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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탈북민을 대하는 방식은 '차별'도 아닌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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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이 탈북민을 대하는 방식은 '차별'도 아닌 '배제'

[먼저 온 통일은 왜 남한을 떠났나] 김화순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인터뷰

<프레시안>은 '북도 남도 아닌' 제3국으로 떠난 탈북민 최승철 씨와 김민재(가명) 씨를 만났다. 그리고 4회에 걸친 인터뷰 기사를 통해 왜 '먼저 온 통일'이었던 그들이 남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전했다.

그들에게 남한은 '경유 국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제3국으로 떠날 작정으로 남한에 온 게 아니란 이야기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남한에서 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이미 한 번 목숨을 내놓고 터전을 옮겼던 이들은 정착을 갈망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정착에 실패했다. 그들을 남한 사회에 등 돌리게 만든 것은 사회적 차별이었다. 그들은 남한에서 철저히 '2등 국민'이었다. 보통의 남한 사람과 다른, 분리된 삶을 살았다.

김화순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프레시안>과 만나 탈북민을 좌절하게 만드는 정착 시스템의 문제를 짚었다. 북한, 통일연구자로서, 탈북민 연구자로서 김 연구원이 깨달은 정부의 탈북민 정책은 한마디로 '분리'였다. 그는 지금의 탈북민은 '차별'보다도 못한 '배제'에 직면해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가 평화와 통일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탈북민 정책에 무심한 데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평화체제에 알맞은 탈북민 정책이 필요하다"며 "국가가 보호라는 명목하에 탈북민을 남한 사회로부터 분리해서 별도로 관리하지 말고, 북한 주민과 남한 주민의 화합을 지자체와 시민의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지난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김 연구원과 나눈 대화 전문이다.

- '먼저 온 통일은 왜 남한을 떠났나' 연재 보기
①"평양 시민을 탈북민 대하듯? 통일 때려치우라 할 것"
②"경상도, 전라도 사람처럼, 난 북한 사람입니다"
③"목숨 걸고 탈북했는데 남한에서 겪은 건 차별"
④"탈북민이 받는 돈은 내 돈이니 감시하라"던 한국 사람들

"탈남의 원인은 '사회적 인정'의 결여"

프레시안 : 프레시안의 '먼저 온 통일은 왜 남한을 떠났나' 연재 기사를 본 소회 먼저 부탁합니다.

김화순 : 세 편 다 제3국으로 떠난 탈북민의 이야기였는데요. 기사를 읽으면서 이들의 시각이 남한에 사는 탈북민보다는 남과 북에 대해 보다 균형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에 있는 탈북민들은 우리 사회를 제대로 경험하면서 살아간다기보다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과 만나면서 정부의 관리를 받으면서 분리된 채 살아가니 균형 있는 시각을 갖기 어렵죠.

1,2편에 등장한 최승철 씨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최 선생님이 한국에 거주할 때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탈북민 사회의 분위기는 어떻게든 떼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어 보겠다는 꿈과 욕망이 팽창하는 시기였는데, 최 선생님은 그런 물질 지향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가는, 자신만의 가치를 가진 이상주의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최 선생님이 겪은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보니, 제3국에 가서 살면서 남한과 북한의 장단점을 더욱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게 된 것 같아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야말로 '통일인'이라고나 할까요? 남과 북의 장단점을 예리하게 보면서 통일을 현실화하기 위해 애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화순 한신대학교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많은 탈북민들이 힘겹게 북한을 나왔으면서도 적응에 실패해 남한을 떠나게 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탈남한 탈북민 수를 추산한 통계도 일부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많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연구 등을 통해 많은 탈북민들을 만나보신 경험을 토대로, 탈북민들이 남한 정착 과정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김화순 : 탈북민들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간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연구 초기에 찾은 답은 '괜찮은 일자리'였습니다. '괜찮은 일자리'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사용한 용어인데, 한마디로 '고용 안정성'이 높고 '높은 임금' '자아실현 가능'이 가능한 일자리를 말합니다.

많은 탈북민이 북한에서 봤던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남한 사회에 대해 꾸었던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괜찮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싶어도 그런 일자리에 들어갈 만한 학력이나 경력도 없으니 2차 노동시장-주변부 일자리에서 일합니다. 주로 음식점이나 숙박업소에서 여성들은 주방일이나 서빙을 하고 남성은 건설 인력으로 일합니다. 노동 강도도 너무 강하고 임금은 적은 곳에서 일하지요. 최저 임금을 받고 휴가도 제대로 쓸 수 없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한 일자리들.

