를 이라크로 넘기면서 미 정부에 6,100만 달러를 바가지 씌운 일도 벌어졌다. 핼리버튼은 석유 1갤런 당 2.38 달러를 매겼지만, 펜타곤(미 국방부) 회계감사원은 1갤런 당 1달러씩 바가지라는 걸 밝혀냈다. 비록 핼리버튼이 "우린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펜타곤 감사관은 조사위 구성을 고려중이다.

핼리버튼은 쿠웨이트 미군기지 장병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면서 무려 6.100만 달러를 바가지 씌운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월에는 핼리버튼의 두 임원이 쿠웨이트의 하도급 업체를 잘못 골라 630만 달러를 바가지 씌운 게 말썽을 빚자, 그들을 해고했었다. 그런 말썽이 일어났음에도 그 며칠 뒤 미 국방부는 핼리버튼과 12억 달러짜리 이라크 남부 석유생산시설 보수공사 계약을 맺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댄 구트먼 교수는 핼리버튼의 독점과 특혜가 심각한 문제점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트먼 교수는 "민간 계약자들의 영향력이 워낙 커져, 정부가 이를 감독한다는 것은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 핼리버튼이 바가지를 씌워 말썽을 빚어도, 워싱턴 정가에서 핼리버튼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못된다"는 얘기다.

최근에 핼리버튼 임원 가운데 한사람인 조지 시걸로스는 워싱턴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 모인 기업인들은 이라크 재건사업에서 계약을 따내고 싶은 마음에서 1인당 4백달러의 참가비를 냈다. 모임 주최측은 미 연방기관의 하나인 해외민간투자법인(U.S. Overseas Private Investment Corporation, 약칭 OPIC).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OPIC가 뿌린 안내문에 이라크를 "제2의 클론다이크'(Klondike, 캐나다 유콘강 일대의 금광지대. 1897-98년 사이에 이른바 골드러시 특수로 일시적인 호황을 누렸다-역자 주)로 묘사한 데 자극을 받아 그 자리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 날 시걸로스는 참석자들의 마음을 읽은 듯, 이렇게 입을 열었다. "미 독립전쟁 때 조지 워싱턴이 이끌었던 군대에 실탄을 공급했던 것은 바로 우리 민간기업인들이었다"(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이 버티는 것은 바로 핼리버튼을 비롯한 미 기업들의 지원 덕이라는 요지의 발언이었다-역자 주).

핼리버튼이란 기업의 성장사는 곧 정부를 끼고 전쟁에서 떼돈을 버는 정경유착의 기록이다. 핼리버튼의 건설엔지니어링 분야 자회사인 '브라운 앤 루트'(Brown & Root)는 1962년 핼리버튼에 인수합병된 회사다. '브라운 앤 루트'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 육군의 인프라 건설공사 계약의 85%를 차지했던 콘소시엄의 주역이었다(그 콘소시엄은 4개의 미 기업으로 구성). 베트남전쟁 반대데모가 한창일 때 '브라운 앤 루트'는 시위자들의 주요 비판과녁이었다. 베트남 참전군인들도 '브라운 앤 루트'란 회사이름을 '불태우고 약탈한다'는 뜻의 '번 앤 루트'(Burn & Loot)로 바꿔 부르곤 했다.

***"가장 X같은 마키아벨리같은 짓"**

1980년대 대부분을 하원의원으로 지낸 딕 체니는 1988년 조지 H. W.부시가 대통령이 되자, 국방장관(1989-92년)에 임명됐다. 체니-핼리버튼의 유착관계는 그때 본격화된다. 체니는 장관 재임 후반기에 미군 해외기지의 지원사업, 이를테면 급식, 세탁, 청소 등을 민간기업체에 용역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 용역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핼리버튼이 맡았다. 390만 달러를 받고 핼리버튼이 작성한 1차 보고서는 핼리버튼의 새 시장 창출 보고서나 다름없었다. 펜타곤은 다시 500만 달러에 2차 보고서 용역계약을 핼리버튼과 맺었다. 1992년 미 육군공병단은 (핼리버튼 보고서의 내용 그대로) 향후 5년 동안 핼리버튼에게 미군 해외기지의 지원사업을 독점하도록 맡겼다. 1992년말 소말리아에 미군이 개입하자, 핼리버튼은 지원업체로 900만 달러를 벌었고, 이어 발칸반도(보스니아)에서 5년 동안 2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펜타곤을 떠난 체니는 사조직을 만들어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고 정치헌금을 모아들였다. 신보수주의자(neocon) 두뇌들이 모인 미국기업협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도 관계했다. 연방선거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그 무렵 체니의 정치자금줄은 핼리버튼은 물론이고, 세계적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인 벡텔(이라크 재건사업에 28억 달러 어치 용역 수주) 등 현재 이라크에서 대규모 관급공사 계약을 맺은 회사들이 포함돼 있다.

