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필자 주)
개 구충제를 먹고 말기 암을 치료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나서서 경고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펜벤다졸(개 구충제 성분)은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과 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로 사람에겐 안정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말기 암 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로 전문가 상의 없는 약 복용은 심각한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관련 기사 : <라포르시안> 9월 23일 자 '식약처 "강아지 구충제, 암환자 복용 금지...안전성·유효성 입증 안돼"') 보건학을 전공한 필자는 이 소문이 황당하다고 생각하며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 암 투병 중인 친구가 펜벤다졸 이야기를 건네 왔다. 정말 암 환자 중에 이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친구의 주장은 이러했다. 첫째, 유방암 재발 방지를 위해 타목시펜을 복용하면 일반인에 비해 자궁내막암 발생 위험이 2~3배 높아지고, 항암제 중 부작용이 없는 것은 별로 없다. 어차피 시판 약제 중 안전하고 효능, 효과가 높은 약제가 없다면 이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잃을 게 없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둘째, 담당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펜벤다졸이 효능과 효과가 있다 해도 의료계나 제약 산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 사실을 인정하거나 연구할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 의사의 치료 행위에는 이윤 추구라는 동기가 작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을 덧붙여서 말이다.
일견 음모론처럼 들리기는 했지만, 필자는 친구의 판단이 그동안 비윤리적 의료 관행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보며 정립된 것이리라 추측했다. 최근에는 암 투병 중인 연예인이 의사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를 위해 펜벤다졸을 복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의약, 특히 의료진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백신 주저(vaccine hesitancy)' 현상에서도 확인된다. 얼마 전 캐나다 구엘프 대학교의 골든버그 박사가 <캐나다의사협회지>에 발표한 논문은 '백신 주저' 사례를 들어 의약품과 의료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설명했다.(☞ 바로 가기 : 'Vaccines, values and science(백신, 가치와 과학)')
골든버그 박사는 "대중이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가정이 '백신 주저' 문제를 잘못 특징짓고 과학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착각함으로써 보건 활동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신 주저' 현상을 의약, 의료진에 대한 공공의 신뢰가 낮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증거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이 문제라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년간의 교육 캠페인을 통해서도 백신 거부자의 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심지어 백신 거부자의 상당수는 교육 수준이 높고 과학 논문 등을 직접 읽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학 문해력을 높이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문가의 올바른 조언을 신뢰함으로써 대중이 얻는 이익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신뢰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쌓이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는 상호존중하는 가운데, 개방적이고 정직한 관계를 바탕으로 구축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골든버그 박사는 의료진이 더 투명하고 의학의 핵심에 있는 불확실성을 포용해야 하며, 신뢰를 위협할 수 있는 산업과의 유대를 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의료제공자는 환자와 보호자의 질문에 시간을 두고 침착하고 비판적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며,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는 공동의 목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환자 또한 정직한 정보를 원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에 관한 연구결과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가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의료제공자를 찾는 경우, 불확실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신뢰에 손상이 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토론토 의과대학의 브라이언 교수는 의료제공자가 불신의 이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뢰를 회복할 수 없고, 정보화 시대에 건강 문해력의 변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발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의 신뢰는 건강한 행동을 장려하고 공중보건 위기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그간의 불명예스러운 관행, 이를테면 결핵과 관련한 캐나다 선주민 학대 사건, 의료계와 제약 산업의 의심스러운 관계, 개인 정보 침해, 기타 비윤리적 관행 등의 잘못을 인정하고 현재도 진행 중인 비윤리적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필수 요건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들의 온라인 정보 의존도가 높아지고,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이라도 인터넷에서 확인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부족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는 올바른 정보보다 더 빨리 확산되고, 정보에 노출된 후 대중은 자신의 지식수준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따라서 정보화 시대에는 환자들이 어떻게 정보를 얻고 해석할지 지원하는 것이 의사를 비롯한 의료 전문가의 중요한 역할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로 가기 : 'Trust me, I'm a doctor: Public trust in the Information Age(저를 믿으세요. 저는 의사입니다: 정보 시대의 대중 신뢰)')
이러한 조언과 비판은 한국 사회에도 잘 들어맞는다. 의료전문가들이 보기에 개구충제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기대나 백신 음모론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왜 대중들이 의료전문가를 불신하고 이러한 정보에 빠져드는지 반성적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다. 환자에게 조언하고 치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환자와 함께 의학기술의 불확실성과 한계를 헤쳐나가는 적극적인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 서지정보
Goldenberg, MJ. Vaccines, values and science. 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 2019; 191(14): E397-8.
http://www.cmaj.ca/content/191/14/E397/tab-e-le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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