저는 탈북민이 괜찮은 일자리에 얼마나 들어가느냐가 남한 정착의 성공을 가늠한다, 이런 생각을 한동안 가졌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이런 생각은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2011년부터 북한 노동 연구를 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괜찮은 일자리의 부족,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요.

프레시안 : 그게 무엇인가요?

김화순 : 저는 '사회적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말한 '인정 투쟁' 개념 속의 사회적 인정 말입니다. 악셀 호네트는 사회 문제 뒤에 감춰진 사회적 투쟁의 근본 원인을 인정이라고 보았으며, 불인정 즉 무시와 모욕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폭동이나 봉기의 원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령을 정점으로 하는 공동체의 성격이 극단적으로 강한 북한에서는 사회적 인정이 그 이상의 절대적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공민들은 하나의 유기체인 국가로부터 정치사회적 생명을 부여받은 가치 있는 존재들이며 수령과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탈북민한테서 들은 이야기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한 일이 집 문을 열어놓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웃과 소통하기 위해서요. 북한 사회에서는 공부도 운동도 여가도 모두 집체적(집단적)으로 합니다. 같이 놀고 같이 즐기고 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견고하게 촘촘하게 짜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해야 할 임무가 있는 중요한 공민이라는 인정을 받습니다. 극단적으로 '과잉사회화'되었다고 할 만한 관계 속에서 피로감이 크지만, 그 속에서 얻는 사회적 인정이 주는 힘이나 정서적 안정감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각자 먹고 살기에만 바쁘지 나의 존재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란 개념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직장은 정치·사회 공동체의 기본 단위로서 함께 살아가는 공장 공동체의 힘은 클 뿐 아니라 정서적 교감의 밀도가 강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직장은 어떻습니까? 원자들이 모인 또 하나의 생존투쟁의 장일 뿐이지요.

한국에 왔을 땐 처음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용기 있게 목숨 걸고 탈북했다고 치켜세워주는 것 같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막막한 세상을 혼자 살아나가야 하는 먼지 같은 존재가 되죠. 그러면 고립감과 자기비하에서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북한에서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의 정치사회적 생명이 스러졌다고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야말로 탈북민들이 남한 정착에 있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자 직장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찾은 답이 모든 탈북민에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수의 탈북민들에게 적용되는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북민의 현실은 '차별'이 아닌 '배제'"

프레시안 : 탈북민이 고립감에서 시달릴 수밖에 없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프레시안(최형락)
김화순 : 탈북민과 남한 주민의 만남에 환경적·구조적 제약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탈북민을 정착 초기에 누가 케어(care)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탈북민은 공안 경찰이나 국정원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과거 중앙합동신문센터였던 대성공사 그리고 하나원에서 탈북민들을 처음 반 년 동안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센터에서 별도로 정착 서비스를 받으면서 탈북민은 초기 정착 시부터 일반 시민들과는 다른 경로에 들어서게 되고 죽 그렇게 살아가게 되면서 시민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시민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보수기독교나 보수 내지 극우세력이라고 불리는 단체들과 주로 접촉을 하면서 우편향된 정치 세력으로 육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리된 서비스 전달체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통합을 할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민은 차별받고 있을까요? 저는 '차별'이라는 용어가 이들의 상태를 표현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배제'가 맞습니다. '배제된 통합'만이 존재하고 있지요. 그들을 잠재된 적이나 간첩으로 정보수집의 대상으로 보고 이들을 분리하여 관리하는 현재와 같은 문제를 풀지 않는다면, 남한의 시민들이 그들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을 것이며 탈북민과 남한 주민의 관계는 계속 평행선을 달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탈북민을 남한 주민과 동등한 자율적 주체로서 보고 살아가려는 남한 내 시민 사회 세력이 그들과 자유롭게 만나는 것 자체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탈북민이 시민 사회라는 영역을 마주하는 데서 오는 혼란이 있겠죠. 그런데 남한에 왔으면 남한 식으로 대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탈북민을 대하는 정부의 방식은 북한의 방식입니다. 북한에서 마치 보위부나 보안원이 관리하듯 한국에 오면 국정원이나 경찰이 관리하는 거죠. 행자부가 아닌 통일부 산하 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이 이들을 별도로 관리하고요. 정부는 이들을 분리하여 또 하나의 북한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프레시안 : 중앙 정부가 가진 탈북민에 대한 관리 권한을 어떤 식으로 줄여야 할까요?