체니는 1995년 핼리버튼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했다. 핼리버튼의 대주주들은 체니가 비록 기업 경험은 없지만, 영향력 큰 인물들을 두루 알고 지낸다는 점을 높이 샀다. 대주주들의 기대대로 체니의 핼리버튼은 성장을 거듭했다. 1998년 당시 미국은 이라크, 리비아, 이란을 '테러지원국가'로 낙인찍고 수출입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핼리버튼은 법망을 교묘히 피하면서 외국 자회사들을 통해서 이들 3개국과 모두 거래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다스리던 이라크의 경우, 체니는 자회사를 이용해 수백만 달러 어치의 석유채굴 관련부품과 기술 서비스를 팔아 넘겼다. 그런 점이 정치적 문제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체니는 2000년2월 핼리버튼의 이라크 코넥션을 끊었다.

2000년 봄 체니는 부시 공화당대통령후보 경선팀의 '부통령 물색위원회'(Vice-Presidential search committee) 우두머리가 됐다. 부시의 부통령 후보 선정기준은 "나에게 해가 안될 인물'이었다. 체니는 그가 꼽은 여러 후보들로부터 꾀나 두툼한 서류들을 요구했지만, 결국은 그 자신을 부통령 후보로 뽑았다. 체니의 오랜 친구인 스튜어트 스펜서는 "내가 목격한 가장 X같은 마키아벨리같은 짓(Machiavellian fucking thing)이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테러와의 전쟁, "핼리버튼만 돈 벌잖아"**

9.11 뒤 부시행정부가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핼리버튼에게 큰 이익을 안겨 주었다. 앞서 살펴본대로 해외 자회사들을 통한 '불량국가'들과의 거래 사실도 핼리버튼에겐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미 해군은 쿠바 관타나모 기지의 포로수용소를 짓도록 핼리버튼과 계약을 맺고 3,700만 달러를 지급했다. 미 국무부는 탈레반정권이 무너진 아프간 카불에 미 대사관을 짓도록 핼리버튼에게 1억달러를 건넸다. 핼리버튼은 아프간뿐만 아니라 쿠웨이트,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조지아공화국, 그리고 이라크에서 왕성한 기업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2년 핼리버튼의 연차보고서는 부시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핼리버튼에게 또다른 성장기회를 가져다 주었다고 적고 있다.

펜타곤이 이라크 석유산업 복구를 위해 핼리버튼에게 70억 달러 어치의 계약을 맺은 것은 전쟁이라는 비상국면 아래서 이뤄진 것이었다. 지난 2002년 가을, 핼리버튼은 이라크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이라크 유전지대가 파괴되고 불탈 경우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도록 펜타곤으로부터 비밀리에 용역을 받았었다. 그 무렵은 미 의회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침공 전권을 줄 것인지를 논의 단계에 있었다. 3.20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3월초 미 육군은 핼리버튼과 용역계약을 맺어 이라크 유전지대를 핼리버튼에게 맡겼다. 그리고 곧 전쟁이 터졌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펜타곤은 이라크 전역의 석유산업 재건용역사업을 핼리버튼에게 넘겼다. 그런 핼리버튼의 뒤에는 딕 체니란 든든한 후원자가 버티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재건 프로젝트는 200억 달러가 넘는 규모다. 부시 행정부에 선을 대고 있는 한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 러시아처럼 이즈음 미국이 부패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뇌물이 오고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체니는 펜타곤에 전화를 걸어 '이번 계약을 핼리버튼과 맺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제대로 선을 찾아 저녁식사를 같이함으로써 일이 끝난다"

현재 이라크는 '이라크 재건특수'라는 기회가 주어진 땅이 됐다. 그런 기회를 찾아 한몫 잡으려는 많은 사람들, 이를테면 기업인, 그들과 공생하는 변호사들이 몰려간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사업을 하려는 많은 기업인들이 혼란을 느낀다. 워싱턴 정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공화당계 로비스트 찰리 블랙은 불만이다. "바그다드에 가보면, 펜타곤이 결정권을 쥐고 있으므로 그곳에 가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펜타곤에 가보면, 바그다드(폴 브레머의 이라크 임시행정청) 쪽에서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런 와중에 핼리버튼만 돈을 벌고 있다. 그렇다면 가까운 사람만 챙겨주기(cronyism) 정도가 심해졌다는 것을 뜻하는가. 나도 그렇게 챙겨줄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관련링크 http://www.newyorker.com/fact/content/?040216fa_f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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