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넘도록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대중은 분노를 표출하였다. 이 자리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일터, 학교, 카페와 식당, SNS에서 조국사태를 놓고 대거리에 몰입하였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합리적이고 올바른 공론장을 형성해야 할 언론과 시민사회조차 조국사태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무책임한 선동과 가짜뉴스가 진실을 덮었고 대중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 진보진영조차 자유주의 세력과 신자유주의 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논쟁하였다. 엄청난 국력의 낭비이자 소모전이다.
소위 '조국사태'에는 여러 층위의 문제와 모순이 중첩되어 있다. 상식과 공정에서 보면, 과연 무엇을 상식과 공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어느 선에서 준수를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권력의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도 죽음에 몰아넣었던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어떻게 견제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의 과제가 설정된다. 가짜뉴스와 '아님말고' 식의 무책임한 보도와 선동을 인식한 이들은 정론을 펴고 올바른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는 언론개혁을 원한다. 청년의 관점에서는 잘난 부모를 두지 못한 탓으로 입시와 취업에서 원천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좌절과 분노를 안겼고, 학벌 없는 사회, 대학서열을 해체하는 개혁을 바란다. 울타리 바깥 사람들의 계급적 관점에서 보면, 나경원이든 조국이든 권력과 자본을 강화하고 세습하기 위하여 여러 편법을 동원한 기득권에 지나지 않는다. 세대모순이 아니라 계급모순이 주요 모순이라 보는 이들은 문재인 정권이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회귀하여 노동배제에 가담하고 불평등 완화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비판하며 경제개혁과 사회개혁을 열망한다.
이제 사태의 해결과 모순의 극복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 길은 2016 촛불의 명령대로 한국사회의 모순, 특히 불평등, 경쟁, 차별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득권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과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소수가 아닌 모두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검찰개혁, 대학서열을 해체하고 학벌사회를 철폐하는 교육개혁, 가짜뉴스를 일소하고 정론을 창달하는 언론개혁, 재벌의 독점과 야만을 제한하는 재벌 개혁, 노동존중을 제도화하는 노동개혁, 불평등을 완화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엔 지면관계상 검찰개혁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동안 검찰은 공정한 정의의 집행자와는 거리가 있었으며,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 역할에 더 충실했다. 검찰은 기소독점권과 영장청구권을 가진 상태에서 기소편의주의를 보장받음으로써 사건 발생에서 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사절차를 독점하면서도 견제는 거의 받지 않는 괴물이었다. 이로 수많은 민주 인사와 노동자, 서민들이 검찰로부터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당하였고, 그 중 상당수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반면에 돈 있고 힘깨나 있는 이들은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면죄부를 받았다. 정권 · 자본과 검찰 사이의 유착은 '불공정함에 대한 울분의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이번 사태도 연이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자충수가 되어 조국을 피해자로 전환시켰고 대중의 분노를 촉발시킨 데서 기인하였다.
검찰개혁은 시대적 소명이다. 하지만, 지금 정권과 검찰에서 추진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와 특수부 축소, 검경 수사권 조정, 피의 사실 공표 금지는 미봉책이거나 반개혁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공수처를 국회로 귀속시켜 검찰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지만, 국회가 개혁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수 정당의 야합에 따라 수사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린 공수처 설치법에 더하여 특수부의 역할을 축소하면, 검찰의 권력을 제한하는 대신 기득권에 대한 통제가 더 느슨해지고 비리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피의 사실 공표를 금지하면,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는 하지만, 정권과 재벌 등 거악의 범죄를 언론에 흘려 대중의 힘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것 또한 원천봉쇄될 수 있다. 경찰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인권유린과 부패를 방조할 수 있다.
검찰개혁은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검찰을 독립시키고 시민사회가 무소불위의 검찰의 권력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공수처 설치나 검경수사권 조정도 이 방향에서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또 다른 괴물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시민위원회가 검찰의 기소독점을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을 교육감처럼 시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를 폐지하고 기소법정주의를 도입해 검찰의 자의적 기소권 행사를 제한하고, 개별 사건 수사에 대하여 상급자의 지휘권을 박탈하여 담당 검사가 오로지 양심과 법률에 따라 수사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이 검찰의 기소독점을 제한하는 시민검찰제, 범죄행위로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권을 이유로 형사법원에서 사소(私訴)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프랑스식 사인 소추제, 피해자나 변호사가 검사와 함께 공동 원고로서 소송에 참가하는 독일식 부대공소제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경찰을 개혁하고 경찰서마다 시민위원회를 두어 경찰의 유착과 부패, 인권탄압을 감시해야 한다.
한국 사회처럼 불공정함에 대한 대중의 울분이 크고 또 실천으로 이행되는 나라는 없다. 촛불 이후 국민은 한 단계 더 상승하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의 구습에 머물고 있다. 이제 그 길고도 어두운 터널에서 나와 국민의 울분을 조장하는 데서 줄이는 검찰로 거듭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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