김화순 : 지금 중앙 정부 즉 통일부가 하는 역할을 지방 정부가 대신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 시민으로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적어도 지역사회나 주민 사이에서 분리되거나 배제되는 일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보호가 아니라 통합을 해야지요. 탈북민들이 남한 시민사회에서 융화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원래 시민사회에 들어갈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수 집권 세력은 왜곡된 진보·보수의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적극 이용하여 의도적인 이념적 갈등과 분열을 통해 탈북민들을 긴요한 정략적 자원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일종의 '현대판 서북청년단'처럼요.

청주교대 선우현 교수는 시민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남한 내 진보 진영 역시 남북 관계를 상호 협력적인 평화 공존 관계로 '정상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 집권층과의 관계 악화나 마찰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정적 요인으로서만 탈북민들을 포착해 내기에 급급해서 탈북민을 멀리해왔다고 비판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북에서 온 사람과의 연계가 항상 치명적인 공안사건으로 이어졌던 과거사가 민주화운동 세대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역사가 큰 작용을 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탈북민 통합을 '배제적 통합'이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프레시안 : 조금 더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화순 : 일단 하나원 교육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대신 지역 사회와 연계해서 민주 시민 교육을 받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그게 평화체제의 교육입니다. 하나원의 경우 현행 입소 기간이 3개월인데, 2~3주여도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원 교육을 1년간 해야 한단 주장도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원을 마치 '인큐베이터'라고 생각하니, 3개월 가지고 되겠냐는 논리였지요.

그런데 인큐베이터가 점점 필요 없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시장'의 기능이 커지고 있거든요. 지금의 탈북민들은 20년 전처럼 식량난에 헤매던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들어오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미 '시장화'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시스템은 계속 분리를 고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중앙정부가 탈북민과 남한 시민 사회와의 분리를 원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화순 : 어느 조직에서나 발견되는 문제이지만, 거칠게 말하면 '밥그릇 싸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이 클수록 예산을 많이 받고, 행정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관리 대상이 많을수록 입김이 센 조직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수만 명의 탈북자들을 관리하고 있는 통일부 차원에서는 자신의 권한을 놓는 것을 원치 않는 듯합니다. 중앙정부 중심주의가 낳은 문제죠. 행정 서비스 대상자가 원해서 하는 분리가 아니라 철저히 관리자를 위한 분리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이유, 탈북민을 시민사회로부터 분리시키면서 그들에게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해왔죠. 제가 아는 탈북민 중에 TV에 자주 나오는 분이 있어요. 그분도 북한에서 막 내려와서 아무것도 모를 때 5만 원 받고 댓글 쓰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당시 청와대에서 따로 지령이 오는데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어요? 그분들도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거죠. 그리고 국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인정 욕구가 충족되니까요.

▲ 해외 대사관으로 뛰어드는 탈북자들. ⓒ프레시안 자료사진


"진보, 탈북민 문제에는 낙후된 생각 갖고 있다"


프레시안 : 현 정부 들어서 자신의 역할을 혼란스러워하는 탈북민이 많습니다.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받아왔는데, 평화를 논하는 지금 시기에는 쉽지 않을 테지요. 한반도 평화 체제 이행기에서 탈북민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화순 : 저는 탈북민에게 어떠한 특별한 정치적인 역할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짐이고, 또 많은 폐해를 낳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의 역할이 현실적으로 완전히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만요. 아무래도 학자니까 분석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요새 탈북민 유튜버들을 많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많이들 유튜브를 하지만 특히 탈북민 사회에서 유튜브가 워낙 유행처럼 번져서요. 과연 유튜브에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튜브가 됐든, 어떤 통로가 됐든, 북한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게 탈북민의 올바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미디어나 우리 주변에는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북한에 대해 억지로 과장해서 깎아내리지도 않고, 혹은 억지로 포장하려 하지도 않는 분들이 분명히 계십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특징은 대부분 조용히 산다는 겁니다. 조용히 살고 취업을 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면 북한에서도 열심히 일하면서 살았으면, 여기 와서도 똑같거든요. 저는 서베이(조사)를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그런 분들은 본인이 뭘 하겠다고 먼저 나서질 않는다. 그렇지만 세미나라든가 초대해서 이야기해보면, 북한 사회에 대해서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 분들만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딜 가나 똑같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탈북민도 한 덩어리가 아니란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 덩어리로 보기에 그들은 각자 너무 다양한 동기를 갖고 남한에 왔습니다. 평화체제를 반대하거나 이런 흐름을 저해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다양한 탈북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을 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현 정부에 대한 언급이 나왔으니 여쭤보겠습니다. 현 정부가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북한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반면 탈북민 정책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는 비판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김화순 : 이 정부의 탈북민 정책은 방향이 안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제부턴 남북 교류만 한다. 탈북민 정책은 지금까지 하던 거를 없앨 수는 없으니까 유지한다' 하는 느낌이랄까요? 세부 정책들도 결국은 과거 보수 정권의 정책을 단순히 재배치만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탈북자들 정책에 있어선 정말 낙후된 과거 인식을 갖고 있어요.

물론 탈북민을 보수 정권의 홍위병으로 만든 건 과거 보수 정권입니다. 그렇지만 과거 정부가 그랬다고 손 놓고 있는다면, 탈북민은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 문제를 떠올려 보죠. 새로 위안부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문제를 정리해주려고 노력해야죠. 그게 국가와 정부가 할 일 아닙니까? 문재인 정부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방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 탈북민을 대상으로 연구와 설문조사를 많이 하셨는데, 연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어떤 점이었나요?

김화순 : 5~6년 전까지는 탈북민 조사를 많이 했고, 이를 통해 정착 정책에 대한 여러 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탈북민 전문 연구자들은 탈북민 정착 관련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조사 대상자 접근이 너무 어렵고 모집단을 알 수 없으니 표본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하나재단이 조사자료 수집을 독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인데, 이때 여러 개의 국책연구원이나 민간 대학기관, 조사전문회사가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여러 논의를 내놓고 정책 제언을 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러한 당연한 상식이 탈북민 분야에서는 2012년 이래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2010년 남북하나재단이 만들어진 이래 자체 하나재단 자체 상담사를 통해 탈북민을 조사하고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를 명분으로 원자료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조사들이 행해졌지만 실제 자료가 분석되어 정책에 반영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어 수십억 원의 국고만 낭비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투명사회를 외치는 전체 국가 정책 기조와 다르게 탈북민 자료의 비공개주의는 더 강화되었고, 하나재단 홈페이지에는 실태조사 보고서 하나도 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집된 자료들은 오로지 국회에서 정착 정책 비판을 받을 때 정착정책이나 담당기관의 방어용으로만 쓰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탈북민 실태조사를 담당기관의 직원이 할 게 아니라 전문조사기관에 맡기고 원자료를 공개하여 정책에 수립하는 상식적인 절차가 탈북민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사 사건'은 탈북민 이슈가 아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지난 8월 탈북민 모자 사망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아사'로 결론이 나자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면서 광화문에는 추모 천막이 세워지기까지 했습니다. 탈북민 이슈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보면서 '탈북민을 더 철저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지는 게 탈북민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화순 : 저는 이 사안이 탈북민 이슈가 아니라고 봅니다. 탈북민은 한국에 오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북한이탈주민법'에 의해 삶이 규정되어집니다. 이 법에 따라 탈북민은 한국에 입국한 이후 5년간 보호를 받습니다. 이 법에 의하면,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된 고(故) 한성옥 씨는 탈북민으로 규정해선 안 됩니다. '탈북 모자 아사 사건'은 엄밀하게 말해서 서울시에 관리책임이 있습니다. 탈북민의 아사가 아니라, 절대빈곤층의 고독사의 맥락에서 보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 이후 신변보호담당관이 혼자서 34.4명이나 되는 탈북민을 맡고 있다고, 경찰을 늘려 경찰 1인당 담당하는 탈북민 수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도 나왔는데,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 설사 탈북 모자가 아사했다 하더라도 경찰이 이를 책임질 문제는 아닙니다. 사각지대에 있는 절대빈곤층 문제를 다루는 사회복지 영역에서 다룰 문제입니다. 온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어도 탈북민 문제만 생기면 뭐든지 안보 논리가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법 제4조 1항에는 '대한민국은 보호대상자를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특별히 보호한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보호라는 의미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미도 큽니다. 보호라는게 인도적 의미도 있지만 매우 반인권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변 보호라 함은 원래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각종 위해의 발생을 방지하고 그 신변을 보호하는 경비 업무를 말합니다. 그렇지만 탈북민의 경우 원래 의미의 신변 보호를 받기보다는, 보호 기간인 5년 간 보호라는 명목으로 경찰관들이 그들의 거동이나 주거, 행동 등을 계속 주시당하게 됩니다. 법적으로 정한 5년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남한에 온 지 20년이 넘는 사람까지도 당국의 필요에 따라 계속 보호 내지 감시,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잘 들었습니다. 긴 시간, 말씀 감사합니다.(끝)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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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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